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故 김정남 인터뷰하고도 숨긴 MBC, 내부고발하자 '품위 유지 위반'으로 해고
- MBC, 파업투쟁보다 더 힘들었던 '파업 이후'의 시간... "동료들 다시 보자 눈물 밖에"
- "김장겸, 식물사장이지만 최대한 버티려고.. 가증스럽다"
- 21년간 마음속에 담았던 김광석의 죽음.. 영화 <김광석>으로 제작
- 인권의 후순위에 밀려있는 변사자들.. 한 해에 3만 명에 달해
- 김광석법 제정해야.. "타살 의혹 짙은 사망사건, 공소시효 무관하게 수사하자는 것"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30~20:00)
■ 방송일 : 2017년 09월 04일 (월) 오후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이상호 (고발뉴스 기자)
◇ 정관용> KBS, MBC가 5년 만에 총파업에 돌입한 상황입니다. 과연 이 상황을 이분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요. MBC에서 시사고발 프로그램 만들다가 해직됐죠. 또 소송 끝에 복직했지만 9개월 만에 사표를 냈고요. 그리고 고발뉴스를 운영하고 또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이빙벨 제작해서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이상호 기자. 이번에 또 가수 김광석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점을 다룬 영화 김광석이라는 영화를 또 들고 나타났네요. 그래서 이모저모 이야기 듣고자 이상호 기자를 오래간만에 스튜디오에 직접 초대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이상호> 안녕하십니까?
◇ 정관용> 해고 됐던 게 언제였죠?
◆ 이상호> 지지난 대선이죠. 바로 직후였습니다. 박근혜 씨 당선되고 나서.
◇ 정관용> 2012년. 왜요. 왜 해고됐죠?
◆ 이상호> 내부고발을 했었죠. 간단히 말씀드리면 당시에 NLL 광풍의 핵심은 북한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과연 그런 발언을 했느냐 여부였잖아요. 그러면 북한 쪽 사람을 만나야 될 텐데. 가장 최고위층이라고 할 수 있는 김정남 씨. 김정은의 형, 이복형. 그 사람이 마카오에 있는데. 그 사람을 인터뷰를 한 거예요, MBC에서.
◇ 정관용> MBC에서. 그런데 보도를 안 했죠, 왜?
◆ 이상호> 그 내용을 인터뷰를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트위터로 알렸죠. 그래서 저는 품위유지 위반으로 해서 해고가 된 케이스인데.
◇ 정관용> 그런데 소송해서 대법원 확정으로 복직 판결났죠. 법원은 뭐라고 했나요?
◆ 이상호> 그건 공공의 알권리에 해당되는 사항이다. 품위유지 위반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판결이 됐습니다.
◇ 정관용> 그렇게 해서 복직을 했죠. 그리고 어디 부서에 배속 받았죠?
◆ 이상호> 저는 스케이트장 관리나 그쪽은 아니었고요. 심의부라고 있습니다, 보도심의부. 하루 종일 드라마 보고 감상문 쓰는 일을 했습니다.
◇ 정관용> 그러니까 기자로서 취재하거나 이게 원래 주장기인데 그쪽으로 보내지 않고. 그런데 사실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 이상호> 안 되죠.
◇ 정관용> 그런데 거기에는 어떻게 저항할 방법이 없었습니까?
◆ 이상호> 저항을 했죠.
이상호 고발뉴스 기자(사진=시사자키)
◇ 정관용> 일종의 부당노동행위잖아요.
◆ 이상호> 그렇죠. 그런데 그게 워낙 MBC 내에 만연된 상태였고 실제로 우리 PD들 170일이라고 하는 어마어마한 긴 시간이거든요, 생활인들한테는. 그때 가담했던 동료들은 전체가 다 비취재 부서, 스케이트장, 용인세트장 관리 아니면 지역 지사의 광고담당 이런 걸로 다 날아갔죠. 그런 가운데 제가 이걸 특별히 문제 삼기가 그리고 실제로 그런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판결이 계속 나오고 있었어요. 원직 조치해라, 복직 시켜라.
◇ 정관용> 그런데 또 사측은 거부하고.
◆ 이상호> 거부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소송을 해도 실익이 없을 것 같고 그래서 택한 게 게시판 투쟁을 했죠. 왜 이게 MBC 뉴스를 사람들이 안 보는가를 분석해서 올렸죠. 그랬더니 게시판을 다 차단하더라고요. 그래서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다시 또 징계 당했죠.
◇ 정관용> 그 게시판에 뭐 올렸다는 이유로?
◆ 이상호> 그거 포함해서 해고기간 중에 다이빙벨이라는 영화를 만들었다 하는 게 주요 죄목이었습니다. 그래서 징계를 정직 6개월을 당했고 그러고 나서 다시 돌아왔더니 징계 중에도 가만히 있지 않았죠. 그래서 최순실, 박근혜 게이트를 사실 5년 전부터 취재를 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 내용을 대통령의 7시간이라고 하는 영화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었어요.
