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으로서 겪는 성(性)차별에 장애란 약점이 더해진 여성장애인은 '약자 중의 약자'다. 여성장애인에게 사춘기 소녀 시절의 고민은 '금지된 비밀'이고, 임신과 육아에 뛰어든 어머니의 고충은 제도 밖에 있다. 일생을 제도 밖에서 편견에 묻혀 살아온 이들의 말로는 비참하다. CBS노컷뉴스는 '3.8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여성장애인의 생애주기별 과정을 조명해 그들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환기한다. [편집자주]
전남 목포에 있는 황순원 씨 자택에서 찍은 가족사진 (사진=김구연 기자)
◇ "장애 임산부는 진료할 수 없습니다!"요즘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첫째 딸이 책가방을 멘 모습에 황순원(36) 씨는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첫 아이를 낳기까지 겪었던 편견과 차별, 속앓이를 생각하면 지금도 한없이 서럽다. 눈시울이 붉어진 그녀는 "내 임신 한 번도 환영받지 못했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척추측만증에 하반신 마비까지 겹쳐 1급 중증장애인인 순원 씨는 검진을 받는 것부터가 난관이었다.
처음으로 찾은 동네 병원은 "장애 임산부는 진료할 수 없다"며 '중절 수술'을 권하며 돌려보냈다. 순원 씨는 "'낙태하라'고 하는데, 무슨 종양 떼듯이 말해 기분 나빴다"고 한다.
사실상 '문전박대'를 당한 순원 씨는 결국 광주에 있는 전남대학병원을 찾게 됐다. 목포에 사는 그녀가 택시와 기차를 타고 3시간을 들여 정기검진을 받으러 다닐 때쯤은 임신 10주차로, 유산이 가장 많은 예민한 시기였다.
산 넘고 강 건너 도착한 대학병원이었지만, 불편한 점은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특히 조산 우려가 커지면서 시작한 병원 생활은 안 맞은 옷을 입는 것 같은 불편함으로 가득했다.
휠체어가 다니는 공간은 협소했고, 리프트가 따로 없어 휠체어에서 침대로 이동하는 매 순간이 위태로웠다. 친절한 간호사의 손은 서툴러 불편하기만 했고, 체중측정도 어려워 불어나는 체중은 추산해 기록해야 했다.
순원 씨는 출산이 임박해서야 임신 소식을 가족들에게 전했다. 무조건 임신을 반대하는 가족들이 야속해서였다.
그녀는 "뭐하러 애를 낳느냐"는 가족들의 말에 한 번 중절 수술을 받았던 사실까지 털어놓으며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 '육아전쟁'에 뛰어든 1급 장애인의 분투기뇌병변 장애 1급 판정을 받은 박훈요(37) 씨는 슬하에 아들만 둘이다. 올해 들어 각각 7살과 6살이 됐다.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특히 장난감에 애착이 심해지면서 다투는 날이 많아졌다. "그만 싸워라"는 말은 허공에만 맴돌 뿐이다.
휠체어를 타지 않는 집에서 훈요 씨는 손으로 바닥을 짚어가며 두 아들을 쫓아다닌다.
가장 속상한 순간은 '남들처럼' 아이를 키우지 못할 때다. 호기심 많은 아이들이 집 멀리 외출하자고 할 때면 손사래를 쳐야 하는 자신이 밉다.
교육도 고민이다. 남편마저 뇌병변 장애 1급으로 말이 어눌해 책 한 번 읽어주지 못했다. "교육도 한계가 있고..."라며 말끝을 흐리는 훈요 씨의 표정이 어두웠다.
갓난아이를 씻기는 일부터가 "극한 노동"이라는 훈요 씨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원해주는 '활동보조인 서비스'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한다.
그녀는 "육아는 24시간인데, 활동보조인 지원 시간은 하루 4시간뿐"이라며 "도움의 손길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전했다.
황순원(왼쪽) 씨와 빅훈요(오른쪽) 씨가 CBS노컷뉴스 취재기자와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전남 여성장애인연대 제공)
◇ 그녀들의 '극한 임신·육아'…필요한 것은?여성장애인들은 '모성권'과 관련해 '여성장애인 전문병원'과 '양육 도우미 서비스'를 요구하고 있다.
2014년 여성장애인 500명을 대상으로 한 '전남 여성장애인 권익증진을 위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임신.출산.육아와 관련해 가장 필요한 서비스로 302명(56.4%)이 '여성장애인 임신출산 전문병원'을 꼽았다.
또 사단법인 '한국여성장애인연합'이 2012년 여성장애인 317명을 대상으로 한 '여성장애인 모성권에 관한 전국실태조사' 결과, 197명(20.7%, 중복응답 포함)이 '양육 도우미' 서비스가 양육에 가장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 '엄마와 아기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놀이방'(14.2%), '경제적 지원'(13.1%)도 필요한 서비스로 선정됐다.
하지만 여성장애인 전문병원은 전국에 7곳에 불과하다. 그것도 전남 지역에만 4곳이 몰려있는 데다 일부 병원은 편의시설이 부족하거나 의료진 사정이 열악해 부족한 부분이 많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양육 도우미 서비스는 지자체에서 각각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있어 현황 파악조차 어렵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사업이라 보건복지부에서 별도로 관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남 여성장애인연대 문애준 대표는 "여성장애인의 임신과 출산, 육아 등은 동정과 시혜 차원이 아닌 여성장애인의 모성권 보장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면서 "여성장애인도 비장애인과 같은 수준의 임신·출산·육아가 이뤄질 수 있도록 국가 차원에서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