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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할 땐 직원, 자를 땐 프리"…어느 막내작가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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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카르텔 안에서 더이상 날갯짓 못하는 우리 스스로에게 소름 끼친다"

자료사진(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이러한 행태가 지난 20년 동안 침묵의 카르텔 안에서 계속 유지돼 왔다는 것이 가장 심각합니다. 더욱 심한 것은 우리 스스로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에요. 세상의 문이 열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이상 날갯짓을 하지 못하는 우리 스스로에게 소름 끼칩니다."

방송작가유니온(준) 소속 작가 이향림 씨는 방송작가들이 처한 열악한 노동현실을 설명하면서 끝내 참았던 눈물을 보였다.

이 씨는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방송작가 노동인권 개선을 위한 토론회' 사례발표를 통해 "방송작가는 구두계약이 많은데, 급여·퇴직 등에 있어서 기본적인 보호가 전혀 안 된다"며 말을 이었다.

"막내작가의 급여는 일하는 강도에 비해 너무 적어요. 100만 원 이하를 받는 경우도 있고, 100만 원 초반이 대다수입니다. 임금체불도 잦아요. 제 경우는 한 외주제작사의 사회 고발 다큐멘터리 작업에 두 달 정도 참여했는데, 첫 달은 월급을 받고 두 달째에는 월급이 안 나왔어요. 저를 불러 준 메인작가에게 사정을 말하니 '사장에게 얘기해 주겠다'고 해서 기다렸죠.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받을 수 없었어요. 메인작가에게 세 번째 부탁했을 때 그러더군요. '(사장에게) 다시 말하기가 꺼려진다. 직접 말해라.' 전화를 끊고 잠시 멍했습니다. 당시 저는 사회초년생이었고, 제가 일한 외주제작사는 꽤 이름이 알려진 곳이어서 '사장에게 직접 말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용기를 냈죠. 그렇게 전화로 몇 차례 부당함을 토로한 끝에 결국 받아냈습니다. 그때 받은 급여가 120만 원이었어요. 기댈 데가 없다는 것이 몹시 슬펐습니다."

그는 "방송작가유니온 활동을 하면서 듣기로는, 편집이 늦어져 방송이 제때 안 나갈 경우 급여가 70% 정도만 나온다고 하더라"며 "그분은 부당함을 느끼고 항의하고 또 항의해 급여를 모두 받아냈지만, 소심한 성격이나 '계속 방송작가 일을 해야 하는데…'라는 걱정을 하면 과연 그렇게 할 작가가 몇 명이나 될까"라고 지적했다.

"임금이 6개월 밀린 작가들이 저희와 상담을 한 적이 있는데, 법적으로 대응할 방법은 나오지 않았지만, 저희가 (회사에) 어필해 준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작가의 경우 '임금을 주지 않으면 언론노조, 방송작가유니온에 도움을 청하겠다고 하니 1시간 만에 바로 입금이 됐다더군요. 임금은 당연히 받아야 하는 겁니다. 그 많은 제작비가 다 어디로 가는 것인지…. 이 부당한 시스템에 대한 개선이 필요합니다."

이 씨는 "저 역시 멋진 메인작가가 되고 싶고, 좋은 방송 만들어서 공유하고 싶다"며 "잠시 일을 쉬고 노조 등 외적인 활동을 하면서 방송작가들을 바라보니, 저도 날개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전했다.

특히 "우리가 참고 일한다는 것이 우리 자신을 떳떳하게 만들 수는 없다"며 "당신들도 날 수 있는 날개가 있다고 말해 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 "막내작가 때 들었던 말 '참으면 된다' '여자가 하기 괜찮은 일'…과연 맞나"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방송작가 노동인권 개선을 위한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이진욱 기자)

 

방송작가유니온과 전국언론노동조합의 '2016 방송작가 노동인권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방송작가의 서면계약 체결은 15명 가운데 1명꼴이다. 4대 보험 직장가입자는 1, 2%에 머문다. 이들의 주당 평균 노동일수는 5.63일인 데 반해 월평균 급여는 170만 6070원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체불되는 경우가 절반에 가까운 46%에 달했다. 특히 막내작가의 시급은 3880원이었다. 올해 최저시급 6470원에 한참 못 미치는 금액이다.

