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날이 벌써 30년 전… 엊그저께 같아
- 아들 지켜주던 수많은 시민들 덕에 무사히 장례 마쳐
- 뒤에서 데모하라 했지만… 아들은 맨 앞에 서 있었다
- "촛불 대통령님, 국민 웃고 살 수 있는 나라 만들어주세요"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00~20:00)
■ 방송일 : 2017년 6월 8일 (목)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배은심 여사 (이한열 열사 어머니)
◇ 정관용> 내일 모레가 6.10 항쟁 30주년 되는 날입니다. 벌써 30년이군요. 6월 항쟁 하면 떠오르는 이름 바로 이한열 열사. 당시 연세대학교 2학년. 시위 도중에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서 참 꽃다운 청춘, 생을 마감했죠. 이한열 열사의 어머님, 배은심 여사를 오늘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어머니, 어서 오십시오.
◆ 배은심> 감사합니다.
◇ 정관용> 30년, 한 세대가 갔네요.
◆ 배은심> 글쎄요.
◇ 정관용> 어머님 마음속에서는 30년이라고 안 느껴지시죠?
◆ 배은심> 네, 안 믿… 남들이 삼십이라고 하니까 좀 이상하네요. 저는 엊그제께 같거든요.
◇ 정관용> 아직도 엊그제 같으세요? 아이고, 한열이가 최루탄 맞은 날이 바로 내일입니다, 6월 9일.
◆ 배은심> 예, 그렇습니다.
◇ 정관용> 광주시죠? 집이?
◆ 배은심> 네, 광주입니다.
◇ 정관용> 한열이만 서울에서 있었던 거잖아요.
◆ 배은심> 네.
◇ 정관용> 그 날 광주로 누가 연락을 해 줬나요?
◆ 배은심> 학교에서 연락이 왔었어요.
◇ 정관용> 그날 밤에? 6월 9일 밤에?
◆ 배은심> 밤이 아니고 한 5시 반쯤이나 된 것 같아요.
◇ 정관용> 오후에?
◆ 배은심> 네, 오후에.
◇ 정관용> 뭐라고 그러던가요? 전화해서?
◆ 배은심> 한열이가 위급하대요.
◇ 정관용> 위급하다? 그냥 다짜고짜?
◆ 배은심> 네.
◇ 정관용> 왜 그러냐고 물어보셨어요?
◆ 배은심> 왜 그러냐고 했죠. 그래도 ‘위급합니다’ 그랬어요.
◇ 정관용> 그 말만 해요? 최루탄 그런 얘기 안 하고?
◆ 배은심> 예, 그런 얘기 안 했어요. 그래서 어제 이한열이 어제 갔는데 왜 우리 한열이가 왜 우리 한열이가 위급하냐고. (그쪽에서) ‘위급합니다’ 그랬어요.
◇ 정관용> 광주 집을 갔다가 그 전날 떠난 모양이군요.
◆ 배은심> 6일날 현충일날, 그때도 연휴였어요. 그러니까 이제 6일날 아침에 왔다가 7일날 밤에 서울 갔어요.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 (사진=자료사진)
◇ 정관용> 올라갔는데. 그랬는데 다짜고짜 위급하다. 그래서 서울 올라와보셨더니.
◆ 배은심> 버스 타고 이제 자기 아빠랑 같이 갔죠, 이제. 저 터미널 가니까 교수님하고 학생들하고 몇 분이 나와 있더라고요. 이제 그분들이 차에 타라고 해서 타니까 병원으로 간 거예요. 가서 보니까 산소마스크 쓰고 그냥.
◇ 정관용> 중환자실에.
◆ 배은심> 그리고 아무것도 안 보였어요, 이제.
◇ 정관용> 그러니까 이미 의식불명이고 대화도 못 나누신 거잖아요.
