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16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외교전문가들로 구성된 자문그룹 '국민 아그레망'(단장 정의용 전 주제네바 대사)과 긴급좌담회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유력 대권주자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6일 발표한 성평등 정책의 주요 골자는 ▲엄마에게 집중된 육아를 아빠와 국가가 분담 ▲노동시장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 개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수준 개선 등 크게 3가지다.
이를 위해 문 전 대표는 아빠육아휴직 활성화와 블라인드 채용제 도입, 여성고용 우수기업에 조세감면 등을 제시했는데 전체적인 방향은 맞지만 이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은 제시되지 않아 '요란한 빈수레'가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 정부 독려에도 일·가정 양립정책' 정착 못 했는데 "인센티브 더 주겠다" 주장만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16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외교전문가들로 구성된 자문그룹 '국민 아그레망'(단장 정의용 전 주제네바 대사)의 긴급좌담회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문재인 전 대표가 제시한 여성의 육아집중 개선 방안은 실은 현행 '일·가정 양립정책' 확대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문 전 대표가 제시한 아빠육아휴직이나 채용 및 승진과정에서 남녀차별금지는 큰 틀의 제도는 갖춰졌지만 사회적 인식 부족이나 기업의 편법행위 등으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제도 실행에 대한 강제성 없이 문 전 대표가 주장하는 '정부 인센티브 강화'만으로 제도의 정착이 가능하냐는 의문이 남는다.
문 전 대표는 "아빠들에게도 아이를 키우고 함께 시간을 보낼 권리와 의무가 있다"며 아빠육아휴직보너스제 실시와 배우자출산휴가 유급휴일확대 등을 내놓았는데 구체적으로 이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문 전 대표 캠프의 홍종학 정책본부장은 "아빠육아휴직자들에 대해 보너스를 주고 아빠육아휴직 비율이 높은 기업에 대해 더 많은 인센티브를 주겠다"면서도 '아빠육아휴직 의무화'에 대해서는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다. 아빠휴직보너스를 국가 재원으로 지원할 것인지 기업이 부담할 것인지, 국가와 기업이 각각 부담할 것인지 등 재원대책도 없었다.
김영란법 시행이후 접대문화가 개선된 것처럼 남성육아휴직 의무화를 통해 아빠육아휴직 활성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강제하기는 어렵다"며 "정부가 남성육아휴직에 대한 의지를 밝히고 그것을 국가적인 운동으로 승화하고 국가가 할 수 있는 모든 인센티브 등을 동원하면 민간에서 쫓아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해 전체 육아 휴직자 중 남성 육아 휴직자의 비율은 8.5%에 불과하고, 그나마도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에 치우쳤던 점을 감안하면 이런 조치로 아빠육아휴직 활성화가 이뤄질지 의문이다.
문 전 대표는 특히 미취학 아동의 부모가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임금 감소 없이 노동시간을 줄이는 방안을 대표적인 공약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임금수준을 보장하면서 어떻게 단축근무가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해결책은 제시하지 않고 있다.
한국여성정책원의 '일·가정 양립 실태조사'에 따르면 시차출퇴근제와 시간선택제 등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유연근로제 중 한 개라도 도입한 업체는 21.9%에 불과했다. 특히 5∼9인 사업체의 경우에는 12%만 유연근로제를 도입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는데 문 전 대표 공약이 현실화되기 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아 보인다.
연장근로‧휴일근로 포함 주52시간 근로시간제 정착과 공공부문 연장근로 전면 금지 도입과정에서 발생하는 노사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설명도 하지 않았다.
◇ 블라인드 채용제 도입으로 여성노동자 채용비율 증가할까노동시장에서 여성차별 개선대책은 정책적 보완이 더욱 시급하다.
문재인 전 대표는 20~30대 여성들의 노동시장 진입 확대를 위해 블라인드 채용제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블라인드 채용제는 이력서에 성별 등 신상을 기재하지 않는 것인데 학력과 달리 성별에 대한 블라인드 처리는 서류전형 이후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게다가 문 전 대표는 블라인드 채용제 적용 대상도 공공부문에 국한했다. '공공부문이 먼저 도입하면 일반기업도 자연스럽게 블라인드 채용을 할 것'이라는 주장인데 고용시장에서 여성기피 현장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에는 부족해 보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 전 대표는 또 청년고용촉진특별법을 개정해 여성 고용을 확대하겠다면서도 여성노동자고용비율을 할당하는 방식 등은 고민중이라고만 답했다. 홍 본부장은 "청년 의무고용 비율을 높이면 자연스럽게 여성채용도 높아진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는데 이 역시 청년고용문제 해결 대책은 될 수 있어도 여성차별 개선대책인지는 추가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여성관리직 비율이 높은 기업과 여성 차별 없는 승진제도 기업에 국가 지원에 대해서도 정부 인센티브를 확대하겠다는 설명만 반복했다. 홍 본부장은 "기업들이 포상을 받고 (여성고용에 대한) 분위기가 나아지면 (여성관리직확대 등에) 참여하는 기업들이 차발적으로 늘지 않으까"라고 반문하며 "공무원부터 시작해 여성관리직 비율을 높이면 자연스럽게 민간기업도 (여성관리직이) 확대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많은 기업들이 장애인 고용 대신 부담금을 내며 '장애인 의무고용제'를 지키지 않고 있는데 인센티브만으로 기업이 여성관리직 확대를 하겠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이것들을 제1의 책무로 할 것이기 때문에 충분히 효과가 날 것이라고 본다"고 홍 본부장은 설명했다.
문 전 대표는 "우리사회의 비정규직의 대부분은 여성"이라며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법제화 통한 비정규직 급여를 정규직 임금의 70~80%까지 확대와 최저임금 1만원 인상속도 가속화 등을 제안했다.
하지만 이 역시 비정규직 노동자 전체에 대한 대책일 뿐 여성들이 저임금 불안정 일자리에 많이 몰려있는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소할 방안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다양한 육아지원 혜택이 대기업과 공공부문을 넘어서 중소기업이나 빈곤층에 적용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책 역시 이날은 제시하지 않았다.
다만 ▲국공립어린이집 이용아동 40%까지 확대 ▲초등학교 돌봄교실 전 학년 확대(현행 1~2학년) ▲정부 입찰 사업에 정시퇴근, 육아휴직, 임금차별 금지, 비정규직 축소 등을 평가지표로 넣어 우선권을 주는 방안 등은 정부가 의지를 갖고 실행할 경우 현실화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