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강원영동CBS)
5월 황금 연휴 끝무렵에 발생한 강릉과 삼척 등지의 산불이 사흘째 이어지고 있다. 강릉 산불은 특히 7일 밤 다시 발화돼 인근 주민들이 추가 대피했다.
이번 대형 산불로 1명이 숨지고 2명이 다쳤으며, 200㏊에 이르는 삼림자원과 주택 30여 채가 소실됐다.
산림청은 2011년 산불 경보제 도입 이래 처음으로 산불재난경보를 '심각'단계로 높였다.
건조특보 속에 순간 초속 20미터에 이르는 국지성 강풍까지 겹치면서 입산자의 실화(失火)와 논두렁 소각이 이내 화마(火魔)로 변하고 만 것이다.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한 집터를 바라보며 망연자실한 주민들.
마른 지붕에 호스로 물을 뿌리며 혹여 불길이 들이닥칠까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들.
긴급 대피한 마을회관에서 웅크린 채 뜬 눈으로 밤을 샌 이재민들.
자욱한 연기와 재로 도로 표지판까지 안 보여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못 잡은 외지인들.
바람을 타고 옮겨 다니는 일명 '도깨비불'이 머리 위로 날아가는 공포를 경험한 운전자들.
그런데 이들 가운데 국민안전처의 긴급 재난문자를 받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재난 컨트롤 타워인 안전처가 긴급재난문자전송서비스(CBS·Cell Broadcast Service)를 하지 않은 때문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진 국민안전처는 재난문자 '먹통'에 이런 저런 핑계를 둘러댄다.
"해당 지자체나 정부 기관에서 재난문자 송출 요청을 하지 않았다", "산불 발생 때 주무 부처는 산림청이다", "재난문자는 피해 지역뿐 아니라 다른 지역의 많은 주민들에게도 발송된다"는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강원도는 "100㏊ 이상인 대형 산불의 기준에 속하지 않아 문자송출이 애매했다"고 답했다. 재난주관방송사인 KBS는 "산림청의 정보가 잘못돼 실시간 재난정보를 업데이트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사진=강원영동CBS)
서로 핑계대고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재난방재시스템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만들어진 국민안전처는 지난해 9월 경주 지진 때도 뒷북 문자와 늑장대응, 홈페이지 먹통 등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었는데, 이번에도 역시 국민의 질타를 받았다.
더욱이 산불은 태풍, 홍수, 지진해일 등과 같이 긴급재난문자 발송기준에 포함돼 있는 재난이다.
재난 발생 때 초동 대응만 제대로 하면 그나마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교훈을 이번에 또 망각한 것이다.
하루 앞으로 다가온 장미대선에 나선 각 당 대선후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각종 국민 안전 공약을 발표했다. 차기 정부에서 만큼은 반드시 구멍 난 국가재난위기시스템을 총체적으로 바꿔야 한다.
이와 함께 한 해 발생하는 산불의 70%가 건조한 봄철에 집중되는 만큼 국민 개개인의 철저한 산불 예방 의식도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