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여파로 중국 시장에서 고전하는 한국 기업들이 13억 인도시장으로 관심을 돌리고 있다.
중국 정부의 '사드 보복'으로 판매량이 급감하고 있는 현대기아자동차는 전략차종 개발과 대규모 시설투자에 박차를 가하며 인도시장 공략에 본격 나섰다.
석유화학업계와 유통업계 등도 차이나 리스크가 급속도로 확산됨에 따라 중국 시장 철수와 함께 인도시장 공략 등 시장 다변화 전략을 적극 모색하는 분위기다.
(사진=자료사진)
◇ 현대기아차, 인도 전략차종 개발·시설 투자에 속도현대기아차는 중국을 대신할 글로벌 시장으로 인도를 지목했다. '사드 보복' 등으로 중국 시장에서의 판매가 급감함에 따라 인도가 놓쳐서는 안될 글로벌 시장임이 확실해졌기 때문이다.
인도의 자동차시장은 매년 7% 이상의 고성장을 하고 있지만, 자동차 보급률은 인구 1000명당 30대에 불과하다.
성장 잠재력이 매우 크지만 현대차는 그동안 인도시장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하지 못했다.
그 결과 인도 시장에서 판매 1위를 달리고 있는 인도와 일본의 합자회사 '마루티 스즈키사'와 의 점유율 격차는 34% 포인트에서 좁혀지지 않고 있다.
현대차는 이에 따라 인도법인을 통해 8천8백억원을 투자해 신차 라인업과 사업 확장에 더 집중하기로 했다.
현재 현대차의 인도시장 라인업은 10종에 불과하지만 오는 2020년까지 총 8종의 전략차종을 집중 개발해 인도 시장에 출시하기로 했다.
인도 시장에 대한 대규모 시설 투자도 본격화된다.
기아차는 올 연말 인도 안드라프라데시주 아난타푸르에 1조2천억원을 투자해 연산 30만대 규모의 생산공장 착공에 들어갈 예정이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지난달 현지 공장을 방문한 길에 인도 정부 고위관계자를 만나 공장 건설에 적극적인 협조를 구했다.
현대차가 인도 시장을 효과적으로 공략하기 위해서는 전략차종 개발과 시설 투자에 더 집중해야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인 연구위원은 "현재 인도시장에 출시된 차종들은 신형 베르나(한국명 액센트)를 비롯해 그랜드 i10, 크레타 등 소형차종들이 대부분"이라며 "소비자들의 다양한 요구에 맞추기 위해서는 다양한 세그먼트에서 전략차종을 개발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사진=현대케미칼 제공)
◇ 석유화학업계도 인도 시장 주목…한화케미칼 "전망 밝아 적극 공략"석유화학업계도 중국을 대체할 시장으로 인도를 주목하고 있다.
인도는 중국처럼 정치적인 문제가 개입될 가능성이 크지 않은데다, 인구가 급증하고 높은 경제성장률을 이어갈 것으로 예측됐기 때문이다.
한화케미칼이 지난 4월 처음 생산한 염소화폴리염화비닐(CPVC)의 첫 수출국가로 인도를 선택한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한화케미칼 관계자는 "인도 역시 도시화와 산업화가 진행되고 있고, 최근에는 '클린 시티' 운동이 펼쳐지면서 화장실 보급 등으로 PVC 수요가 많아지고 있어 시장 전망이 밝다"며 "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인도 등으로 시장을 다변화하는 전략을 강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화학업계는 중국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기술집약적 제품 개발, 원가 경쟁력 제고, 시장 다변화 등 3가지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며 "특히 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시장을 다변화하는게 가장 큰 숙제"라고 전했다.
SKC와 일본 미쓰이화학의 폴리우레탄 합작사인 MCNS도 인도 시장에 공을 들이고 있다.
MCNS는 지난 3월 착공한 인도 첸나이 폴리우레탄 생산기지인 '시스템하우스'를 올해 안에 완공해 폴리우레탄을 본격적으로 생산한다는 예정이다.폴리우레탄은 자동차 시트와 쿠션, 건축·냉장용 단열재 등에 쓰인다.
MCNS는 첸나이에 현대차·삼성전자·도요타·닛산 등의 기업들이 많이 진출해 있어 폴리우레탄의 수요 증가로 수익성이 커질 것으로 보고 시장 개척을 서두른다는 계획이다.
이런 가운데 한국 석유화학업체들에 대한 중국의 보복성 반덤핑 조사는 갈수록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과거 2년에 한번 꼴로 이뤄지던 반덤핑 조사는 올 상반기에만 무려 4건이나 진행돼 업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 유통업계 '차이나 리스크' 확산…"인도 등 '포스트 차이나' 본격 공략 시점"사드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유통업계도 중국 내 사업 철수와 함께 '포스트 차이나' 찾기에 관심을 돌리는 분위기다.
23일 업계 따르면 롯데그룹은 중국 철수 수순을 밟고 있는 롯데마트 외에 중국에 진출한 계열사의 구조조정을 검토하고 있다.
중국에 진출한 식품업체들 역시 사드 보복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음에 따라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롯데제과 중국법인은 올 상반기 매출이 지난해 대비 반토막 났고, 오리온도 지난 2분기 중국내 제과 매출이 48%나 감소했다.올해 2분기 적자로 돌아선 농심 중국 법인은 상반기 기준으로 28억여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롯데마트가 중국시장 철수를 발표한 이후 현재까지 인도 진출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힌 유통업체는 없지만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 대부분이 롯데와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다"며 '리스크가 큰 중국시장에만 의존하기보다 인도와 같은 포스트 차이나 시장을 공략할 필요성이 커졌다는데 상당수 업체들이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 '사드 손실' 8조원 추산…"기업 경쟁전략, 정부정책 다시 짜야"
중국 정부의 사드 보복이 장기화하면서 우리 경제가 입는 손실은 전 산업을 통틀어 8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현재의 위기는 '사드'라는 정치적인 문제가 크게 작용하고 있지만 기업들의 경쟁력이 뒤떨진데도 원인이 있는 만큼 전체적인 경쟁전략을 다시 짤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인도시장은 꾸준히 공략해야한다"며 "그러나 인도에서도 차별적인 기업 특유의 우위가 없을 경우 결국 경쟁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기업들이 세계 경쟁전략을 다시 짜고, 정부 정책도 거기에 맞춰 재편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