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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거' 놀림보다 잔인…"법이 박탈한 임대가구 발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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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4-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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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법 상 임대 가구는 의사결정 참여 자격 없어

 


# 서울 금천구의 한 임대아파트에 입주한 A씨는 지난 2월 분노와 슬픔, 난감함을 한꺼번에 느꼈다. 임대가구는 입주자대표 선거에 '원칙적으로' 참여할 수 없다고 통보 받았기 때문이다. A씨가 입주한 아파트 단지는 일반분양가구(1560세대)와 장기전세 임대가구(183세대)가 혼합된 이른바 '소셜믹스'형태인데, 이중 183세대는 선거 입후보는 물론 투표권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 A씨처럼 소셜믹스 단지의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는 B씨는 임대동 쪽 출입문만 이용하도록 한 입주자대표회의의 결정에 그간 참았던 설움이 터졌다. "임대가구 쪽 아이들과는 어울리지 말라"는 얘기가 들려도 못 들은 척 넘기던 그였지만, 단지 내 출입을 제한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하지만 "법적으로 문제 없다"는 답변에 말문이 막혔다.

이처럼 같은 아파트 주민이더라도 임대아파트 거주자는 입주자대표회의에 참여하는 등 발언권 자체가 박탈돼 있다. 회의에서 임대가구에 전적으로 불리한 결정이 나와도,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다. '휴거(임대아파트 브랜드인 휴먼시아와 거지의 합성어)' 논란 같은 '잘못된 인식' 때문이 아니다. 임대아파트 거주자의 입을 막고 있는 것은 현행법이다.

현행 공동주택관리법은 입주자대표회의에 참여할 수 있는 주민을 주택 소유자와 이들로부터 집을 빌린 임대인으로 한정하고 있다. 따라서 공공기관과 계약 관계인 임대가구들은 동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도, 투표할 수도 없다.

현행법에 근거해 아파트 관리와 관련한 의사결정 구조에 참여하는 방법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일단 임대가구들은 임차인 대표회의를 구성해야 한다. 그 다음 '임대사업자' 즉 임대아파트를 공급한 공공기관과 협의해 의견을 전달하고, 그 다음 이 임대사업자가 아파트대표회의와 다시 협의하는 방식으로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

단계마다 밟아야 하는 이 '협의'들은 현실에서 '무시해도 그만'의 예의바른 표현에 불과하다. 심지어 관련 시행령은 두 협의체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사안에 따라 전체 관리 영역의 1/2, 2/3 이상을 차지하는 쪽의 의견을 따르도록 '못 박고' 있다.

 

구성 인원 면에서도 현실은 임대가구 편이 아니다. 서울시에서 공급하는 장기전세주택을 예로 들면, 임대가구는 한 아파트 단지의 10%에 불과하다. 올해 2월 기준 SH공사에서 관리하는 전체 혼합단지 242곳 중 76%에 해당하는 185개 단지에서 임대 단지 면적이 절반을 넘지 못했다. 1/3에도 미치지 못해 고립된 섬처럼 된 경우도 60%, 146단지나 됐다.

소득이 다른 계층 간 화합을 도모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소셜믹스 단지가 오히려 상대적 박탈감을 더욱 키운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소유자 중심으로 꾸려져 임대가구 거주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도록 한 현행법을 개선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이강훈 변호사는 임대가구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관련 법이 개선돼야 한다면서 "임대가구가 일정 규모만 도달하면 법적으로 협의체 구성을 의무규정으로 만들고, 정책적으로 문제의식 조성을 유도해야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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