이날 토론회에 이 씨와 함께한 9년차 방송작가 서명숙 씨는 "방송 일을 시작하는 신입작가를 흔히 막내작가라고 부르는데, 주로 자료 조사·취재 보조 업무를 한다"며 "방송에서 흔히 듣는 내레이션 원고를 쓰는 것은 1, 2년 막내작가 일을 한 뒤 입봉한 서브작가로서 스스로 정식 방송작가가 됐다고 생각하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제 경우 지난 2008년 방송작가 일을 시작했는데, 그해 5월 1일 노동절에 출근해 다음날 새벽에 퇴근했어요. 이후 한 달에 하루나 이틀 정도 쉬며 일했는데, 월급은 100만 원이었죠. 9년이 흐른 지금도 급여는 얼마 오르지 않았어요. 그렇게 1년쯤 막내작가 생활을 하다가 한 외주제작사 프로그램으로 입봉했는데, 막내작가 때와 똑같이 100만 원을 받고 일을 하라더군요. 입봉시켜 주는 것에 만족하라는, 시혜처럼 여기도록 하는 분위기였죠. 그런데 제가 메인작가가 돼 입봉할 막내작가를 뽑으면서 저 역시 비슷한 얘기를 하고 있더군요. '입봉하는 것이 중요하니 몇 개월만 참으라'고요. 제작사는 '올리고 싶어도 제작비가 안 된다'고 하는데, 제일 깎기 쉬운 막내작가 급여를 동결시키는 거잖아요."

그는 "막내작가일 때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 '참으면 된다' '이 시기만 버티면 돈도 번다' '여자가 하기에는 그래도 괜찮은 일'이라는 것이었다"며 "9년 정도 일을 하면서 주변의 많은 작가들이 그만 뒀다. 그렇게 떠나는 친구들을 보면서 '그것이 과연 맞는 말일까'라는 의문을 갖게 됐다"고 꼬집었다.

"제 주변에도 방송사 간부급 PD에게 욕설을 듣지만 덮고 가는 경우가 많았어요. 심의·방송 사고를 낸 것도 아닌데, 자기 기준에 만족할 수준이 아니라며 메인작가에게 반성문을 요구한 경우도 있었죠. 좋은 선배·팀장·제작사도 있고, 인간적으로 같이 해볼 만한 사람은 많아요. 하지만 선의에 기대어 일을 하기에는 부당한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누군가의 선의에 기대거나 용기를 짜내어 개인이 뭔가 말하지 않더라도, 부당함을 걸러낼 시스템이 절실합니다."

이날 사례발표 뒤 이어진 지정토론에서 민주노통 법률원 권두섭 변호사는 "방송작가의 경우 최소한 노조법상 근로자성이 인정될 것으로 보인다"며 "노조로의 조직화를 통해 단체교섭,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권리보장 방안은 내놨다.

한국PD연합회 오기현 회장은 "막내작가의 고용문제를 'PD 대 막내작가'의 관계가 아니라 '방송사 대 막내작가'의 관계로 확대시켜야 처우개선의 해결점을 찾을 수 있다"며 "엄격한 심사를 거쳐 작가를 선발하고 선발된 인원에 대해서는 일정기간 교육과 고용을 보장해 주는 '전속제도' 도입을 검토할 만하다"고 제안했다.

한국방송영상제작사협회 배대식 사무국장은 "작가, PD 등 제작 종사자의 인건비 하한선과 연차별 적정 임금을 책정하도록 하는 '표준제작비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고질적인 저임금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방송사의 저작권 독식 등 불공정한 거래 관행을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저작권이라도 독립제작사에 돌려주면 수익창구로 활용 가능하니, 이를 통해 제작 종사자의 제작·근로 환경 개선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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