◇ 정관용> 징계 받은 기간 중에?
◆ 이상호> 네. 그거랑 김광석 취재랑 해서 또 6개월 정직을 받았죠.
◇ 정관용> 그래서 이제 더 이상 못 버티겠다, 여기서는. 스스로 사표 쓰고 나와서.
◆ 이상호> 작년 5월이었는데요. 최순실, 박근혜 관련해서 상당히 중요한 취재들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래서 안 되겠다 나가서 영화를 만들어서 유튜브든 어디든 발표를 하자 하고 작정을 하고 사표를 썼죠. 그러니까 이제는 아시지만 당시에는 최태민과의 관계의 심각성. 최태민에서 시작해서 최순실, 박근혜로 이어지는 이 커넥션의 심각성에 대해서 잘 모르고 계셨을 때인데 그때 당시에 4000억대 부동산을 저희가 발견을 했어요, 제보를 받고. 대선 직전에 그것도 저희가 인터넷에 올렸죠. 등기부등본이랑 최근에 문제되고 있는 미승빌딩이라든가 또 청담사거리의 씨티은행 건물이라든가. 그런데 언론이 지난 5년 동안 거의 안 받았었죠.
◇ 정관용> 그랬었죠. 그러니까 2012년 대선 전에 최태민이라는 이름은 등장을 했었고.
◆ 이상호> 등장했죠.
◇ 정관용> 복잡한 관계까지도 등장을 했어요. 그러나 그건 뭐냐 하면 과거지사식으로 치부가 돼버렸고 최순실이 대선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집권 후에 어떻게 되고를 추적하는 언론은 하나도 없었죠.
◆ 이상호> 할 수가 없었죠. 그 당시 언론 풍토 속에서는. 그래서 이제 저희가 계속 취재하다 보니까 이른바 한복게이트라고 하는 옷을 다 최순실 씨가 관장을 하고 실제로 종교적인 이른바 현몽이라고 하는 건데요. 꿈 얘기를 하면서 실제로 박근혜 일상을 지배하는 그런 내용이 취재가 됐어요. 인사문제라든가. 3년전쯤. 그리고 2년 전쯤에는 추가로 이제 최근에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내용들이 취재가 돼서 그걸 영화화하려고 작년에 나왔죠.
◇ 정관용> 다시 말하면 이상호 기자가 해직 당하지 않고 MBC가 보도 통제를 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최순실 게이트 이런 것도 사전에 막을 수 있었겠군요, 탄핵 사태까지 안 가게.
◆ 이상호> 박근혜 씨한테 도움이 됐을 가능성도 있었겠네요.
4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사옥 진행된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총파업 출정식에서 노조원들이 김장겸 사장 퇴진과 방송의 정상화를 촉구하고 있다. 이한형기자
◇ 정관용> 그럴는지도 모르겠네요. 지난 얘기는 이 정도 하고. 지금 동료들 또 후배들, 선배들 일제히 총파업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지금 상황 어떻게 보세요?
◆ 이상호> 밖에서 보시는 분들은 두 가지 관점으로 보시는 것 같아요. 크게 하나는 다시 공영방송을 살리기 위해서 우리 언론인들이 저렇게 나섰구나. 대견하다, 감동적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왜 지금 이제 와서 이렇게 싸우느냐 이런 말씀들을 하실 텐데 사실 내부에서 참 지난한 투쟁이 있었죠. 그리고 대부분 그것보다 더 어려운 게 이제 투쟁보다 어려운 게 이후에 사실상 유폐돼 있었거든요. 제가 잠시 복직돼서 깜짝 놀랐어요. 들어가보고는 정말 참담하더라고요. 만나면 눈물밖에 안 나오는 거예요.
◇ 정관용> 기자, PD들이 다 다른 데 가 있고.
◆ 이상호> 그럼요. 그 팔딱팔딱 생기 있게 뛰던 현장기자들 그리고 선배나 동료 앞에서도 할 말 하고 꼬장꼬장하던 지사 같던 선비 같던 기자들이 그냥 마치 실험실 어둠 속에서 말라가는 화초들처럼 전혀 뉴스랑 상관없는 부서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더라고요. 사실 그게 더 힘든 거거든요. 그러니까 또 그분들은 저 밖에서 고생하다 들어왔다고 위로해 주는데 저는 그 자체가 더 고통이었어요. 보면 항상 눈물 나고. 그렇게 사실은 버틴 거거든요. 그래서 아마 세계 방송 사상 최대 규모로 지금 파업이 공영방송 양대 축이라고 할 수 있는 MBC, KBS가 그야말로 빠짐없이 종사자들이 나와서 국민의 방송으로 돌아가겠다, 그런 선언을 하고 있는 것이거든요. 감개무량하죠.
