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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고함 탑승기] "탈 때마다 '해치'가 꼭 다시 열리기를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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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중의 비밀병기' 잠수함 승조원들 "우리는 바다 지키는 침묵의 수호자"

제주민군복합항에 정박중인 장보고함(앞쪽)과, 이억기함(뒷쪽) 모습. (사진=해군 제공)

 

지난 12일 오후 제주 해군기지. 멀리 한라산을 배경으로 청명한 초가을 날씨가 방문객을 반겼다. 늠름한 모습의 수상함들로 위용을 자랑하는 제주민군복합항 한켠에 25년간 바닷속 임무를 조용히 수행해온 장보고함(SS-061)이 정박해 있었다.

독일 HDW 조선소에서 건조돼 1993년에 취역한 한국 최초의 209급 잠수함이자 1번함으로 불리는 장보고함. 길이 56m, 높이 11m, 폭 6.2m의 단단한 모습에 25년 관록이 배어나왔다.

장보고함은 1997년 하와이 파견훈련 때, 해군 최초로 하와이까지 1만마일 (18,000㎞) 잠항에 성공했다. 2004년에는 RIMPAC(환태평양연합훈련)에 참가해 15척의 가상 적 수상함을 상대로 40여 차례 가상 어뢰 명중과 항모전단 전멸 및 최종 생존이라는 불멸의 기록도 세웠다.

잠수함의 발진은 "1, 2홋줄 걷어"라는 함장의 출항 명령과 함께 시작됐다. 부두의 안전요원들이 단단히 묶어 두었던 함수와 함미의 홋줄을 풀어서 던져주자 잠수함 승조원들이 재빨리 걷어 올렸다.

입항 준비를 위해 수직사다리를 이용해 함수 갑판으로 이동 중인 갑판요원들의 모습. 함수 중간 부분에 위치한 해치와 수직 사다리는 잠수함 내부에서 외부로 출입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다. (사진=해군 제공)

 

기자도 부두와 장보고함을 잇는 15m 길이의 다리를 건너 장보고함에 올랐다. 수직으로 우뚝 선 5미터 높이의 함교탑을 올라가는 동안에는 팔과 다리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열려 있는 해치(개폐식 원형 출입문) 속을 들여다보니 한 사람이 간신이 들어갈 만한 원통형 통로가 길게 이어져 있다.

잠수함과 외부를 연결해 주는 11m의 수직 통로. 미끄러지거나 하여 낭패를 당하지 않을까 살짝 걱정스런 마음으로 작은 발판들을 조심스레 딛고 내려갔다. 잠수함 내부에 들어서자마자 '좁다'는 느낌부터 엄습했다.

비좁은 선체에 어뢰와 대함유도탄, 기뢰 등 무기와 각종 탐지체계가 장착되다 보니 승조원들의 생활공간은 아주 협소할 수밖에 없다.

잠수함의 맨 앞쪽 칸은 무장 발사관실이다. '백상어' 어뢰를 탑재한 8개의 발사관이 묵중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한 아름이 훨씬 넘는 두께에 길이는 7~8m에 이르러, 외관만으로도 적 함선과 잠수함을 격파할 가공할 힘이 느껴졌다.

승조원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고 있다. 공간이 협소해 40여명의 승조원들이 교대로 식사를 한다. (사진=해군 제공)

 

아이러니 하게도 무장 발사관실은 승조원들의 식사 및 휴식 공간이기도 했다. 좁은 탁자 3개가 마련돼 40여명의 승조원들이 다닥다닥 붙어앉아 교대로 식사를 하고, 그밖의 시간에는 책도 보며 쉬는 곳이라고 한다.

기관장인 이창환 소령은 "창문도 없는 비좁은 공간에서 외부와 단절된 채 한 달여를 생활한다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다"며 "특히 가족에 대한 그리움, 가족과 통화나 문자도 주고받을 수 없는 상황이 승조원들을 가장 힘들게 한다"고 말했다.

장보고함이 출항한지 10분여 지났을까. 내부 스피커를 통해 "각 부서 잠항준비!" "전부서 잠항준비 끝!" "좋아!"라는 복명복창에 이어 잠수함 내부 탱크에 물을 채워 1200톤 장보고함의 부력을 없애는 충수작업이 진행됐다.

곧이어 머리 위에선 철썩 철썩하는 파도소리가 마치 효과음처럼 들려왔다. 이와 함께 육중한 잠수함 선체가 15m 수면 아래로 완전히 잠기고 잠망경만이 물 밖으로 나와 파도를 가르며 나아가는 스노클 항해가 시작됐다.

잠수함 꼬리 부분에 있는 기관실과 중간에 자리 잡은 조타실, 전투지휘가 이뤄지는 공간도 비좁고 불편했지만 훈련에 임하는 승조원들의 몸짓과 목소리는 차분하고도 단호했다.

