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골드만삭스 빌딩(사진=위키피디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일자리 창출이 최대 관심사로 떠오른 가운데 올해안에 대규모 자금 조성이 가능해지는 초대형 투자은행(IB)들이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자산규모 4조 원이상인 초대형 IB들은 당국의 인가를 받으면 원리금을 사실상 보장해 주는 1년 만기 어음을 발행해 자금을 대규모로 유치할 수 있게 됐고, 조달 자금 가운데 절반은 기업 금융에 운용하도록 규정돼 있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가 공약한 '중소기업 경제구조 구축'이나 '혁신 창업국가', '고부가가치 창출 미래형 신산업 발굴 육성' 등의 정책을 추진하는데 자금 공급원으로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고 있다.
미국의 골드만 삭스나 모건 스탠리 등 거대 다국적 투자 은행들은 알짜 기업이나 새로운 서비스에 기반한 혁신적 기업 등을 발굴해 투자 및 컨설팅을 통해 육성한 뒤 수익을 얻은 사례를 과거에 보여줬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도 초대형 IB를 만들어 혁신적이거나 기술력을 보유해 미래 가치가 높은 유망 기업들을 발굴한 뒤 지속적인 관계를 가지면서 육성하는 역할을 하도록 해야한다는 주장이 오래전부터 금융계 안팎에서 나왔다.
IB 입장에서는 좋은 기업을 골라내 창업 초기 여신 제공과 운영 컨설팅 등을 통해 지원하고, 기업공개(IPO)나 인수합병(M&A) 등을 도우며 성장을 유도하는 과정에서 수수료와 투자 수익 회수 등의 이익을 취할 수 있다.
이렇게 하자면 IB는 자기 자본이 넉넉해야, 투자를 했다가 일부를 날리더라도 지속될 수 있는 '모험 자본'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금융위원회가 지난 2013년 자산규모 3조 원이상의 증권사에 대해 ‘종합금융사업자’로 지정할 수 있도록 관련 법규를 손질해 초대형 IB가 등장할 수 있는 길을 열었고 실제 몇몇 회사가 종합금융사업자로 지정됐다.
그러나 이후 이들 IB의 활동을 보면 주로 부동산 투자를 하거나 여전히 전통적인 중개 업무 등에 주력하면서 좋은 기업을 발굴해 '관계형 금융'을 실현하는 투자은행 본연의 역할은 하지 못해 왔다.
오히려 골드만삭스가 2014년 '배달의 민족'에 400억 원을 투자한데 이어 최근엔 '제 2의 배달의 민족'을 찾겠다고 나서는 등 국내에선 해외 IB들에게 이런 역할을 뺏기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경험을 토대로 지난해 8월 금융위원회는 자산 규모 4조 원 이상인 종합금융사업자에게는 발행어음을 취급할 수 있는 ‘단기금융업무’를 인가하겠다는 등의 육성 방안을 내놨다.
'단기금융 업무'란 만기가 1년이내인 어음의 발행·할인·매매·중개·인수·보증 업무를 말한다.
이 어음은 초대형 IB들이 자기 신용으로 발행하는 것으로 원리금을 보장해 주는 일종의 금융상품이기 때문에 투자자들에게 매력이 있을 수 있다.
IB는 어음이 신용등급 평가비용 등이 들어가는 회사채 보다 자금 조달 비용이 덜 들기 때문에 은행권 등의 다른 금융상품보다 높은 수익률을 제시할 수 있다.
법적으로 예금자 보호의 대상은 아니지만 자산이 많은 초대형 IB들이 발행하는 것이어서 사실상 원리금 보장이 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금융계 전문가들은 말한다.
자산규모 4조 원 이상인 초대형 IB는 이를 통해 자산의 2배까지 어음을 발행해 자금을 모을 수 있고, 특히 이를 통해 모은 자금 가운데 절반은 기업 금융에만 운용하도록 최근 관련 법규에 규정됐다.
이 단기금융업무를 인가받기 위해 자산 규모가 4조 원 이상인 미래에셋대우 증권과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KB증권, 삼성증권은 지난 30일 금융감독원에 기초서류를 냈다.
미래에셋대우 증권 관계자는 “다음달 중순쯤 인가를 위한 본 신청서를 낼 계획이고, 심사에 두 달 정도 걸릴 것으로 보면 9월 전후에 결론이 나지 않을까 업계에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증권 등 다른 증권사들도 비슷한 일정으로 인가 신청을 내겠다는 입장이어서 초대형 IB의 단기금융업무가 연내에 시작될 수 있을 전망이다.
자산 4조 원이상인 이들 5개 증권사가 IB로서 단기금융업무를 취급할 수 있게 되면 산술적으로 최대 20조 원 이상의 자금이 기업으로 흘러들어 갈 수 있게 되는 것이어서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신산업 기업이나 혁신형 창업 기업 등을 지원할 수 있는 토대가 되고 새로운 일자리 창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국내 IB들이 좋은 기업을 골라내는 분석능력이나 미래가치 및 지속가능성 평가 능력 등을 아직 충분히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모험자본으로서 본연의 역할 보다는 결국 단기금융업무라는 젯밥에만 관심을 가진 것 아니냐는 비판적 시각도 금융계에선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그런 비판이 나올 수 있고, 당연히 초대형 IB들은 자구노력 차원에서 분석이나 평가 능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한다. 그렇지만 그런 능력을 먼저 갖춰야 하느냐 자본을 먼저 확충해야 하느냐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논란과 같다"고 말했다.
한국증권학회장을 지냈던 한양대 김명직 교수는 "국내 IB들의 분석 평가 능력에 대한 지적은 일리가 있지만 덩치가 큰 투자은행들에게는 규제를 통하기 보다는 서로의 경쟁이 가능하도록 하고 그 속에서 이런 능력을 갖춰나가도록 하는 게 시장에서는 더 효율적일 수 있다"며 우선 인가를 해줘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교수는 "한국 금융산업의 문제는 해 보지도 않고 먼저 안된다고 하는 데서 비롯돼 왔다"며 단기금융업무 인가와 관련해 후보 증권사들이 대주주의 자격요건 상 이런 저런 걸림돌을 모두 갖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금융당국이 지난해 초대형 IB의 육성을 위해 발표한 육성 정책의 기조를 다시 돌아보고 과거의 잘못들 보다는 앞으로 업무를 맡길 만 한지를 중심으로 생각해 결정을 내려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김 교수는 최근 언론 기고문에서 초대형 IB가 발행어음을 취급할 수 있게 하면 문재인 정부에게는 일자리 창출 정책과 관련해 "일자리의 양과 질을 개선하는데 필요한 재원을 해결할 수 있는 '신의 한 수'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단기금융업무가 가능해지면 IB들이 그만큼 사회적 책임의식을 가지고 우량 기업 발굴과 육성, 창업 지원,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 지원 등을 통해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선순환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선구안'이나 컨설팅 능력, 해외 네트워크 구축 등 '실력'을 갖춰 나가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