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아내에게 폭행을 가하며 외도를 추궁한 남편에게 아내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서울남부지법 제13형사부(안성준 부장판사)는 남편 오모(49) 씨의 상해치사 혐의에 지난달 31일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아내를 때려 다치게 한 상해 혐의에 대해서는 징역 1년 2월의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에 따르면 오 씨는 지난해 6월 30일 서울 양천구 신월동의 주택에서 과거 아내 이모(43) 씨가 만났던 내연남을 또 다시 만났다는 사실에 격분해 폭행을 가했으며 이 씨는 이후 창문을 통해 추락해 사망했다.
이 과정에서 오 씨는 포크가 휘어질 정도로 이 씨의 머리를 내려찍고 주먹으로 얼굴을 수차례 때리는 한편 이 씨가 "더 이상 때리지 말라"며 남편의 팔을 붙잡는 중에도 다시금 이 씨의 얼굴을 가격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씨는 오 씨에게 폭행을 당하던 안방 바로 옆에 있는 화장실로 피신한 뒤 문을 잠갔으나 오 씨가 곧바로 화장실 문을 걷어차 문을 부수는 상황에 이르자 화장실 창문을 통해 10m 아래 1층으로 추락하면서 다발성 손상으로 사망했다.
재판부는 "'남편 오 씨가 부인 이 씨에게 계속적인 폭행을 가했고 이를 피하기 위해 이 씨가 화장실로 피했다'는 부분과 '오 씨가 화장실 문을 부숴 거의 열릴 정도로 급박한 상황이 전개되자 이 씨가 화장실 창문으로 뛰어내렸다'는 사실관계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시했다.
또 "오 씨는 자신이 이 씨를 폭행했으나 그 시간은 길어야 1~2분 정도였으며 이후 2~3분 정도 대화를 나누다 이 씨가 소변을 보러 화장실에 가겠다고 한 뒤 '퍽' 하는 소리에 문을 두드렸으나 반응이 없어 문을 부쉈다고 일관되게 진술했다"며 "이를 반박할 별다른 증거자료가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오 씨가 부인 이 씨에게 계속해서 극도의 흥분감이나 공포심을 주고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한편 "오 씨가 이 씨의 안면을 3회 내지 10회 정도 구타해 눈에 멍이 들게 하고 코뼈를 골절시켰으나 이 씨가 '생명의 위협이나 강한 두려움'을 느낄만한 폭행은 없었던 걸로 보이며 이 씨 역시 크게 반항하지 않은 걸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다만 재판부는 "오 씨가 사건 직후 경찰에게 '본인이 이 씨를 죽였다'는 취지로 말한 점이나 검찰 조사에서 '이 씨가 폭행으로 겁을 먹고 두려움에 떨고 있던 상태에서 폭행을 피하려고 추락해 사망하게 된 것 같다'는 취지로 진술했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럼에도 "제출된 증거만으론 오 씨가 이 씨에게 가한 상해와 이 씨의 사망 사이 인과관계 등이 충분히 증명되지 않는다"며 오 씨의 상해 혐의만을 인정했다.
사망한 부인 이 씨는 지난 2013년과 2015년 무렵 우울장애 등의 병명으로 병원 치료를 받기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