"함수 전방 적 항공기 접촉, 비상~!" "비상~!" "긴급잠항~!" 비상경보가 발령되자 승조원 예닐곱명이 민첩하게 8개의 발사관 사이로 뛰어들었다. 잠수함의 선수 쪽을 조금이라도 더 무겁게 해 빨리 잠항하기 위한 것이었다.

장보고함은 급격하게 기울지며 20m, 30m, 50m…점점 더 깊은 바다 속으로 잠겼다. 장보고함은 최저 250여m 수심에서도 잠항이 가능하다.

전투정보실에서 어뢰발사훈련이 진행 중이다. 접촉된 표적에 대해 분석 및 문제해결이 완료되고 함장의 명령에 따라 어뢰발사를 준비하고 있다. (사진=해군 제공)

 

이어 적 함선이 나타난 것을 가상으로 한 훈련이 이어졌다. 잠수함은 잠항하는 순간 레이더 작동이 안 되기 때문에 오직 소리로만 적을 탐지해 낸다. 이때부턴 잠수함의 귀 역할을 하는 음파탐지기인 수동 소나와 거리측정 소나, 능동소나 등이 유일한 탐지 기능을 한다.

적 함선이 탐지되자 훈련 상황이 무색하리만큼 함내 전체가 긴장감에 휩싸였다. 해상지도와 주변 상황을 보여주는 여러 개의 모니터에 눈과 귀가 집중되고 적 함선의 정확한 위치와 진행 방향, 속도를 파악하는 작업이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이어 장보고함은 수심 15m까지 부상했고 잠망경을 올려 7천야드 전방에 있는 적 함선의 실체를 최종 확인했다. 주저없는 '발사' 명령에 1발의 '백상어'(어뢰)가 시속 50여㎞의 속도로 바다 속을 돌진해 몇분만에 적함선을 격침하는 것으로 훈련이 종료됐다.

무장관인 강민우 소령은 "대한민국의 가장 깊은 곳에서 조국의 바다를 지키는 침묵의 수호자로서, 지금 당장 전투가 벌어지더라도 즉각 적 함정을 격침시킬 수 있는 완벽한 대비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훈련이 끝나고 승조원들이 잠을 자는 침대(?)에 직접 누워보았다. 공간이 워낙 좁아 머리를 먼저 집어 넣고 몸을 굴려야 했다. 기자의 키에 꼭 맞는 길이, 어깨 좌우로는 한 뼘씩의 공간도 허용되지 않았다. 키가 175㎝가 넘으면 무릎을 세우거나 밖으로 다리를 내놔야 한다고.

장보고함의 작전과 임무는 꼭 적선을 발견하고 격침시키는데 국한되지 않는다. 승조원들에 따르면 매일매일의 일상이 축전지와의 싸움이라고 한다.

임무수행 중 전투정보실에서 전탐사들이 안전항해를 위해 해도에 각종 정보들을 기록하고 있다. (사진=해군 제공)

 

장보고함의 동력은 수백톤 무게의 축전지에서 나온다. 이 많은 에너지를 축전기에 담아두려면 하루에도 두세 번은 스노클(공기흡입장비)을 해수면 위로 올려 디젤 엔진을 가동함으로써 전기를 생산해야 한다.

209급인 장보고함은 아주 느리게 움직이거나 제자리에만 있다면 2,3일간 잠항이 가능하지만 실제 상황이 벌어져 최대 속도인 시속 40㎞로 움직인다면 몇 시간 만에 축전지가 방전되는 디젤잠수함이다. 한 단계 위인 214급 잠수함은 최대 2주 가량 잠항이 가능하다.

2020년대 초반에는 우리 기술로 설계한 3000톤급 잠수함이 도입될 예정이다. 북한의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에 대응할 잠수함으로서 사실상 무제한 잠항이 가능한 원자력추진잠수함 도입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서귀포 해역 일대에서 잠항 훈련을 끝낸 장보고함은 수시간 만에 다시 기지로 복귀하기 시작했다. 잠항 때 들었던 파도 소리가 다시 머리 위에서 들려오고 해치가 열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장보고함이 수심 15m까지 올라와 스노클 항해 중인 가운데 잠망경으로 밖을 내다보고 있는 기자의 모습. (사진=해군 제공)

 

해치는 잠수함 승조원들을 세상과 단절시킴과 동시에 연결시켜주는 유일한 통로이자 가장 중요한 안전장치다. 그래서 관행적으로 함장만이 해치를 열고 닫는다고 한다.

가장 먼저 해치를 열고 나가 넉넉한 웃음으로 기자를 맞아주던 김형준 함장(중령)에게 뻔한 질문을 하고 말았다.

"함장이 항상 해치를 닫는다던데 보통 그때 무슨 생각을 합니까?"

"오로지 한 가지죠. 승조원들의 안전. 해치가 다시 열리길… 꼭 다시 열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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