지난 9일 밤 치러진 평창 겨울올림픽 개회식에 등장해 엄청난 화제를 몰고 온 '인면조'(人面鳥). 사람 얼굴에 새 몸을 지닌 그로테스크한 모습은 커다란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죠. 무엇보다 인면조에 얽힌 이야기는 그 특별한 외형만큼이나 흥미롭습니다. [편집자주][글 싣는 순서]
① '인면조' 쇼크…"잊혔던 동아시아인의 오랜 꿈"② '인면조', 국뽕 신화 깨고 너른 세상 '날갯짓'<끝>
평창 겨울올림픽 개회식에 등장했던 인면조 소품 옆에서 미술감독 임충일(왼쪽)·배일환 씨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평창올림픽조직위원회 제공)
인면조는 불교가 전파되기 전 한반도를 비롯한 고대 동아시아에 깊숙이 뿌리내렸던 토착 '영조'(靈鳥·신령스러운 새)라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면조 전문가'로 꼽히는 미술사학자 주경미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은 "인면조는 아무 데나 그려지지 않고 그 수도 굉장히 적다"며 "고구려 고분 벽화에 등장하는 인면조는 당시 고구려 사람들이 생각했던 신들의 세계, 죽음 이후의 세계를 추정해 볼 수 있는 근거"라고 진단했다.
결국 "인면조는 당대 한반도뿐 아니라 동아시아를 하나로 묶는 세계관이었다는 큰 틀로 봐야 한다"는 것이 주 위원의 지론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유교권 국가에서는 제사를 섬기잖나. 이는 죽은 사람들이 다른 세계로 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불교가 들어오기 전에는 사람이 죽으면 모든 게 끝난다고 여겼다. 그래서 도교는 사람이 죽지 않고 영생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삼았던 것이다."
그는 "현대인들은 영화 등 문화 콘텐츠를 통해 죽은 사람들이 사는 세상인 '내세'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사실 이러한 내세 개념은 불교가 들어오기 전 동아시아에는 없던 것"이라고 했다.
"이는 굉장히 중요한 지점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내세 개념은 불교가 전파된 지역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윤회, 그러니까 '생명은 죽어도 다시 태어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의식하고 있든 그렇지 않든 불교적 세계관의 영향을 받고 있는 셈이다."
◇ '단일·순수 민족' 강박…"일제 고대사 연구가 낳은 피해의식에 뿌리"
미술사학자 주경미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사진=주경미 위원 제공)
그 연장선상에서 주 위원은 "'천추' '만세' 등 인면조가 (불교의) 가릉빈가로 넘어간다는 것은 동아시아 사람들의 내세관, 세계관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전했다
"불교 전파 이전의 동아시아 세계관은 죽은 자와 산 자의 공간을 분리하는 전통과 연결돼 있다. 산 사람들의 삶이 중요하기 때문에 죽은 사람이 와서 산 사람들을 괴롭히지 말고, 저 세상에서 살아 있을 때처럼 잘 살라는 뜻에서 평소 쓰던 물건이나 보물 등을 함께 묻었던 것이다."
주 위원은 "이러한 동아시아 문화권의 세계관 안에서 영원한 삶을 뜻하는 인면조가 하나의 희망으로서 채택됐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십수 년 전 한국 사회는, 태양 속에 산다는 전설의 새 '삼족오'(三足烏) 문화가 고구려에서 꽃피웠다는 학설에 열광하면서 한민족의 우수성을 설파하는 근거로 이를 널리 활용했다. 비슷한 맥락 안에서 평창올림픽 개회식으로 널리 알려진 인면조가 '우리 고유의 것이다' '그렇지 않다'는 식으로 흘러가는 데 주 위원은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그는 "사실 삼족오도 중국 한나라 때부터 전해 오던 존재"라며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한국 사회는 '단일민족' '순수민족' 신화에 대한 강박을 지녔다는 점에서 여전히 많은 문제를 낳고 있다"고 꼬집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나라 때 것이 나오면 '한나라가 우리를 지배했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측면이 강하다. 낙랑(한나라가 옛 고조선 땅에 설치했던 4군의 하나)의 경우에도 한나라의 직접 지배를 받은 기간은 짧다. '한나라가 아시아 전역을 점령했던 위대한 고대 국가'였다는 학설은 사실 일제의 제국주의적 시각에 바탕을 뒀다."
주 위원은 "일제시대부터 고대사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이로 인해 우리는 역사 연구에 있어서 피해의식을 갖게 된 면이 있다"며 "한자를 동아시아에서 공유한 문화로 여기기보다는 '중국 글자'라고 인식하는 것 역시 이러한 피해의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 "인면조, 동아시아라는 커다란 문화권에서 공유했던 사상의 흔적"
덕흥리고분 인면조(사진=주경미 위원 페이스북 페이지 화면 갈무리)
최근 들어 이른바 '국뽕'(국수주의·민족주의가 심해 타민족에 배타적이고 자국만이 최고라고 여기는 행위나 사람을 일컫는 말)을 넘어서자는 움직임이 일면서, 동아시아 문화권이라는 보다 확장된 세계에 관심이 모아지는 분위기다.
이 흐름 안에서 "단일민족 신화 등으로 나타나는 피해의식을 극복하고 동아시아 문화에 대한 공감대를 만들어가려는 움직임은 몹시 중요하다"고 주 위원은 역설했다.
"인면조 역시 동아시아라는 커다란 문화권에서 공유했던 사상의 흔적이다. 미국이 각 주마다 색다른 문화를 지녔지만, '자유'라는 사상으로 뭉쳐 있는 것처럼, 당시 동아시아 사람들은 인면조가 상징하는 세계관을 공유했던 것이다. 이것에 대해 '한국 것' '중국 것' 일본 것'이라는 논쟁은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그는 "국가와 민족은 굉장히 근대적인 개념이다. 이는 따지고 보면 제국주의 시대에 열강들이 자국의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할 목적으로 강화하고 활용한 측면이 크다"며 "다국적·다문화를 즐기며 사는 지금 시대에 인면조가 꼭 우리 것이라는 강박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지적했다.
"인면조는 신화 등을 통해 전 세계에 공통적으로 등장한다. 다만 내세관이 없던 상태에서 오래 사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던 고대 동아시아에서는, 영생의 신령한 존재로서 인면조가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던 것이다. 불교의 윤회 개념이 들어온 뒤 이러한 가치관에 변화가 일었다. 이 역시 동아시아의 공통된 문화라는 데 의미를 둘 수 있다."
주 위원은 "평창올림픽 개회식에서 소개된 인면조 역시 관련 디자이너·감독들의 끊임없는 노력과 탐구가 결실을 본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각자 맡은 자리에서 자기 역할을 잘 해나가며 공동체의 가치를 고민한 덕분이 아닐까"라고 평했다.
특히 "고구려 고분 벽화의 세계 속에는 인면조뿐 아니라, 사신(四神)인 청룡·백호·주작·현무도 각 방위에서 자기 것을 지키며 공존하고 있다"면서 "이렇듯 천하 만물의 공존을 이해하는 것이 지금 시대에는 더욱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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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이진욱 기자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