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사진
문재인 대통령이 이른바 '몰카(몰래카메라) 범죄' 근절에 강한 의지를 밝히면서 관계 부처가 분주하다. 관련 제도와 개념이 허약한 만큼, 일회성 이벤트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와 함께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 말 한 마디에 대응 확 바뀐 관계부처 "대통령이 이렇게 대단하구나"'디지털성범죄아웃(DSO)'활동가 써니 씨는 최근 우호적으로 변한 경찰의 태도가 반가운 동시에 서운하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경찰은 몰카 영상을 직접 신고하러 간 활동가들에게 "피해자도 아닌데 왜 그러시냐"는 식이었다고 한다. 써니 씨는 "예전에 저희가 불법 영상 수백개를 신고하러 갔을 땐 되레 저희가 경찰을 괴롭히는 가해자가 된 느낌까지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경찰은 "굳이 찾아오시는 수고 대신 메일을 보내셔도 된다"고 '친절한' 설명을 할 뿐 아니라 "신고를 또 해달라"고 부탁까지 한단다. 문재인 대통령이 관계부처에 직접 관련 대책을 주문한 뒤다. "대통령이 이렇게 대단한 거구나"라는 인상을 새삼 받을 정도다.
◇ 방심위 '패스트트랙' 만들기 위해 정통망법 개정 논의
또 다른 주무 부처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도 비슷하다. 가해자가 직접 카메라를 설치하는 장면부터 몰카의 특징이 적나라하게 담긴 영상조차 "게시자의 권리" 운운하며 삭제조치에 미온적이던 분위기가 180도 바뀌었다는 게 관련 활동가들의 공통된 평가다.
지난 한 달간 집중 모니터링에 나선 것은 물론 한 주에 2번 가량이던 관련 심의위를 수시로 열겠다는 기조다. 또 몰카 유형의 음란물은 곧바로 삭제·차단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한 방안, 이른바 '패스트트랙(Fast -Track)' 만들기 위해 정통망법 개정을 준비 중이다.
문제는 상전벽해에 가까운 이 모든 상황이 최고 권력자의 '의지'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이다. 제도적 뒷받침은 물론, 몰카에 대한 관계 부처 스스로의 대응 매뉴얼이 나아진 결과가 아니다.
◇ "대통령 의지가 아니라 시스템으로 막아야"
한국성폭력상담소 이미숙 소장은 "존재하던 법이나 인력을 가지고도 충분히 할 수 있었던 일이었지만 지금에서야 단속이 이루어지는 것"이라며 "한 사람의 의지가 아니라 제도와 시스템으로 관련 범죄를 막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현행 몰카와 관련해 '성폭력범죄의 처벌등에 관한 특례법'을 적용하려고 하면, 피해자가 특정돼야 할 뿐 아니라 이 피해자가 '수치심'을 느껴야만 한다.
초상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있지만, '초상권 침해' 죄는 따로 없기 때문에 형사책임은 물을 수 없다. 민사상 손해배상만 가능하다. 피해자가 감당하기엔 복잡한 소송 절차일 뿐 아니라 영상에 '얼굴'이 찍혀 있어야 순조로운 일이기도 하다.
당장 일선 경찰서의 사이버팀은 사기도박 등 기존 사이버범죄의 인력 상당수를 몰카 단속으로 운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실적으로 지금과 같은 수준의 몰카 대응책이 어렵단 얘기다.
◇ 애매한 '수치심' 표현…사생활 침해 의미 담긴 '모멸감' 등으로 대체
자료사진
경찰 관계자는 "당초 경찰이 몰카 범죄에 소극적이라는 인식이 생기게 된 배경이, 게시자나 유포자 추적에 품이 많이 드는데 비해 처벌 수위는 낮기 때문"이라며 "지금이야 대통령이 나서니 이런 활동이 가능한 것이므로, 장기적으로는 인력 보강부터 제도 마련까지 다양한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대적인 몰카 근절 대책이 일회성 이벤트가 되지 않도록 이번 기회에 관련 제도를 정비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일단 여성계에서는 몰카 범죄를 정의하는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이란 표현이 '모멸감' 등의 개념으로 수정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왜 피해자가 수치심을 느껴야 하고, 그 것을 증명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 의식이자, 재판마다 '수치심' 판단에 널을 뛰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것이다. 경찰청 관계자 역시 "사생활 침해라는 개념으로 접근하면 가해자부터 범죄 행위에 대한 인식이 분명해지고 경찰 등 관계 부처가 범죄 여부를 따지는 것도 용이해질 것 같다"며 '수치심' 개념의 한계를 지적했다.
◇ "'피해자에게도 저작권' 논의 시작할 때"또 피해자가 영상물 안에 있음에도 몰카 제작자에게 기본적으로 저작권을 인정하는 저작물법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써니 활동가는 "방심위에 문제의 영상 삭제를 요청할 때마다 '게시자의 창작물'이란 얘기를 많이 들어야 했는데, 피해자 역시 영상물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복잡한 절차 없이 저작권자로써 삭제를 요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십대 청소년부터 몰카를 제작하고 유통하는데 참여하고 있는 상황이다보니, 교육부 등이 관련 교육에 선제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관계 부처와 시민단체를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