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자료사진)
최근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 해법으로 무기계약직이나 자회사를 통한 정규직 전환을 검토하면서 자칫 비정규직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더 공고히 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 기한 없는 비정규직, '중규직' 무기계약직이 비정규직 해법?"'무기계약직을 대폭 확대해 고용을 보장하겠다'로 해석된다" 학교비정규직 노동조합이 지난 20일 정부가 내놓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추진계획'에 대해 발표한 논평이다.
그동안 정부는 상용직이라는 개념 아래 무기계약직을 정규직으로 분류했고, 이번 정규직 전환 계획에서도 비정규직 노동자 대다수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할 계획을 내놓았다.
무기계약직의 문제점은 지난 16일 폭우피해 복구작업 도중 숨진 박모(50)씨의 사례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충북 도로관리사업소 도로보수원 박씨는 이날 아침부터 침수된 지하차도 복구 작업을 벌이다 오후에 숨진 채 발견됐다.
박씨는 공무수행 중 사망했지만, 무기계약직은 공무원연금법상 공무원으로 인정받지 않아 순직 처리되지 못했고, 급기야 국가인권위원회도 지난 20일 박씨에 대해 순직을 인정하고 관련 제도를 개선하라고 촉구했다.
이처럼 무기계약직은 기간제와 비교해 고용 기간의 한계만 없을 뿐,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더라도 임금·수당과 노동조건 등에서 차별이 심해 노동계에서는 '중규직'이라고 불리며 '진정한 정규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서울시는 지난 17일 '노동존중특별시 2단계 계획'을 발표하면서 무기계약직을 비정규직으로 인정하고, 전면 정규직화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대신 정부는 무기계약직에 대해 공무직·상담직 등 직군별로 명칭을 따로 부여하고, 관련 인사제도를 마련하겠다는 처우개선 방안을 제시했다.
이는 아무리 오래 일해도 인사평가·승진 등에서 차별을 받는 무기계약직의 또다른 문제점을 우선 해결하겠다는 의도로 읽히지만, 이러한 방식은 민간부문에서는 오히려 무기계약직을 별도 직군으로 나눠 정규직과의 차별을 더 강화하는 수법으로 악용된 지 오래다.
또 이번 정규직 전환 계획에서는 '동일 가치 노동, 동일 임금'이라는 모호한 선언적 문구만 담겼을 뿐, 임금 인상 등 무기계약직의 실질적인 노동조건 개선 방안은 제외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당시 정규직과 비정규직 임금 격차를 80% 수준까지 줄이겠다고 공약했지만 정작 이번 전환 계획에서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오히려 정부는 우선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 고용안정부터 확보하고, 실질적인 처우개선은 단계적·점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자칫 기존 정규직과 같은 대우를 할 경우 역차별 논란을 부를 수 있고, 인건비 등 부담이 폭증할 수 있다는 이유다.
이로 인해 정부가 전환방식과 임금수준 등의 결정과정을 개별 기업단위 노사 협의에 맡긴 바람에 무기계약직의 처우 논란은 향후 노정갈등의 불씨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 자회사 통한 고용이 정규직 전환? "처우개선 불가능한 구조로 밀어넣는 짓"무기계약직과 함께 검토되는 전환 방식은 자회사를 통해 우회적으로 정규직화하는 방안이다.
실제로 정부는 파견·용역 노동자를 정규직 전환 대상으로 포함하면서 "'노사 및 전문가 협의'를 통해 직접고용·자회사 등 방식과 시기를 결정하게 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공공부문에서 자회사를 설립·운영한 코레일의 사례를 살펴보면 본사 노동자와 자회사 노동자 간의 차별 문제가 노사갈등으로 비화된 지 오래다.
철도노조 김영준 조직국장은 "역무원이나 차량 정비 등의 업무에서 본사와 자회사 노동자 간의 업무 구분도 없고, 실제 업무 통제도 코레일 측이 한다"며 "그럼에도 자회사 노동자는 코레일 노동자의 절반 수준인 임금을 받고 연 7, 800시간 더 오래 일하는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자회사 노조가 노사 교섭으로 노동조건을 개선하려고 해도 코레일 측이 인건비 인상분을 제한해 교섭의 여지조차 없다"며 "정부가 처우개선이 불가능한 자회사로 밀어넣으면서 단계적 처우 개선을 얘기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꼬집었다.
민주노총 남정수 대변인도 "자회사를 통한 정규직 전환은 실제로는 파견, 용역업체 등의 간접고용 방식과 다르지 않다"며 "무기계약직 역시 현장의 차별 처우를 보면 정규직으로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남 대변인은 "정규직 전환과 무기계약직 등의 처우개선 방안을 노정 협의를 통해 반드시 동시에 진행되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