◆ 배은심> 네, 못했습니다. 그래서 시간적으로 봤을 때 한 7시간 경과가 돼 버렸는데 좀 또 집이 가까웠고 시간이 좀 덜 경과가 됐으면 혹시라도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이 됐을 지도 모르는데. 7시가 넘었으니까 그냥 보니까 아들이에요. 앞이 캄캄했죠.
◇ 정관용> 그리고 이십 며칠을 중환자실에 있다가.
◆ 배은심> 네, 27일 동안.
◇ 정관용> 한 번도 깨어나지 못하고.
◆ 배은심> 네.
◇ 정관용> 그나저나 서울 딱 도착해서 교수님하고 학생들하고 이렇게 만났었을 때부터는 알았습니까, 경찰, 최루탄 이런 얘기를?
◆ 배은심> 그런 소리 없었어요.
◇ 정관용> 그때도 없었어요?
◆ 배은심> 없었어요. 병원에 가니까 이제. 그렇게 다쳤다고 이제.
◇ 정관용> 네. 참... 장례를 치르는 과정도 참 복잡했죠?
◆ 배은심> 좀 복잡했던 것 같아요.
◇ 정관용> 그때 경찰이 학교 주변을 전부 처음 에워싸고 있고.
◆ 배은심> 아니, 아침에 영안실을 가니까 벌써 거기가. 이제 뭐 말로 듣기로는 한 4만 명 정도 경찰들이 병원 앞에 있대요. 그런데 이미 이한열이는 안치실로 가버렸는데 그 사람들이 거기 있을 이유가 없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많이 있었어요.
◇ 정관용> 그래서 오죽하면 시신 운구하다가 혹시 경찰하고 충돌이 생기거나 빼앗길지도 모른다, 연세대 뒷산에 묻자, 아버님이 그런 얘기도 했다면서요?
◆ 배은심> 예, 아버지가 그랬어요. 나가면 큰일 난다고. 우리 한열이가 문제가 아니라 한열이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면 그거 어떻게 할 거냐는 거예요. 저보고 그러더라고요. 그 소리만 들어도 겁이 나잖아요. 이거는 어떻게 하면. 그런데 이제 발인식을 하고 이제 신촌로터리 나오니까 참말로 사람이 많은 거예요. 말로 할 수 없이 사람이 많으니까 그때 아빠가 그러시더라고요. 저거 보라고. 만약에 여기에서 이제 사고 나면 어떻게 할 거냐고 그래요, 이제. 그러니까 내가 앞이 캄캄해서 아무것도 안 보여버린 거예요. 그래서 이제 그래도 광주까지 간 것 아닙니까.
◇ 정관용> 그래도 광주로 가야 한다?
◆ 배은심> 가야죠. 저는 연세대 뒷산에 이한열이 놔두고 가면 보고 싶으면 또 못 오잖아요.
◇ 정관용> 예, 그렇죠.
◆ 배은심> 올 수가 없죠. 내가 올 필요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보내줘라, 이제 광주로. 못 보내주면 이고라고 갈란다고, 나는 가야 된다. 그 얘기를 하니까 밖에서는 많은 분들이 좋았나봐요. 광주로 간다고 하니까. 이제 엄마가 간다고 하니까. 그래서 아빠는 거기에 대해서 아무 말씀이 없는 거예요. 걱정이 돼서.
◇ 정관용> 걱정이 많으셔서.
◆ 배은심> 걱정돼서 말씀이.
◇ 정관용> 신촌로터리뿐만 아니라 광주 가서도 수많은 시민들이 한열이 지키려고 다 나왔었잖아요.
◆ 배은심> 그것뿐만 아니에요. 지금 이렇게 생각해 보면 구간구간 톨게이트에는 말도 못하는 사람들이 구간구간 그렇게 다 있더라고요. 그래서 아니, 남의 아들이 죽었는데 무슨 사람들이 저렇게 많이 나와서 왜 저럴까, 이제. 그러면서 따라갔는데 장성쯤 가니까는 산에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몰라요. 그래서 광주까지 그냥 막 이어져서.
