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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태 기재위원장의 이상한 회의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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궐련형 전자담배에 부과하는 세금 인상 문제를 놓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파행이 지루하게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다국적 담배회사들이 6월부터 잇따라 아이코스 등 신종 전자담배를 내놓았는데도 국회가 개별소비세 인상 문제를 장기간 정리해 주지 못하고 있는 것. 결과적으로 국민을 위해 쓰여야 할 막대한 재원이 외국계 담배회사들의 호주머니로 흘러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최근 불거진 필립모리스 허위자료 논란은 상임위 심의 과정을 왜곡시켰을 뿐만 아니라 각종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먼저 지난달 28일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이날 최대 관심은 조세소위가 합의한 궐련형 전자담배의 개소세 인상 문제였다. 현행 1갑당 126원에 불과한 개별소비세를 일반담배와 동일하게 594원으로 인상하자는 게 소위의 합의내용이었다.

그런데 조경태 위원장은 회의 시작부터 사견을 밝히고 나섰다. "간접세 세율 문제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국민건강과 조세부담, 조세정의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심도있게 살펴봐 주기를 부탁드린다"며 여야 의원들이 소위에서 합의한 내용에 대해 재론을 촉구한 것이다.

상임위에서 세금 인상 반대측 요지는 대체로 건강유해성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과 외국에 비해 과도하게 세금이 높게 매겨졌다는 점에 모아졌다.

그때 자유한국당 최교일 의원이 이를 뒷받침할 만한 모종의 자료를 거론하기 시작했다. 최 의원은 "외국의 경우는 세율이 낮다고 하는데, 위원장님께서 자료를 구해서 나눠주시면 의원들이 참고가 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같은 당 소속 조경태 기재위원장은 "기재부, 자료를 준비해 주시고요, 참고로 이탈리아는 40% 세율을 적용합니다. 일반담배에 비해서요. 영국은 31%, 독일 27%, 덴마크 19% 수준입니다. 의원님들 참고하시고요, 스위스와 네델란드는 21% 수준이란 말씀 드립니다"라고 말했다. 필립모리스가 <궐련형 전자담배="" 해외사례="">라는 제목으로 작성한 자료와 정확히 일치한다. 해당 자료 상단에는 '자료 출처: 필립모리스코리아'라고 기재돼 있다.

조경태 위원장은 이어 "기획재정부, 이 자료 준비돼 있겠죠, 그 자료 없으면 정말 심각합니다. 전(全) 의원님에게 ‘지금 빨리’ 제출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사실상 배포를 지시했다.

이 발언이 있고 나서 정확히 10여분 뒤 조 위원장은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지금 의원님들에게 해외 사례가 배포되고 있을 겁니다. 자료를 잘 참조하셔서…보니까 대체적으로 40%를 초과하지 않는 데이터가 여러분들게 주어지고 있을텐데요. 참고해서 질의해 달라"고 말했다. 추후 허위로 판명난 자료를 위원장이 기재부에 '지금 빨리' 제출하라며 사실상 주도적으로 배포하도록 지시한 뒤, 자료가 배포되자 전체 의원들에게는 해당 자료를 '잘 참조해서 질의하라'며 가이드를 한 셈이다.

당시 전체회의에서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국제적으로 전자담배 신종상품이 출시된 지가 얼마 안됐다. 그래서 필립모리스에서 제공한 이 통계도 아까 송 의원님(송영길)이 지적한대로 좀더 정확한 자료가 있어야 되겠고"라며 기재부 차원의 해외과세현황 자료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지적했다.

이달들어 기재부가 직접 출장이나 이메일 등으로 해당국가 정부에 문의해 확인한 결과 상당수 국가의 세금 비율은 필립모리스가 제출한 내용과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그리스는 91.5%, 포루투갈 83.1%, 일본은 81.6%, 루마니아는 76.9%였다. 특히 일본은 필립모리스 아이코스의 전세계 판매량 중 80%를 차지하는 나라인데도 자료가 유독 터무니없이 차이가 났다.

