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광주 5·18진실규명지원단 제공)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군이 헬기를 이용해 광주시민들을 향해 사격을 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확인됐다.
또 공군도 수원 제10전투비행단과 사천 제3훈련비행단에서 이례적으로 전투기와 공격기에 폭탄을 장착한채 대기했으며 해군(해병대)도 광주에 출동할 목적으로 5월 18일부터 마산에서 1개 대대가 대기했다가 출동명령이 해제됐던 사실이 확인됐다.
5.18당시 헬기사격과 전투출격대기 의혹 등을 조사해온 국방부 5.18특별조사위원회는 7일 이같은 조사결과 내용을 발표했다.
5.18 특조위는 다만 공군의 전투기 폭탄 장착 대기의 목적이 광주를 폭격하려는 계획에 따른 것인지, 공군에 의한 광주폭격을 포함한 진압작전계획으로 검토 되었는지는 결론을 유보했다고 밝혔다.
특조위는 이에 대해 "한국 공군에는 5·18과 관련된 당시의 자료가 거의 없고 당시 공군 관계자들이 당시의 상황을 잘 기억하지 못하며, 공군관계자들 중 일부는 조사에 불응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자료가 없거나 관계자들이 조사에 불응해 사실관계 확인이 어렵다는 의미다. 특조위는 이에 따라 미국 공군과 미국 대사관 자료를 포함한 국외 자료 조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그 조사에는 상당한 기일이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 육군·해군·공군 합동작전으로 5.18 운동 진압
(사진=5.18 기념재단 제공)
5.18특별조사위원회에 따르면 당시 5.18민주화운동은 육,해,공군의 합동작전으로 진압됐다.
특조위에 따르면 광주에 투입된 공수부대가 비무장 시민들을 상대로 사격을 가하는 등 무력 강경진압을 실시해 이에 항거하는 일반 시민들이 대거 시위에 참여해 무장을 하게 된다.
이어서 공수부대가 광주시 외곽으로 철수한 후 시 외곽을 봉쇄해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는 한편 육군은 광주에 출동한 40여대의 헬기 중 일부 공격헬기 500MD와 기동헬기 UH-1H를 이용해 5월 21일과 5월 27일 광주시민을 상대로 여러 차례 사격을 가했다.
공군은 수원 제10전투비행단 F-5 전투기들과 사천 제3훈련비행단 A-37 공격기들에 각각 MK-82 폭탄을 이례적으로 장착한 사실이 확인됐다.
또한, 해군(해병대)은 해병대 1사단 3연대 33대대 병력을 광주 출동을 위해 마산에 대기시켰다가, 계엄군의 진압작전 변경으로 해병대의 추가 투입의 실효성이 떨어져 출동 해제됐음이 확인됐다.
특조위는 5·18민주화운동 진압작전에서 계엄군이 공수부대를 비롯한 상무충정작전에 참여한 육군 병력들의 발포 등과 협동작전으로서 공중에서 시민을 상대로 한 헬기에서의 사격을 실시한 것을 처음으로 밝혀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조위는 또 5·18민주화운동 진압은 육군과 공군, 육군과 해군(해병대)이 공동의 작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3군 합동작전이었다는 것을 사상 처음으로 확인한 것이라고 밝혔다.
◇ 계엄사령부, 문서와 구두로 수차례 헬기사격 지시
(사진=손금주 의원실 제공)
5.18 특조위에 따르면 5·18민주화운동 당시 5월 21일부터 계엄사령부는 문서 또는 구두로 수차례에 걸쳐 헬기사격을 지시했다.
인적이 드문 조선대학교 뒤편 절개지에 AH-1J 코브라 헬기의 발칸포로 위협사격을 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헬기사격 목격자는 계엄군의 도청 앞 집단발포가 이루어진 5월 21일과 계엄군이 전남도청에 재진입한 5월 27일에 많았다.
특조위는 "계엄군 측은 지금까지 5월 21일 19시30분 자위권 발동이 이루어지기 이전에는 광주에 무장헬기가 투입되지 않았다고 주장해 왔으나 실제로는 5월 19일부터 31사단에 무장헬기 3대가 대기하고 있었던 사실이 기록을 통해 밝혀졌다"고 말했다.