◇ 정관용> 산에도 사람들이 쫙 서서.
◆ 배은심> 예예, 시민들이.
◇ 정관용> 고속도로에 차 보겠다고.
◆ 배은심> 그런데 저는 놀랐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한열이 광주까지 간 것이 아닌가.
◇ 정관용> 그렇죠, 그렇죠.
◆ 배은심> 그때는 경찰들이 (시신을) 가져가면 끝난대요.
◇ 정관용> 그러니까 조금 아까 어머님, 남의 자식 죽었는데, 이렇게 표현하셨는데 그 한 27일 그 기간 동안 이미 이한열은 모두의 자식, 모두의 동생, 모두의 오빠, 형님이 돼 있었던 거죠.
◆ 배은심> 그런데 저는 그것이 빨리 납득이 안 갔었어요.
◇ 정관용> 바로 그 당시에는.
◆ 배은심> 네. 그리고 나만 그렇게 그런 일을 당한 거로 알았고. 세상에 그런 사람들이 많은지 몰랐어요. 그랬는데 그 뒤에 보니까 이제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데모 과정에서 분신도 하고.
◇ 정관용> 그러니까요.
◆ 배은심> 투신도 하고 이런 사람들이 너무 많았어요.
◇ 정관용> 바로 그분들 모여 있는 그 유가족협의회, 우리 어머님께서도 참여하시고 회장도 맡으시고 그러셨잖아요.
◆ 배은심> 예. 그렇습니다.
◇ 정관용> 이한열 열사가 몇 남매에 몇 째입니까?
◆ 배은심> 저희 오남매인데요. 이한열이 네 번째예요. 누나들 위에 셋이고 그래서 좀 귀하게 컸습니다.
◇ 정관용> 누나 셋, 한열.
◆ 배은심> 밑에 동생.
◇ 정관용> 여동생, 남동생?
◆ 배은심> 아니요, 남동생.
◇ 정관용> 남동생. 다른 누나들이나 다 이한열 열사가 그렇게 데모에 앞장서고 그런 걸 알고 있었어요, 몰랐어요?
◆ 배은심> 알았죠.
◇ 정관용> 이미 알고 있었어요?
◆ 배은심> 셋째 누나가 인천여상에 교사로 있었으니까. 이제 개봉동에 방을 하나 얻어서 누나는 인천으로 가고 이한열은 연세대로 가고. 이런 생활을 하는 도중에 그랬으니까 누나는 알고 있었던 거죠. 그런데 간간이 한열이 옷에서 ‘엄마, 최루탄 냄새가 난다’고 간간이 그런 일도 있고 그렇습니다.
◇ 정관용> 어머니는 한열이한테 데모하지 말라고 말 안 하셨어요?
◆ 배은심> 어쩐 일로 하지 말라는 소리는 안 하고. 이제 교문이 보여요. 아침에 TV 틀어보면. 그러면 또 교문에 또 최루 가스가 자욱해. 하나 남자가 안 하면 못 쓰고. 뒤에서 해라, 뒤에서. 그게 날마다예요, 날마다. 그러니까 좀 큰방에 아주머니댁에서 전화를 바꿔줘야 하니까 그게 참 미안했던가 봐요, 얘가. 막 엄마가 아침마다 (전화를)하고 있으니까.
◇ 정관용> 전화를 하니까.
◆ 배은심> 네. 한 번은 하니까 엄마, 아들을 믿으라고 뒤에 서서 한다고, 이제. 그래서 내 아들 엄마가 믿어야지. 그랬죠, 이제. 그랬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 정관용> 뒤에 선 게 아니라 맨 앞에, 맨 앞에 선 거죠.
◆ 배은심> 맨 앞에 섰더라고요. 교문 밖이더라고요. 그럴 때는 아들이 저를 속인 것이 아닌가. 아들한테 속았다고.
