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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호는 학생으로 죽었나 노동자로 죽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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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 불일치 현장실습도 문제…"교육 의미 없으면 폐지해야"

현장실습을 받다 숨진 고 이민호 군의 장례식장 (사진=문준영 기자)

 

제주에서 현장실습 고교생이 사망했다. 업체는 고용 창출이라는 좋은 목적으로 실습생을 받았다고 토로했지만 열악한 노동환경과 12시간 중노동 등이 드러나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학교의 현장 점검은 형식에 불과했고 교육청은 손도 쓰지 못했다. 지난 1월 LG유플러스 현장 실습생 홍모양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다. 고교생 현장실습 제도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어디에 있는가.

◇ 학생인가 노동자인가

고 이민호 군은 일반 직원처럼 일했다. 음료 제조회사에서 자동화 기계 흐름과 고장을 파악하고 지게차를 직접 몰아 제품을 옮겼다. 학교와 업체가 맺은 협약서에 따르면 하루 7시간을 근무해야 하지만 12시간이 넘는 연장근무에 내몰렸다. 업체와 별도로 근로계약도 맺었다. 그는 학생이자 노동자였다.

지난 3월 LG유플러스 실습생 사망사건을 돌아보기 위해 전북에서 열린 '특성화고 현장실습 문제점과 대안 모색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김경엽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실업교육위원회 정책국장은 "현장실습생 신분이 명확하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 국장은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에 대해서는 거의 취업자에 준하는 근로기준법 및 산업재해 보상법이 적용되고 있지만, 단기 체험이나 근로계약이 체결되지 않는 경우 보호가 어려운 실정"이라며 "교육 실습생의 법적 지위를 명확하게 한 법률이 제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 전공 학과 불일치 문제 심각

LG유플러스 실습생이었던 홍양은 콜센터 업무와 관련이 없는 애완동물학과 학생이었다. 이번에 숨진 민호는 원예전공이었다. 학교 당국은 학생 동의를 받아 이뤄진 것이라고 말한다.

민호가 사고를 당한 제주시 구좌읍 용암해수 단지 내 음료제조 회사 현장 (사진=문준영 기자)

 

하지만 학교가 학생 전공에 맞는 취업처를 발굴하지 못할 경우 학생들이 전공과 다른 업체로 보내지는 게 현실이다.

김 국장은 "이렇게 파견된 학생들은 전공이나 적성과의 불일치, 근무여건에 대한 불만과 상사와의 불협화음 등으로 중도에 이탈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장실습 업체 선정 시 직업교육 훈련생의 전공 분야를 고려해 파견한다는 직업교육훈련 촉진법이 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 열악한 사후 관리

현장실습 중도 포기자나 진로 변경자들에 대한 사후 관리도 열악한 실정이다.

제주시한림공업고등학교에서 취업을 담당하고 있는 박여돈 교사는 "사후 관리를 위해 취업지원관과 같은 전담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박 부장은 "선생님들은 업무가 1년 단위로 바뀔 수 있고 전근을 갈 수 있다. 하지만 학생들은 졸업이 끝이 아니다"며 "취업한 이후에도, 또 중도 포기학생이 발생했을 때도 이들을 전담해줄 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한림공고에는 취업지원관(산학협력코디네이터) 1명이 배치·운영되고 있다. 학교에서 제주도청과 중소벤처기업부 등에 사업계획서를 작성해 예산을 따냈기 때문에 취업지원관을 운영할 수 있었다.

박 부장은 "취업률 등 실적이 떨어지면 사업신청이 안 될 수 있다. 중소기업 취업률이 예산을 따올 때 가장 중요한데, 이 때문에 교사들이 실적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며 "예산을 따오지 못하면 취업지원관을 운영할 수 없다. 지금 운영하는 취업지원관도 10개월 계약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12월 말이나 1월에는 현장실습 중단 학생들이 급증하는 시기다. 진로 변경 혹은 대학 입학을 원하는 학생들이 생기지만 이들에 대한 관리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제주시청 버스 정류장에 설치된 고 이민호군의 추모공간 (사진=문준영 기자)

 

지난 3월 특성화고 현장실습 문제점과 대안 모색 토론회 참고 자료로 사용된 '특성화고등학교 고3 담임의 불안한 외줄타기(김경현, 경기지부 김포제일공고분회)'라는 글에도 현장실습에 대한 교사들의 솔직한 심정이 담겨 있다.