계엄사령부는 5월 21일 도청 앞에서 집단 발포와 시 외곽으로 철수한 후 더욱 강경한 진압작전을 계획하면서 5월 22일 08시 30분경 전투병과교육사령부(이하 ‘전교사’)에 헬기사격이 포함된 구체적인 '헬기작전계획 실시지침'을 하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격지침 주요내용은 ▼무장폭도들에 대하여는 핵심점을 사격 소탕하라▼ 위력시위사격을 하천과 임야, 산 등을 선정 실시하라▼상공을 비행 정찰하여 버스나 차량 등으로 이동하면서 습격, 방화, 사격하는 집단은 지상부대 지휘관의 지시 따라 사격 제압하라▼ 지상부대 진입 시는 보병을 엄호하기 위해 전차와 헬기의 공중엄호 등을 계획 실시하라▼시위 사격은 20미리 발칸, 실 사격은 7.62미리가 적합 등이었다.
계엄사령부는 헬기사격을 실시할 경우 사격 실시 전 3∼5회의 경고방송을 하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특조위에 따르면 당시 계엄사령부 부사령관이었던 황영시는 5월 23일경 전교사 부사령관 김기석에게 미온적인 충정작전으로 광주사태를 수습하려 하지 말라고 지시한다.
그는 '전차와 무장헬기를 동원해 강경하게 충정작전을 실시하라, 전차는 기갑학교에 있는 것을 투입하고, 무장헬기는 UH-1H 10대, 500MD 5대, AH-1J 2대 등을 투입하여 신속히 진압작전을 수행하라'는 취지의 명령을 내렸다.
5월 20일부터 5월 26일까지 사이에 4회에 걸쳐 김기석에게 같은 내용의 구두 명령을 했으며 특히 ‘코브라로 APC를, 500MD로 차량을 공격하라’ 는 취지의 명령도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특조위는 "광주에 출동했던 헬기조종사들은 과거에는 무장상태에서 광주에 출동했다는 사실을 대부분 부인했었는데, 특별조사위원회의 조사에서는 헬기조종사 5명이 헬기에 무장을 한 상태로 광주 상공에서 비행했다고 진술했다"며 "다만 당시 조종사들은 헬기사격은 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고 밝혔다.
특조위는 그러나 목격자 진술을 통해 5월 21일 오후에 전남도청 인근과 광주천을 중심으로 헬기사격이 이루어지는 것이 8곳에서 목격되었고, 5월 27일 새벽에는 전남도청과 전일빌딩을 중심으로 헬기사격이 이루어지는 것이 6곳에서 목격됐다고 밝혔다.
◇ 특조위 "헬기사격은 비인도적이고 적극적인 살상행위, 재평가돼야"또 전일빌딩 10층 내부에서 2016년 12월 13일 150개의 탄흔이 발견되었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2017년 1월 12일 탄흔에 대해 UH-1H에 장착된 M60 기관총이나 개인화기 M16 사격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감정했다고 특조위는 설명했다.
특조위에 따르면 5월 21일의 헬기사격은 전남도청 인근과 광주천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조사결과 계엄군은 5월 21일 헬기를 이용해 일반 시민에게 위협사격을 가하였고, 무장을 하지 않은 시민에게 직접 사격을 하기도 했다.
이런 헬기사격은 무차별적이고 비인도적인 것으로 계엄군의 진압작전의 야만성과 잔학성, 그리고 범죄성을 드러내는 증거라고 특조위는 밝혔다.
특히 시민들과 물리적 충돌 과정에서 실시됐던 지상군의 사격과 달리 헬기사격은 계획적·공세적 성격을 띄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특조위는 "군이 지금까지 5월 21일 집단발포에 대해서 무장시위대에 대한 자위권적 차원의 조치였다고 주장해 왔으나, 계엄군의 5월 21일 비무장 시민에게 가한 헬기사격은 계엄군의 이러한 주장을 뒤집는 증거로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광주시민을 상대로 한 비인도적이고 적극적인 살상행위로 재평가돼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