◇ 정관용> 어제부터 연세대에서 이한열 열사 30주기 특별기획전이 열리고 거기 이제 외신기자가 찍은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았던 사진들도 나오고 어머님 가서 보시는 장면 저도 봤거든요.
◆ 배은심> 어제 봤어요, 저도.
◇ 정관용> 그 사진 보시니까 어떠셨어요.
◆ 배은심> 이제 죽고 싶어요. 그것 봐 버렸으니까. 그랬을 거라고 이제 생각은 했던 건데. 이제 사진을 보니까 정말 그런 거예요. 그렇게 딱 나와 있어요. 내가 생각했던 대로. 이제 ‘엄마 이쯤 됐으면 죽어도 괜찮겠다, 이제’. 그렇게 이야기했어요.
◇ 정관용> 생각했던 대로라는 게 무슨 말씀이세요?
◆ 배은심> 우리 한열이가 그렇게 맞았을 때 그랬을 거다라는 것을 항시 연상하고 있거든요. 그냥 부축한 게 아니고 맞았을 때는 사람이 맞았으니까. ‘아이고’, 한다던지 고꾸라진 거죠. 그냥 주저앉을 것 아닙니까. 그런 장면이 안 나왔었어요, 지금까지는. 그랬는데 이번에 그 사진이 이렇게 딱 손 짚으면서 쓰러진, 그게 보였어요. 그거 보니까 그냥 정신이 하나도 없네요, 지금.
◇ 정관용> 바로 내일 저녁에 서울광장에서 이한열 문화제, 또 장례행렬 재연 행사가 열릴 예정이라고요.
◆ 배은심> 그런 답니다.
◇ 정관용> 이애주 선생님도 오셔서 춤도 춰 주시고?
◆ 배은심> 예. 선생님 오셔서 춤 추신대요.
◇ 정관용> 매년 우리가 이렇게 이한열 열사를 추모하고 매년 가슴속에서 이렇게 보내주고 그러면서 조금씩, 조금씩 우리 민주주의가 커져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어머니?
◆ 배은심> 글쎄요, 저는…
◇ 정관용> 아직 우리 민주주의 멀었다, 이런 생각이세요?
◆ 배은심> 여러 가지를 보면서 느꼈죠. 이게 민주주의가 아닌데, 이런 민주주의를 원했던 게 아닌데.
◇ 정관용> 아직도.
◆ 배은심> 그렇습니다, 이제.
◇ 정관용> 특히 작년 가을 이후에 광화문 촛불집회 이거 보시고 어떤 생각이 드셨어요?
◆ 배은심> 처음에는 걱정했어요.
◇ 정관용> 왜요?
◆ 배은심> 군사 독재 시절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이면 최루탄으로 그 사람들 분산을 시켰거든요. 나도 많이 쫓겨다녔어요.
◇ 정관용> 그랬죠.
◆ 배은심> 최루탄 냄새 맡으면 저도 이렇게 막 쫓겨다녔는데. 거기다가.
◇ 정관용> 경찰차에 잡혀가시고 수없이 하셨죠.
◆ 배은심> 예, 했습니다. 최루탄 아무리 많이 나와서 해도 최루탄으로 분사시켜 버리면 견딜 수가 없거든요. 그래서 처음에는 걱정을 했는데 이제 차츰차츰 보니까 촛불 문화제로 발전이 되고. 이제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이 광화문을 꽉 메우고 그럴 때는 좀 부럽기도 했어요.
◇ 정관용> 그렇죠. 그 옛날 우리 시절에는 이렇지 못했는데. 그렇죠?
◆ 배은심> 옛날에 전두환 정권 때도 최루탄이 없었으면 저랬을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전두환이 독재에는 우리들의, 국민들의 이야기를 거부하면서 최루탄으로 입을 막아버렸거든요. 그래서 이제 나중에 문화제로 확산이 되고 많은 사람들이 효자동까지 꽉 차고 이런 것을 보면서 그때 최루탄이 없었으면 이한열이 이렇게 안 죽었을 텐데.
