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왜 '사회적 약자'인지 알려 않는 '까칠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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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EBS 제공)

 

지난 14일 밤 방송된 EBS 1TV 젠더 토크쇼 '까칠남녀'에서는 '남자들이여, 일어나라'라는 주제로 일부 남성들의 역차별 주장을 다뤘다. 이 과정에서 해당 주장에 적극 동조한 빅데이터 전문가 정영진과 코미디언 황현희는 '사회적 약자'로서 여성이 직면해 있는 수많은 차별에 대한 몰이해를 여실히 드러냈다. 이를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은 "왜 남자들이 정수기 물통을 갈아야 하냐"는 한 직장인 남성의 사연에 대한 소감이었다. 사연 내용은 아래와 같다.

"안녕하세요. 저는 입사 2년 차인 아직은 새내기 직장인 남성입니다. 직장생활 한 지 2년이 지나도록 제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정수기 물통을 가는 일입니다. 저를 포함해서 우리 사무실 남자 직원들은 일하면서 물 마시는 일 거의 없습니다. 별다방 텀블러에 티백 넣어서 뜨거운 물 1리터씩 담아 마시는 남자 직원? 전 한 명도 못 봤습니다. 그 물, 그럼 누가 다 먹겠습니까? 여직원들이 먹습니다. 그런데 정수기 물통 가는 여직원 보셨습니까? 왜 먹는 사람 따로 있고, 무거운 정수기 물통 가는 사람 따로 있나요? 여직원들한테 커피 타 오라고 하는 것은 직장 내 성차별이니 하면서 여직원들 눈치 보기 바쁜 남자 직원들에게 이런 궂은 일 시키는 건 당연한 겁니까?"

이를 두고 "황현희는 오늘 (프로그램 에피소드 촬영을 위해 정수기 물통을) 처음 들어봤다. 땀을 뻘뻘 흘리고 다리도 후들거리는 게 있었다"고 토로했다.

이에 작가 은하선은 "그런데 요즘 얼음까지 나오는 렌탈 정수기도 월 4만~4만 5000원이면 빌리는데, 만약에 회사 입장에서 직원들을 부려먹으면서 그 4만 5000원이 아까워서 남자 직원들을 더 많이 부려먹는다면, 그것은 고용주에게 따져야 할 문제가 아닐까 싶다"고 전했다.

사회적으로 계급·성·인종 등과 관련한 차별을 만들어내 경쟁시키고,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도록 함으로써 기득권을 유지하는 권력층의 전략에 한목소리로 개선을 요구해야 한다는 점을 은하선은 적확하게 지적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영진은 "그러면 고용주에게 따져서 집에서 다 근무하면 되잖나"라며 "월 렌탈 문제를 떠나 회사에 궂은 일이 있을 때 이 궂은 일에 대해 남성이 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분위기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 "사회적 약자는 역사 속에서 받아 온 차별로 위치지어진다"

(사진=EBS 제공)

 

이날 방송에서 "여성은 사회적 약자일까?"라는 MC 박미선의 물음에 은하선은 "여성들이 정말 보호받아야 할 약자이기 때문에 온실에 넣어두고 잘 키워달라는 것이 아니"라며 "그런데도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면서 '니네 약자야? 그러면 우리가 보호해 줄게. 약자해라'라고 말하는 것은 더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정영진은 "사회적 약자로서 스스로를 규정하면서, 혜택들은 다 받아가면서 사회적 약자로서 생겨난 일들에 대해서는 거부하겠다는 것"이라며 "사회적 약자로 보여지는 것은 별로 원하지 않고, 대신 사회적 약자로서 받아야 할 혜택은 받고 싶다는 것 아니냐"는 궤변을 늘어놨다.

결국 계급, 성, 인종, 장애, 종교 등을 이유로 불합리한 차별에 직면해 있는 사회적 약자의 개념에 대한 몰이해를 드러낸 셈이다.

문화평론가 손희정은 "사회적 약자라는 것은 물리적·지적·업무적 능력이 떨어진다는 약자의 의미가 아니라, 지금까지 역사 속에서 쭉 받아 온 차별 안에서 사회적 약자 위치에 놓여 있다는 의미"라며 "그렇게 약자로 위치지어져 있으니 그 위치를 올리는 방식으로 적극적인 시정조치가 필요하고, 그것이 사회적 약자라고 말해지는 계층에 대한 제도적인 혜택들인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영진은 여전히 "그것은 결국 여성들 스스로를 굴레에 가두는 일이라고 본다. 예를 들면 '여성 전용 뭘 만들어준다' '여성들을 위한 정책을 편다'고 할 때 여성들이 나서서 '그런 것 하지 마세요' '그런 것 없어도 우리 얼마든지 잘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오히려 여성들 스스로를 더 강하게 만드는 일이지, 일단 누릴 수 있는 혜택들은 다 누리겠다는 식으로 간다면 그것은 여성들 스스로를 옭아매는 일"이라고 강변했다.

젠더론 관련 저서를 여럿 낸 일본의 교육사회학자 다가 후토시는 책 '남자문제의 시대'(펴낸곳 들녘)를 통해 "'젊은 남자가 야무지지 못하다'든가 '여자가 너무 세다'는 말처럼 특정한 '대역'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으로, 알 것은 다 알고 있다는 식으로 구는 반지성주의적 풍조마저 강화되고 있는 듯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는 노동시장에서의 지배체제를 유지하려는 기득권층의 분열·차별 전략에 대해 아래와 같이 진단했다.

"현재의 메리토크라시(능력에 따라 직무가 배분되고 보수가 지급되는 원리)는 메타 수준의 '남성적 능력'의 발휘를 통해 경쟁에서 승자가 된 일부 여성을 '명예 남성'으로서 '남자' 쪽으로 끌어들이면서도, 그런 경쟁에서 탈락한 더 많은 사람들, 즉 대부분의 여성과 점점 더 많은 남성을 '남자가 되지 못한 자'로 주변화함으로써 노동시장의 남성지배체제를 재편해가고 있다. 거기에 이미 적극적인 의미의 '여성적 능력'은 존재할 수 없다. 경쟁에서 이김으로써만 그 소유가 증명되는 메타 수준에서의 '남성적 능력' 보유자와 그것을 갖지 못한 패자와의 차이만이 무정하게도 점점 더 강조되어가는 것으로 보인다." (97쪽)

결국 남성 역차별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왜 확산됐는지를, 남녀의 다툼을 통해 누가 이득을 얻게 될지를 고민하는 것이 먼저 아닐까. 경쟁 대상이 아니라, 사회 모순을 함께 변화시켜 나갈 동반자로서의 여성을 그려낼 '까칠남녀'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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