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랭킹 뉴스

'99일째 노숙 투쟁' 생존자들의 절규 "멈출수 없다"

노컷뉴스 이 시각 추천뉴스

닫기

- +

이 시각 추천뉴스를 확인하세요

형제복지원 국회 앞 농성현장 가보니…"이것밖에 할수 있는 일이 없다"

부산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실종자·유가족) 대표인 한종선씨(왼쪽)와 최승우씨가 국회 정문 앞에서 노숙 연자시위를 벌이고 있다.(CBS노컷뉴스 이준규 기자)

 

최저기온이 영하 10도를 밑도는 국회 정문 앞. 2명의 남성이 이불 하나 크기 남짓한 공간에 허름한 비닐 텐트를 하나 치고는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무엇이 강추위 속에서도 노숙을 하게끔 만들었을까?

이들은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실종자·유가족) 모임 대표인 한종선씨(42)와 최승우씨(49)로 모두 1980년대 부산에서 일어난 형제복지원 사건의 피해자다.

◇ '안전·복지' 명분으로 자행된 최악의 인권유린 사건

형제복지원 사건은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전두환 정권이 '안전한 사회, 복지강국'을 기치로 거리 환경을 정돈하고 부랑인에게 복지를 제공한다며 진행한 대규모 인권유린 사건이다.

정부와 지방정부, 경찰, 검찰의 묵인 아래 1975년부터 1987년 복지원 폐쇄 때 까지 3만명이 강제 수용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상습적인 폭행과 성폭행, 비인간적인 수용 조건 등으로 인해 기록된 사망자만 513명인 최악의 사건이었다.

한 씨는 1984년 9세의 나이로 누나와 함께 납치됐으며, 최씨는 1982년 14세 때 빵을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각각 복지원에 입소됐고 하루도 끊이지 않고 구타와 성폭행 등을 당했다.

1987년 검찰 수사 후 복지원이 폐쇄되면서 세상으로 나왔지만 폭력 등으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무학력 등으로 인해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했다. 한씨의 경우 누나와 아버지까지 형제복지원에 강제 입원되면서 현재까지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다.

◇ 국회 앞 농성만 4번째…"이번엔 끝까지"

이들이 이번 노숙 연좌 농성을 시작한 것은 지난해 11월 7일. 강추위 속에 벌써 99일이 지났지만 이들은 "절박해서" 농성을 멈출 수 없다고 한다.

국회 앞 농성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한씨는 2012년 5월부터 2013년 3월까지 10개월 간 국회 앞에서 생활했다. 10개월의 노고는 한동안 잊혀졌던 형제복지원 사건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렸고 당시의 참상을 담은 '살아남은 아이'라는 책의 출간도 이끌었다. 2015년 4월에는 한씨를 비롯한 생존자 11명이 집단 삭발식에 나서서 국회 공청회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19대 국회 말인 2015년 12월에는 한씨와 최씨가 함께 단식농성을 벌여 8일 만에 구급차에 실려 가기까지 했지만 진선미 의원이 2014년 발의했던 형제복지원 진상규명 법안은 소관 상임위원회인 안전행정위원회(현 행정안전위)의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폐기됐다.

한씨는 "과거 국회 앞에 머물렀을 때는 뭔가 한 단계씩 상황을 진전시켰지만 결국 법안 통과에는 실패했다"며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진상규명 법안 통과가 될 때까지 노숙 농성을 이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지난 6일 진상 규명이 필요한 '우선 조사 대상' 12건에 형제복지원 사건을 포함시키는 등 사회적인 관심은 커지고 있다.

불법 점거 민원으로 이들의 노숙장을 철거하러 왔던 영등포 구청 직원들도 처음에는 "당장 철거하라"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이들의 사정을 알게 된 이후에는 묵묵히 퇴거장만 붙이고는 돌아가고 있다.

◇ 정부·야권 무관심은 숙제…"건강하게 살아남을 것"

그러나 여전한 정치권의 무관심은 넘어야 할 큰 산이다.

최초로 문제 해결을 약속했던 것은 김영삼 정부지만 정권 초기에는 사정, 후기에는 측근 비리로 인한 레임덕 등으로 인해 아무런 조치도 행하지 않았다.

한씨는 "김대중 정부 때는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수습, 노무현 정부 때는 민주화 등 정치권과 관련한 과거사 정리 우선 처리 등으로 인해 우리 같은 민간인을 신경 쓰지 않았다"며 "전두환 정권과 뿌리가 같은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무관심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행안부는 최근까지도 다른 법률과의 형평성을 이유로 특별법 제정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19대 국회 안행위에서 "좀 더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법안 통과에 참여하지 않았던 자유한국당 등 야권도 태도의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들은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운영됐던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 조사 신청을 했으면 됐을 것을 왜 별도의 특별법을 마련하려 하느냐고 주장한다.

이에 한씨는 "피해자들의 정신적 외상이 너무나 심각해 당시의 충격으로 여전히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의 수가 상당하다"며 "나 또한 복지원 입원으로 헤어졌던 아버지와 누나를 2007년에야 처음으로 정신병원에서 찾았다"고 반박했다.

추혜선 정의당 의원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국가폭력에 의한 피해라는 현대사를 들추고 싶지 않은 세력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며 "진상조사 특별법 뿐 아니라 현재 중단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활동을 재개할 수 있는 개정안도 발의돼 있는 등 과거보다 상황이 진일보한 만큼 피해 생존자들에 대한 관심을 더 크게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씨와 최씨는 자신들의 농성이 측은한 마음에서 비롯된 보상이 아닌 국가가 잘못한 일에 대해 정당하게 배상을 받으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피해자에서 생존자로 거듭나기 위해 증언하고 기록하는 등 스스로 활동가로 살아감으로써 뜻을 이룰 때까지 건강하게 살아남는 것이 우리의 두 번째 목적"이라며 "진상을 규명하다보면 최근 참사가 발생한 밀양·제천 등 시설과 관련한 잘못된 법들도 고쳐지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0

0

오늘의 기자

실시간 랭킹 뉴스

상단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