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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경기 안양의 한 극장을 찾은 회사원 허모(32)씨는 영화에 좀처럼 집중할 수 없었다. 앞에서 뭔가가 아지랑이처럼 계속 피어올랐다.
정체는 전자담배 연기였다. 앞자리에 앉은 20대로 보이는 청년이 연신 전자담배를 피워대고 있었다.
불쾌해진 허씨는 항의했지만, 청년은 전자담배를 계속 손에 쥔 채 "이거 연기 몸에 안 나빠요"라며 당당하게 맞받았다.
마침 오랜만에 데이트 중이어서 더 얼굴을 붉히기 싫어 참았다는 허씨는 "실내 금연은 상식인데 그렇게 뻔뻔하다니 이해할 수 없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서울 송파구에서 고깃집을 하는 김모(37)씨도 최근 전자담배 때문에 난처한 일을 겪었다.
저녁에 술을 곁들여 식사하던 일행 중 하나가 전자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이 남성은 자리를 뜰 때까지 한 시간 동안 연기를 뿜어댔다.
술에 많이 취한 그는 김씨가 두어 차례 피우지 말아 달라고 부탁할 때마다 "죄송합니다"라고만 할 뿐, 몇 분 뒤 다시 전자담배를 입에 물었다.
김씨는 당시 가까운 테이블에 있던 가족 단위 단골손님이 더는 식당을 찾지 않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고 한다.
전자담배가 담배사업법상 '담배'의 일종으로 명확히 규정돼 금연구역에서의 흡연 제재 대상이 된 지 3년여가 지났다. 우리나라 대부분 건물의 실내공간은 금연구역이다. 실외공간도 공중시설에 해당하면 역시 금연해야 한다.
그러나 주점 등 실내에서 전자담배를 버젓이 피우는 애연가들이 여전히 심심치 않게 목격된다.
전자담배는 일반 담배와 비교했을 때 연기에 역한 냄새가 훨씬 적어서 주변 사람들이 거부감을 덜 느낀다. 몰래 한두 모금 빨면 주변에서 알아채기도 쉽지 않다.
전자담배를 빨고서 내뱉는 연기는 인체에 무해한 수증기일 뿐이라는 '믿음'은 일부 애호가들 사이에서 여전하다. 전자담배는 연초를 태운 연기를 흡입하는 일반 담배와는 달리 니코틴이 함유된 액체를 기화해 이를 마시는 방식으로 피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전자담배의 유해성은 이미 국내외 수많은 연구를 통해 입증됐다고 단언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전자담배 35종의 유해성분을 분석한 결과 발암물질인 포름알데히드와 아세트알데히드, 유해성분인 니코틴, 아세톤, 프로피오달데히드가 나왔다.
폐암뿐 아니라 만성폐쇄성폐질환, 폐기종, 만성기관지염, 관상동맥질환, 치주질환, 당뇨병 등 다양한 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는 물질들이다.
신호상 공주대 환경교육과 교수는 "전자담배의 빨아 마시는 연기에 포함된 각종 유해물이 흡연자 인체에 완전히 다 흡수되는 게 아니라 50∼60%만 흡수될 뿐이며 나머지는 연기를 내뱉을 때 배출된다"면서 "전자담배도 간접 흡연자에게 유해하다"고 말했다.
조홍준 울산대 의대 교수는 "전자담배의 내뱉는 연기가 순수한 수증기에 불과하다는 믿음은 사실이 아니다"라면서 "이미 유해하다는 분석이 학계에서 상당히 이뤄져 있다"고 말했다.
최근 출시돼 큰 인기를 끄는 '궐련형 전자담배'도 아직 충분한 수준의 연구가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간접 흡연자에게 해를 끼칠 가능성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궐련형 전자담배는 담뱃잎을 태우는 게 아니라 찌는 방식으로 담배 연기를 만들어낸다. 궐련형 전자담배는 주요 유해물질이 일반 담배보다 90%가량 적게 발생한다고 제조사는 주장한다.
신 교수는 그러나 "일반 담배보다 궐련형 전자담배에서 일부 유해물질이 더 많이 검출됐다는 해외 연구결과가 있다"면서 "국내에서는 아직 연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간접 흡연자에게 무해한지를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자담배 간접흡연의 유해성 여부를 떠나 실내나 실외 공공장소에서의 금연은 기본적인 '에티켓'이라고 비흡연자들은 지적한다.
이달 초 초등학생 아이 둘을 데리고 워터파크에 갔다가 여기저기서 아무렇지 않게 전자담배를 피우는 모습에 놀랐다는 장모(43·여)씨는 "이런 모습을 자주 접하면 아이들이 커서 흡연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까 걱정이 됐다"면서 "전자담배 연기가 몸에 안 좋건 영향이 없건 허연 연기가 눈에 띄는 것 자체가 불쾌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