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자료사진)
한 시중은행에서 실적 압박을 받던 가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만, 사측 복지단체는 자살에는 조위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며 등을 돌렸다. 부부행원이었던 아내까지 부당하게 해고되면서, 한 때는 가족의 전부였던 회사가 이들 가정을 파괴해 버렸다.
◇ 40대 가장이지만 상사에 '빽빽한 반성문'…"수치스러웠다"출근할 때마다 '죽고 싶다'는 말을 뱉곤 했던 A은행원 B 씨는 지난해 5월 자신의 차에서 번개탄을 피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회사의 실적 압박이 안그래도 가계 빚이 부담이었던 B씨를 막다른 길로 내몰았기 때문이다. 40대 가장이었던 B씨는 실적이 떨어지는 날이면 "마음이 찢어지게 아프고 죄송하다"는 내용이 담긴 반성문을 써서 상사에게 제출해야 했다.
A씨가 써왔던 반성문. "현재 누나가 암투병에 걸려 고생하고 있는 상태여서 힘이 든다"고 읍소하는 내용이 쓰여 있다. (사진=유가족 제공)
A씨가 써왔던 반성문. "현재 누나가 암투병에 걸려 고생하고 있는 상태여서 힘이 든다"고 읍소하는 내용이 쓰여 있다. (사진=유가족 제공)
출신에 따른 차별도 높은 벽이었다. B씨는 18년째 만년 대리였다. 합병 이전 (구)보람은행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승진을 막았다는 게 가족들의 주장이다. 아내에게 B씨는 수치스럽다는 얘기를 자주 했다고 한다. 스트레스로 안면이 마비되는 구안와사까지 앓았다.
결국 세상을 떠나기 전 B 씨는 가족에게 "먼저 가서 미안하다"는 말과 회사에서 조위금을 지급할 것이니 그 돈으로 빚을 갚고 딸과 생활을 이어가라는 당부가 담긴 유서를 남겼다.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처럼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가족에게 돈을 남기고자 했던 것이다.
B씨와 함께 A은행에 근무하던 아내 C씨는 가장의 죽음만큼 가혹한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 A은행 직원의 복지 지원단체라고 할 수 있는 행우회에서 4억여 원의 조위금 지급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유는 B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보통 직원이 사망할 경우 행우회는 8명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의결을 거쳐 조위금을 모금해 유가족에게 전달한다. 지금까지 한 건을 빼고 대부분의 직원 사망에 조위금이 전달됐다. 하지만 행우회 측은 "사내 직원의 자살이 회사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다"며 지급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B씨가 극단적 선택을 한 배경 중 하나가 사측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회사에 미치는 영향'을 운운하는 게 맞냐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두 차례나 직원이 자살한 경우에 조위금이 지급된 바 있어 형평성조차 맞지 않는다. 심지어 조위금 지급을 위한 조사 과정에서는 아내 C씨에게 "실제 부부가 맞느냐"는 막말도 있었다.
◇ '부당해고' 당한 아내…장애 앓는 딸과 생계 '막막'"회사가 남편을 죽음으로 밀어넣었다"고 생각하는 C씨는 회사 측과 줄곧 날을 세웠다. 장애를 앓는 딸과 일년에 수천만원씩 소요되는 치료비를 생각하면 독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사측은 상사의 지시로 진행한 업무에 대해 회사 측이 채권 서류를 조작한 것이라며 B씨를 징계면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