◇ 정관용> 그러네요.
◆ 배은심> 예, 그런 생각을. 최루탄, 그분들이 들으면 좀 섭섭할지는 몰라도 저는 그렇게 느꼈습니다.
◇ 정관용> 이런 민주주의 하려고 한 게 아닌데 아직도 멀었다, 이 말씀 하셨는데.
◆ 배은심> 우리 세월호 어린 자식들을 그렇게 수장시키고 이런 걸 보면서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거든요.
◇ 정관용> 그렇죠.
◆ 배은심> 그래서 그런 것들. 용산참사, 이런 것들 보고. 또 많은 사람들 구속시키고 이런 것들을 원했던 게 아닌데. 그런 것들을 보면서 이게 민주주의가 이게 아닌데. 민주화는 이렇게 가는 게 아닌데. 그러면서 많이 봤죠. 정치하는 사람들의 모습 많이 봤고 30년 동안이었으니까. 볼 것, 못 볼 것 많이 보고 30년이 돼 버렸네요.
◇ 정관용> 그러네요. 참 제대로 하라고 정부, 또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따끔하게 한 말씀 해 주세요, 어머니.
◆ 배은심> 우리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지금까지 진행되던 그런 말로 할 수도 없죠, 창피해서.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교도소에 가서 수갑을 차고 다니는 이런 나라. 이건 말할 수 없는 나라 아닙니까? 그래서 이제 우리 촛불 대통령이라고 저는 그럽니다. 우리 촛불 대통령님께서는 국민들이 원했던 것이 다 보였어요. 누가 말로 할 뜻도 없습니다. 지금 촛불을 들면서 다 요구한 것들이 보였고 그걸로 인해서 대통령을 속시원하게 만들었지 않습니까? 그리고 국민들의 그 말씀 새겨듣고 좋은 나라 만들고 국민들이 웃고 살 수 있는 나라 만들어주셨으면 좋겠다, 이제. 그러면 그게 민주주의고 또.
◇ 정관용> 그렇죠, 그렇죠. 국민의 말씀 듣고 그대로 해라.
◆ 배은심> 그렇죠. 그걸 원하고 촛불 들었으니까요.
◇ 정관용> 배은심 어머님의 지상명령. 정치권 전체가 정말 귀 담아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 배은심> 그런데 이제 제가 한 말씀 드릴 게 있는데. 어제인가 그제 신문을 보니까 물대포 무서운 거 아닙니까? 우리 백남기 선생님 돌아가셨단 말이에요. 그런데 물대포를 이름을.
◇ 정관용> 바꾼다고.
◆ 배은심> 참수리차, 뭐라 바꾼다고 이렇게 나오더라고요. 그게 옛날에 독재 시절에 우리가 안기부가 있었죠, 안기부. 안기부가 지금 국정원으로 바뀌었단 말입니다. 그런다고 해서 하나 달라진 거 없거든요.
◇ 정관용> 똑같죠.
◆ 배은심> 똑같은 그런 것들이 답습을 하고 있으면 안 되는데. 물대포는 있어서는 안 되는 겁니다.
◇ 정관용> 없애버려라.
◆ 배은심> (물대포 살수차를) 참수리차인가, 그걸로 바꾼대요. 이거는 어이가 없는 것 아닙니까?
◇ 정관용> 알겠습니다, 어머님. 물대포 이름 바꿀 생각 말고 없애버려라.
◆ 배은심> 그렇죠. 사람이 죽었으니까.
◇ 정관용> 그 명령의 말씀까지 귀담아 듣도록 하겠습니다.
◆ 배은심> 명령은 아니고. (웃음)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면 안 된다 이거죠.
◇ 정관용> 오늘 어머님, 여기까지 말씀 듣고요. 건강하셔야 합니다.
◆ 배은심> 감사합니다.
◇ 정관용> 배은심 어머님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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