김씨의 글에는 "더 힘든 상황은 현재 특성화고에서 아이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진학보단 취업, 그리고 내년 4월까지는 어떻게든 힘들어도 회사에서 버텨야 한다는 것을 세뇌하듯 아이들에게 정신교육 시키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언제나 고3 담임들에게는 취업률이라는 것이 2학기가 시작되고 나서 느끼게 되는 무서운 압박과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고, 취업을 '잘 보내는 것'이 아닌, 취업을 '많이 보내는 것'이 목적이자 이유가 돼버렸다"고 전했다.

교사들이 실적과 취업률에 내몰리면서 학생은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고, 전담 인력 부족으로 사실상 사후 관리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제주도교육청에 따르면 지난해 도내 10개 특성화고등학교 졸업자 1745명 가운데 488명이 취업해 28%의 취업률을 보였다.

현장 실습 제도개선과 취지를 살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70%가 넘는 나머지 학생들에 대한 고민도 함께 선행돼야 할 시점이다.

◇ 업종별 불균형 뚜렷, 지역 특성에 맞는 현장실습 필요

제주도의 경우 농업과 관광 등 1·3차 산업이 발전한 데 비해 제조업은 열악하다. 지역별로 특성화고등학교 각 학과와 업체의 수요·공급 불일치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일부 학교는 업체에 사정해 실습생을 보내는 반면, 한림공고와 같은 토목·건설 관련 전공 학교에는 오히려 업체의 지원이 몰리는 실정이다. 실제로 지난해 한림공고에는 3백여 개 업체가 구인신청을 했다.

박여돈 취업부장은 "한림공고의 경우 구인업체가 상당히 많다. 이 가운데 열악한 업체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괜찮은 업체를 선별하고 학생 동의를 받아 실습에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김경엽 정책국장은 발제문을 통해 "지금처럼 단일한 정책 사업이 아니라 학과 특성과 지역 특성을 고려해 학교별로 다양한 직업 교육 운영을 개방하고, 교내 활동과 현장 견학, 현장 체험 학습, 방학 중 2~3주 진로 탐색활동 참여 등 다양한 현장실습을 제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 제도개선 만큼이나 중요한 것, 사업주의 인식

제주에서 현장실습 고교생을 받고 있는 업체인 세기산업 김영두 팀장은 "현재 4명의 학생들이 현장실습을 하고 있다. 전공 일치 학생을 뽑고 있고, 현장에서는 2인 1조, 3인 1조로 근무하고 있다"며 "업체에서 협약서를 잘 따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아이들은 현장에서 간접적으로 기술을 배울 수 있고, 추후 정직원으로 채용하면 업체 입장에서는 인력난을 해결할 수 있다"며 "가장 중요한 건 학생들을 일반직원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이 친구들을 키운다는 생각으로 가르쳐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24일 현장실습 사고 업체를 방문한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 (사진=제주CBS)

 

업체의 인식과 더불어 노동인권과 근로기준에 대한 학생들의 시각을 높일 수 있는 교육 방안도 뒷받침돼야 한다.

김 국장은 "현재의 현장실습이 교육적 의미를 갖지 못한다면 과감하게 특성화고 현장실습을 재검토해야 하며, 폐지도 검토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4일 제주 현장실습 사망사고 업체를 방문한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새정부가 지난 8월 현장실습을 근로 중심이 아니라 학습 중심으로 시스템을 바꾸기로 했고, 현장에 충분히 이 사안을 고지했다"며 정부 지침이 왜 현장까지 전달되지 않는지 교육부와 고용노동부가 나서 조사해줄 것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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