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 오리온의 김동욱(사진 왼쪽)과 오데리언 바셋 (자료사진 제공=KBL)
서울 삼성은 11일 경기도 고양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6-2017 KCC 프로농구 고양 오리온과의 4강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31-18로 크게 앞선 2쿼터 중반 작전타임을 요청했다.
3분 전까지 점수차는 6점이었다. 삼성은 점수차를 벌려나가는 과정에서 작전타임을 불렀다. 밀리고 있는 팀이 작전타임을 요청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에 대해 이상민 삼성 감독은 "(6강에서 5차전을 치른) 우리 선수들이 많이 지쳐서 사실은 한 타임 정도 쉬고 가도 되겠다, 2쿼터 경기력이 굉장히 좋았기 때문에 그래도 되겠다 생각해서 작전타임을 불렀다"고 설명했다.
그만큼 삼성은 여유가 있었다. 삼성은 1차전을 78-61 승리로 장식했다. 한때 33점차까지 앞서나갔다. 완승이었다.
추일승 오리온 감독은 경기가 끝나고 "창피한 경기"라며 아쉬워했다. 어떤 부분이 가장 아쉬웠냐고 묻자 "지역방어에 대한 대처"라고 답했다.
삼성이 14-11로 근소하게 앞선 1쿼터 종료 2분여를 남기고 오리온이 외국인 가드 오데리언 바셋을 투입하자 삼성은 지역방어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삼성은 정규리그 기간에 지역방어를 거의 쓰지 않았다. "문태영과 마이클 크레익의 수비가 지역방어에서는 너무 느슨해진다. 지역방어를 하면 3점슛도 많이 맞는다"는 것이 이상민 감독의 설명이다.
삼성이 오리온을 상대로 꺼내든 지역방어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
바셋은 코트 정면에서 공격을 조율했다. 지역방어 앞선 중앙에 위치한 주희정은 바셋이 정면에 서있을 때 바짝 붙지 않았다. 자유투라인 근처까지 내려와 수비했다. 3점슛을 쏘고 싶으면 얼마든지 쏘라고 메시지를 보낸 것과 다름없다. 그런데 바셋이 야심차게 던진 슛은 계속 림을 빗나갔다.
삼성이 변형 지역방어를 시도한 진짜 이유는 애런 헤인즈를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이상민 감독은 "오리온에는 '타짜'들이 많아 5명을 다 막는 것보다는 실리를 선택했다. 차라리 가드들에게 슛을 주더라도 하이포스트로 올라오는 헤인즈를 막자고 했다. 바셋의 슛 컨디션이 워낙 안 좋았기 때문에 경기를 잘 풀어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역방어를 상대로 자유투라인 근처, 하이포스트로 공이 투입되면 수비를 흔들 수 있다. 그곳에서 상대의 압박을 이겨내며 돌파 혹은 슈팅, 패스 전개를 여유있게 하는 선수를 보유할 경우 공략은 더 쉬워진다.
지역방어의 약점은 3점슛 허용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외곽에서만 공을 돌릴 경우 웬만해서는 외곽슛 기회가 생기지 않는다. 하이포스트에 공이 투입되거나 누군가 하이포스트로 파고들면 상대 수비는 안으로 좁혀지고 시선이 한곳으로 쏠리기 때문에 공이 다시 외곽으로 나갈 경우 빠른 대응이 어려워진다.
또 하이포스트는 헤인즈가 가장 좋아하는 공격 위치이기도 하다. 삼성은 지역방어를 통해 오리온 공격의 뇌관을 차단한 것이다. 더불어 외곽슛이 불안한 바셋의 약점을 부각시켰다.
오리온으로서는 바셋이 코트 정면에서의 플레이를 고집했고 선수들에게 효율적인 움직임을 지시하지 못하면서 지역방어 공략에 어려움을 겪었다.
추일승 감독은 "바셋이 수비를 읽고 적절하게 플레이를 해야 하는데 지역방어를 상대로 맨투맨 수비를 상대할 때의 지시를 하니까 팀이 우왕좌왕했다"며 "인지하고 있는 사실이었고 어쨌든 벤치에서 조절하지 못한 것이다. 벤치가 지혜롭지 않았다"며 실수를 자신의 탓으로 돌렸다.
오리온의 3점슛 성공률은 22%(27개 시도, 6개 성공)에 그쳤다. 지역방어를 상대로 3점슛이 원활하게 터지지 않아 고전을 면치 못했다.
오리온에게는 김동욱의 공백이 아쉬운 하루였다.
포워드 김동욱은 농구를 알고 한다는 평가를 받는 선수다. 올시즌 평균 10.0점을 올렸고 팀내에서 두번째로 많은 4.2개의 어시스트를 곁들였다. 웬만한 포인트가드 못지 않은 경기 운영 능력과 패스 감각을 갖췄다.
바셋이 외곽슛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졌을 때, 상대 수비 대처가 잘 이뤄지지 않을 때 김동욱이 코트 정면으로 올라와 경기 운영을 도왔다면 오리온의 지역방어 공략 효율성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김동욱은 정규리그 막판에 생긴 무릎 통증 때문에 1차전에서 뛸 수 없었다. 추일승 감독은 "김동욱의 몸 상태가 생각보다 빨리 올라오지 않고 있다. 아직 팀 훈련도 하지 못했다. 본인도 답답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시즌 오리온을 상대로 지역방어를 시도해 효과를 본 팀은 많지 않다. 전술 이해도가 높은 선수들이 많고 특히 김동욱이 포인트가드를 도와 경기 운영을 잘했기 때문이다. 김동욱은 3점슛도 잘 쏜다. 올시즌 성공률은 41.2%로 경기당 1개 이상의 3점슛을 성공한 선수 중 가장 높았다.
오리온은 3쿼터에 바셋을 아예 기용하지 않는 승부수를 던졌지만 추격에는 한계가 있었다. 김동욱의 4강 출전 가능성은 여전히 미지수다. 오리온은 지역방어를 상대할 때 선수 구성, 선수 위치 조정 등 새로운 해법을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상민 감독은 여전히 경계하고 있다. "3점슛 수비를 강조하고 속공을 잘 막으면서 5대5 세트오펜스를 잘 구사하면 2차전에서도 좋은 경기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대로 풀이하면 오리온은 언제든지 3점슛을 터트릴 수 있는 팀이고 속공 과정에서 3점슛 기회를 만들어 주저없이 던지는 팀이기도 하다. 삼성이 가장 경계하는 오리온의 강점이다.
추일승 감독은 "저력이 있는 선수들이니까 다음 경기 잘할 것이라 생각한다"고 담담히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