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안치환이 지난해 11월 26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박근 대통령 퇴진 촉구’ 5차 촛불집회에서 열창을 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한국 사회 민주주의 수호의 현장을 지켜 온 가수 안치환의 노래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맞불집회 현장에서 울려 퍼지는 아이러니한 광경이 연출됐다.
4일 오후 5시 20분께 서울시청 앞 대한문에서 열린,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등 친박단체가 주도하는 집회 무대에 오른 한 가수는 안치환의 노래 '위하여'를 부르기 시작했다.
"위하여 위하여/ 우리의 남은 인생을 위하여/ 들어라 잔을 들어라/ 위하여 위하여// 목마른 세상이야/ 시원한 술한잔 그립다/ 푸르던 오솔길 자꾸 멀어져간다/ 넥타일 풀어라 친구야// 앞만 보고 달렸던/ 숨가쁘던 발걸음도/ 니가 있어 이렇게/ 내가 있어 이렇게/ 이 순간이 좋구나 친구야//(중략)// 무정한 세월이야/ 구름처럼 흘러만간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짧다/ 청춘의 꽃이 시들어간다"안치환의 '위하여'는 1987년 6월항쟁의 주역인 386세대에게 바치는 노래로, 속도 경쟁을 강요받는 세상에서 저항과 낭만의 문화를 잃어 가는 그들에게 도전과 희망을 전하고자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날 맞불집회 현장에서 노래를 마치고 무대를 내려온 가수 박정원 씨에게 안치환의 '위하여'를 부른 이유를 묻자 "우리 가슴이 답답하고 울분을 토하고 싶을 때는 안치환 씨의 호소력 있는 노래가 많은 대중들에게 사랑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불렀다. 제가 특별히 아끼고 사랑하는 노래"라고 답했다.
'박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촛불집회 무대에도 오른 안치환의 노래가 맞불집회 성격과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은 없나'라는 질문에는 "좌파 우파를 가리는 것보다 '우리 국민은 하나'라는 의미에서 어떤 노래도 가리지 말고 국민들이 사랑하는 노래를 부르는 것이 중요하지, 노래에 차별을 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어 "안치환 씨 본인이 느끼는 감정은 다르겠지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노래를 사랑하고 국민들과 정서를 나누는 아름다운 마음을 담은 노래가 중요한 것"이라며 "어떤 무대에서든지 색깔을 둔다는 것은 곤란하다. 국민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는 어떤 노래든 부를 수 있는 가수가 돼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안치환은 지난해 11월 26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5차 촛불집회 무대에 올라 "박근혜는 물러나라, 박근혜는 퇴진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자신의 노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개사해 시민들과 함께 "하야가 꽃보다 아름다워"라고 합창하기도 했다.
당시 안치환은 "우리가 외신에서도 보도하듯 이렇게 평화롭고 전세계에서 가장 폼나는 비폭력 시위를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이렇게 시간 끌다가 더 초라하고 처참하게 끌려나오기 전에 인간답게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주면서 퇴진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려줘야 한다. 빨리 끝장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