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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황교익·루시드폴의 제주는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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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tvN '알쓸신잡2' 방송 화면 갈무리)

 

"바다는 아무 말 없이/ 섬의 눈물을 모아/ 바위에 기대/ 몸을 흔들며/ 파도로 흐느낀다지//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간 사람들은/ 4월이 오면/ 유채꽃으로 피어/ 춤을 춘다지// 슬퍼하지 말라고/ 원망하지 말라고/ 우릴 미워했던 사람들도/ 누군가의 꽃이었을 테니…" - 루시드폴 '4월의 춤' 중에서

여행을 '일상탈출'이라고들 한다. 익숙한 곳을 벗어나 새로운 곳을 접하는 데서 오는 신선한 경험을 이르는 말이리라. 이 점에서 그곳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살고 있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알려 애쓰는 것은 여행의 중요한 가치로 여겨진다. tvN 예능 프로그램 '알쓸신잡2'와 함께하는 여행이 고마운 이유다.

지난 24일 밤 방송된 '알쓸신잡2'에서는 제주에 간 패널들의 모습이 담겼다. 하루 동안 여행지를 돌아본 그들은 어김없이 저녁 식사자리에 둘러앉아 자신들의 여행담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특별손님으로 함께한, 제주에서 감귤농사를 짓는 가수 루시드폴이 제주4·3사건을 다룬 노래 '4월의 춤'을 만들어 부른 것이 화제에 올랐다. 루시드폴은 "아마 가보셨을 수도 있는데, 4·3평화공원이 있는데 저도 (제주에) 내려와서 다음해인가 처음 가봤다. 어떻게 생각하면 충격…그렇게 남아서 앨범 작업하면서 곡을 썼다"고 전했다.

그는 "제주도 오기 전에는 그 사건 잘 몰랐나"라는 작가 유시민의 물음에 "알고는 있었지만 이만큼 (멀리) 있는 얘기 같았다면, 동네마다 적혀 있는 (수많은 희생자의) 비석들을 보고 하면서 굉장히 더 가깝게 (다가왔다)"고 전했다.

제주4·3사건은 지난 1999년 '제주4·3특별법'이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함부로 입 밖에 낼 수 없는 것이었다. 제주 주민 3만여 명이 군인·경찰 병력 등에게 학살된 이 사건은 1947년 3월 1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7년 7개월간이나 이어졌다. 남한 단독정부 수립과 6·25전쟁을 거쳐 이승만 정권이 잔당 소탕을 명목으로 진압을 벌이던 때, 제주는 피로 물들었다.

황교익은 "해방공간, 미군정 상태에서 (이승만 세력과 달리) 남한 단독정부를 수립한다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며 "그것이 (제주에서) '펑'하고 터진 게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였다" "초토화 작전을 쓰는데, 그 과정에서 민간인들이 어마어마하게 죽는다"고 설명했다.

유시민도 "(남한) 단독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1948년) 5·10 총선거가 예고됐다. 그런데 제주도 안에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는) 남로당(남조선노동당) 조직이 있었다"며 "실제로 무장투쟁 양상으로 갔다" "조금 의심이 되면 (군경 토벌대가) 마구잡이로 죽였다"고 전했다.

◇ "조그마한 마을에서 350여명 총살…두 살… 세 살…네 살…"

황교익은 "제가 오늘 간 곳이 '순이 삼촌' 문학비가 있는 북촌인데 그 조그마한 마을에서 (하루에만) 350명 정도가 (총살 당해) 죽었다"며 "보통의 문학비와는 완전히 다르다. 명단이 주욱 있는데, 한 집안이 거의 몰살됐다. 그 옆에 나이가 쓰여 있는데 2살… 3살…4살"이라고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유시민은 "한 마을에서 우리 할아버지를 누구 집 아들이 죽였는지를 안다. 육지에서 온 군인이나 경찰, 서북청년단에서 죽인 것은 외지사람들이 와서 제주도민을 죽인 것"이라며 "그런데 제주도 안에서 이른바 좌익들이 사람을 죽인 것은 동네 사람들끼리 죽인 거잖나. 그러니까 화해가 도저히 안 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것을 논리적으로는 풀 수가 없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온 결론이 '누가 죽였는지 따지지 말자, 좌우를 막론하고 이 모든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이 모든 사태가 벌어진 것에 대해 국가를 대표해서 대통령이 사과하고, 그 뜻을 담아 평화공원을 세우고, 이 사건에 대해 결론을 내지 않는 것이, 이렇게 해서 서로 용서하고 잊어야지'라고 얘기하시더라"고 부연했다.

황교익이 "지금 보면 '4·3 평화공원' '4·3 기념관' 등 4·3 뒤에 붙은 용어들은 생략됐다"고 전하자, 유시민은 "이 사건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고, 용어를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는 상당히 더 세월이 지나가고 나서, 감정의 격동 없이 이 문제를 살필 수 있을 때 어떤 이름이 붙지 않을까. 지금은 공식적으로 4·3사건을 쓴다"고 덧붙였다.

황교익은 "4·3사건의 상황은 사실 한국전쟁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제주에서 작게 보여 준 것"이라며 "한국전쟁 기간에 여러 곳에서 4·3사건과 같은 일들이 벌어졌다"고 설명했다.

유시민은 "동족상잔의 내전을 치렀고 작은 6·25전쟁들이 곳곳에서 있었고, 그것이 아직 해결 안 되고 70년 넘게 끌고 있다"며 "우리가 심하게 앓은 것은 맞다. 우리도 언젠가는 해결할 것이다. 우리 모두가 평화를 바라는 것은 분명한 것이니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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