◇ 정관용> 김장겸 사장 등은 왜 이렇게 강력하게 저항을 합니까?
◆ 이상호> 자신들이 무너지면 자한당이 무너진다, 이런 얘기를 하고 다닌다고 해요. 다시 말하면 자신들의 퇴진 이후의 자리를 바라보고 저렇게 쇼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아마 개인적으로 봤을 때는 나가고 싶을 거예요. 지금 동료 선후배들 어느 하나로부터 지지받지 못하고 있는 그야말로 식물사장인데 나가서 한자리 받으려면 최대한 저항하는 제스처를 보여야 할 테니까요. 가증스럽죠, 뭐.
◇ 정관용> 나가서 자유한국당의 뭔가 자리를 차지하려고?
◆ 이상호> 김재철 씨가 공천 신청했던 것처럼.
◇ 정관용> 뭔가 이렇게 싸우다 투사로 쫓겨난 모습이 확실히 보여야 저쪽 당에서는 그래도 공천 받고 표를 얻을 수 있다?
◆ 이상호> 그렇죠. 이제는 이 정도 했으면 된 거 아닌가요.
고용노동부 서부지청 감독관들이 4일 오전 서울 상암동 MBC 사옥으로 김장겸 사장 체포영장 집행을 시도하기 위해 사장실로 향하고 있다. 이한형기자
◇ 정관용> 그래서 자유한국당도 이렇게 정기국회 보이콧이라는 카드까지 쓰나요?
◆ 이상호> 많은 분들이 심지어 당내에서도 오늘 보니까 지금 상당히 전쟁 위협이 고조되고 있는 상당히 안보를 중시하는 그야말로 보수당에서 이런 시기에 보이콧하고 있는 게 말이 되느냐 당내에서도 지금 그런 말씀이 나오는데 외부에서 지켜보는 국민들 상당히 좀 착잡하실 거예요, 그렇죠.
◇ 정관용> 그래요. 처절한 자기반성으로부터 방송의 구조개혁 그리고 시민과의 관계개선에 이르기까지 개혁에 이르기까지 지난한 과정이지만 그걸 해내야만 신뢰받는 언론으로 다시 설 것이다. 그건 그렇고 영화 김광석 이것도 아주 오래전부터 만들었다면서요?
◆ 이상호> 21년 됐죠. 제가 수습기자였죠, 그때.
◇ 정관용> 그 해당 지역의 수습기자?
◆ 이상호> 네. 속어로 나와바리라고 하는데 마포경찰서 수습기자였어요. 관내 선배님 잘 아시겠지만 변사자들이 많이 발생하거든요. 그때 김광석 씨 변사가 발생한 거예요. 그런데 처음부터 너무 이상하더라고요. 저희는 육하원칙에 따라서 보고하는 법을 배우고 있었잖아요. 그런데 하나도 안 맞아요.
◇ 정관용> 그런데 왜 사건이 금방 묻혀버렸어요?
◆ 이상호> 당시에는 인터넷이 없었잖아요. 기사를 안 쓰면 없어지는 거거든요. 그런데 최초의 발견자인 서해순 씨가 자살이라고 아주 강변했어요.
◇ 정관용> 부인이죠?
◆ 이상호> 그리고 두 가지 이유를 내세웠는데 우울증, 여자 문제 복잡해서 자기한테 미안해했다. 그래서 자살했다. 그런데 취재를 해 보니까 둘 다 사실이 아니더라고요. 우울증 약이 발견되지 않았어요, 신체에서. 그리고 여자 문제가 아니라 반대였어요.
◇ 정관용> 반대라면 부인의 남자문제?
◆ 이상호> 네. 그리고 실제로 자살했다고 쓰인 전깃줄이 3. 5m인데요. 그 시신엔 닿지가 않더라고요. 저희가 실측을 해 봤더니. 그런가 하면 목에 3번 감았다고 했는데.
◇ 정관용> 아니, 경찰도 현장조사 다 하지 않겠어요?
◆ 이상호> 하죠.
◇ 정관용> 그런데 부인이 강력 주장한다고 그냥 넘어갑니까?
◆ 이상호> 그게 부인이 최초 발견했는데 현장을 훼손했어요. 그러니까 무슨 말이냐 하면 3번 목에 줄을 감은 채로 계단에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고 했는데. 자기가 다 끌어서 내려가지고 20분 동안 CPR을 심폐소생술을 했다. 그런데도 안 살아나서 자기가 병원에 데려갔다, 이렇게 진술을 했는데 그러니까 현장이 하나도 안 남아 있으니.
