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베를린 필하모닉의 내한 공연.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협연한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 1악장이 끝난 뒤 객석 1층에서 울린 낭랑한 기계음이 악장 사이의 정적을 깨트렸다. 방금 연주가 끝난 라벨의 협주곡 1악장 뒷부분이 그대로 녹음된 소리였다.
차분히 다음 악장을 준비하던 베를린 필하모닉 상임 지휘자 사이먼 래틀과 조성진은 한동안 2악장을 시작하지 못하고 기계음이 멈출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이날 공연을 관람한 한 공연계 관계자는 "벨소리가 울렸어도 '참사'였을텐데 공연을 몰래 녹음한 소리가 그토록 울려 퍼진 건 '대참사' 수준"이라며 "얼굴이 다 뜨거워질 정도로 민망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실제 이날 음악회 1부가 끝난 뒤 로비 이곳저곳에서는 정돈되지 않은 객석 분위기에 대한 민원이 빗발쳤다.
올해 클래식 공연의 하이라이트로 꼽힌 이 날 공연에는 워낙 많은 사람이 몰린 탓인지 유독 객석 매너가 아쉬웠다는 지적이 많았다.
'녹음기 재생' 사건 이외에도 연주가 끝나자마자 치는 '안다 박수'(곡이 끝날 때를 잘 안다는 과시성 박수), 합창석에서 공연 중 울려 퍼진 연이은 '카톡' 소리 등에 대한 불만을 제기한 관객들이 많았다.
예술의전당 관계자는 "1부가 끝난 뒤 민원이 많아 2부를 시작하기 전 공연 관람 예절에 대한 안내 멘트를 한 번 더 틀었을 정도"라며 "몰래 공연을 녹음한 관객에게는 해당 녹음을 지워달라고 따로 요구했다"고 전했다.
사실 이 같은 '공연장 소음 테러'는 공연계의 해묵은 고민거리다. 2011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오케스트라인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 당시 브루크너 교향곡 8번의 느린 악장 연주 도중 40초가량 가까이 이어진 휴대전화 벨소리, 2013년 서울시향의 말러 교향곡 9번 연주 중 울려 퍼진 그룹 '버스커버스커'의 '벚꽃 엔딩' 등은 지금까지도 회자하는 유명 사건들이다.
공연장 측도 이런 '관람 비매너'와 끝나지 않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예술의전당은 내달부터 대규모 관람 예절 캠페인을 벌이기로 했다.
예술의전당 관계자는 "'안다 박수' 자제, 공연 중 촬영·녹음 금지, 관람 연령 안내 등 기본 관람 에티켓을 그림으로 설명한 소책자 등을 대량 배포할 예정"이라며 "배너를 세워두는 기존 방식보다 더 적극적으로 관람 매너를 안내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LG아트센터는 공연 특징에 맞는 현장감 넘치는 관람 예절 안내 멘트로 관객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롯데콘서트홀은 공연장 무료 체험 프로그램인 '롯데콘서트홀 프리뷰' 등을 통해 공연 관람 예절 영상을 상영하고 있다.
롯데콘서트홀 관계자는 "풍부한 잔향을 자랑하는 클래식 공연장은 작은 소음에도 큰 영향을 받는다"며 "모든 관객이 유쾌하게 공연을 관람할 권리를 존중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