3주 이상 지난 21일 다시 기재위 전체회의가 열렸다. 이종구 바른정당 의원이 허위자료 문제를 제기했다. 이 의원은 "필립모리스가 사실과 다른 내용이 담긴 허위자료를 제출해 기재위의 안건심의를 방해한 행위가 있었다"면서 "조경태 위원장이 방치, 내지는 허용해 줬는데 위원장이 해명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러자 조경태 위원장은 횡설수설했다. "기재부는 왜 제대로 검증도 안된 자료를…"이라고 말하다가 "물론 최교일 의원은 회사쪽(필립모리스) 자료를 보자고 해서 요청한 것인데, 그게 결과적으로…"라고 하더니, 최교일 의원에게 바통을 넘겼다.

최 의원은 "아마 속기록에도 다 있을 겁니다. 제가 부총리를 상대로 해외과세자료가 있냐, 혹시 있으면 제출하고, 혹시 없으면 파악해서 자료를 제출해 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얘기했고, 그후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지만, 누군가가 자료를 배포했습니다"라고 말했다.

28일 전체회의에서 위원장의 긴급지시로 10분만에 자료가 배포된 사실이 만천하에 다 공개돼 있는데도, '누가 배포했는지'로 초점을 옮기려는 시도로 보였다.

조경태 위원장은 "기재부가 그 자료를 배포한 거예요"라고 떠넘겼다.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의원은 기재위 행정실장을 불러 "위원장의 지시없이 자료를 배포할 수 있느냐"고 따져물었고 "소위를 구성해 진상조사를 하자"고 요구했다.

국민의당 김성식 의원은 "위원장은 공정하게 회의를 진행해야 한다. 혼자 마이크를 붙들고 마음 놓고 말하는 게 맞나. 일부 다국적 기업이 국가로 돌아와야 할 이익을 누리는 과세사각지대를 방치해도 좋다는 말이냐"고 질타했다.

두 번의 기재위원회 전체회의를 바라보면서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먼저, 대한민국 국회 기획재정위원회가 과연 과연 어느나라 상임위인지 혼란스럽다. 새로운 형태의 담배가 국내에 시판된지 넉달이 다 되가는데 변화된 환경에 호응하는 세율을 신속히 정하는 것은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국회에 부여한 의무다. 이를 방기하면 직무유기이자 배임에 해당한다.

 

필립모리스와 BAT코리아가 국내에 시판중인 궐련형 전자담배의 시장잠식 속도가 매우 가파른 것으로 알려졌다. 8월 국회도 넘기더니 추석연휴 전에도 개정안 처리를 못한다면 웃고 있을 주체는 다국적 담배회사들이다. 기재위는 누구의 이익을 대변하는가?

조경태 위원장의 이해하기 힘든 회의진행 방식도 의문이다. 회의를 공정하게 진행해야 할 위원장이 사견을 지나치게 앞세우거나, 조세소위 혹은 여야 간사간 합의내용을 무력화시키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일부 내용이 허위로 드러난 필립모리스의 자료를 여야 의원들에게 배포되기 전이 미리 입수해 읽어주고, 기재부로 하여금 자료를 구해 '신속히' 배포하라고 지시한 과정이 석연치 않다.

자료를 신속히 배포하라고 지시한 뒤 의원들이 참고해서 질의하라고 당부하는 상임위원장, 그런데 나중에 그 자료의 팩트가 대부분 허위였다?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는 많은 국민들은 기재위가 외산담배회사들의 로비에 놀아나고 있다고 의심할 것이다. 진상이 명확히 규명되지 않으면 담배회사와의 유착의혹이 증폭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조 위원장은 궐련형 전자담배 과세와 관련해 서민증세 반대를 주장했는데, 정작 3년전 담배값이 4,500원으로 인상될 당시 공개적으로 반대한 흔적은 찾기 힘들다.

결국 21일 상임위는 조경태 위원장의 일방적인 산회 선포로 안건 상정이 무산됐다.

아이코스 전세계 판매량의 80%를 차지하는 일본은 일반담배에 비해 81%의 세율을 매기고 있다. 우선 그 정도의 세금은 매기자며 기재부가 절충안으로 제시한 80% 인상안도 묻혔다.

과세공백은 과세증발이다. 누가 책임질 것인가?

기재위 관계자는 22일 "기획재정위원회는 전통적으로 모범상임위였다. 항상 합의정신을 존중하고 국익을 생각했는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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