◇ 정관용> 21년 바로 그 현장과 그 당시의 석연치 않은 점을 계속 마음에 두고 있다가 직접 부인도 몇 번 인터뷰를 했다면서요.
◆ 이상호> 네, 세 차례 했습니다.
◇ 정관용> 등등등을 다 담아서 그 의혹을 담은 영화를 김광석으로 이번에 만드신 거군요?
◆ 이상호> 사실 제가 있던 MBC에서 2580, 카메라 출동 사실은 이런 프로그램 있을 때마다 계속 추진했었어요. 그런데 이제 워낙 자살이 아닌 건 명백한데 그러면 누가 죽였냐 이걸 저희가 얘기해야 되잖아요. 그러면 100% 소송이잖아요. 그래서 5년 전에 해고 되고 나서 이제 영화로 만들면 제가 책임지면 되니까 그때부터 다시 본격적으로 취재를 하기 시작했죠.
◇ 정관용> 이 영화를 통해 뭘 말하고 싶은 겁니까?
◆ 이상호> 김광석 씨의 억울함 우선 풀어드리고 싶고요. 두 번째는 김광석 씨는 그나마 유명인이었잖아요. 그리고 저 같은 또라이 기자도 붙어줬고. 그런데 그렇지 않은 변사자들 한 해 3만 명에 달하는 변사자들이 발생하는데. 아직 우리나라가 이분들은 돌아가셨기 때문에 말을 못하잖아요. 그러니까 인권에서 후순위로 밀려 있는 상황입니다. 검안의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리고 검사들이 더 적극적으로 형사소송법에 나와 있는 데로 현장 입회해 주셔야 되고 그런 취지에서 김광석법을 이번에 만들었으면 좋겠다.
◇ 정관용> 일명 김광석법.
◆ 이상호> 네, 변사자에 대해서 타살 의혹이 짙을 경우에 공소시효 무관하게 수사하자. 그래서 억울한 사람 없도록 하자.
◇ 정관용> 재수사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그 운동까지 지금 하고 계신 거죠?
◆ 이상호> 같이 김광석. kr 에서 서명 받고 있고요. 다행히 국회의원분들께서 많이 봐주셨어요, 영화를. 그래서 안민석, 박주민, 진선미, 추혜선 이런 의원들께서 법안 발의를 위해서 법률 검토에 들어가셨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 정관용> 그래요. 또 아까부터 언급했던 대통령의 7시간. 그것도 영화로 나옵니까?
◆ 이상호> 그거 원래 작년에 서둘러서 내려고 했죠. 그런데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가 터져서 좀 더 취재를 해서 부산국제영화제에 내려고 했어요. 제가 거기에 관계가 있잖아요.
◇ 정관용> 다이빙벨 논란이 있었던.
◆ 이상호> 네. 그런데 이용관 당시 다이빙벨이라는 영화를 지켜주셨던 그 이용관 위원장께서 아직도 계속 재판에 계류 중이시고 명예회복이 안 되고 계세요. 그래서 아직 정상화가 안 되고 있어서 내년쯤을 생각하면서 좀 더 보강해서 제작을 하고 있습니다.
◇ 정관용> 거의 완료는 된 거네요.
◆ 이상호> 일단 가편집은 마친 상태죠.
◇ 정관용> 앞으로 이제 계속 영화제작자, 영화감독으로 가는 겁니까?
◆ 이상호> 취재하는 기자로 남는 거죠. 다만 이제 미디어 환경이 변화해서 국민들에게 알권리를 위해서라면 다양한 영역에서 다양한 매체로 만나 뵐 것 같습니다.
◇ 정관용> 평생기자로. 그러나 영화도 빌릴 수 있고, 영화라는 형식도 빌릴 수 있고 뉴스형식도 빌릴 수 있고 다양한 형식으로 국민들께 알리겠다. 요즘 또 비밀리에 취재하고 있는 다른 거 하나 있습니까?
◆ 이상호> 전두환 문제 또 오랫동안 취재해 왔잖아요. 전두환 비자금과 전두환을 옹위하는 기득권 세력의 민낯이죠. 그리고 재벌 문제. 본의 아니게 이제 저한테 안겨주시는 제보들이 많아서 그건 제가 책임져야 될 것 같습니다.
◇ 정관용> 혼자 하는 게 너무 힘들지 않아요?
◆ 이상호> 도와주시는 분들 많고요. 저희 고발뉴스에도 좋은 PD, 기자들 많이 모여들고 있습니다.
◇ 정관용> 그래요. 이상호 기자 함께 만났고요. MBC, KBS의 앞날 이상호 기자가 바라는 대로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제대로 국민과 함께 자리잡는 그런 방송사들이 되길 같이 기대하면서 또 성원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고맙습니다.
◆ 이상호> 네,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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