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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트하면 검침받을게"…도시가스 검침원 인권 사각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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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제가 못 나오면 신고해주세요"
"속옷바람 고객은 비일비재해요"

서울 평창동·구기동 담당으로 4년째 근무하고 있는 검침원 장 모(48) 씨는 사각팬티를 입은 남성 고객과 수없이 마주했다. 겨울에도 보기 민망한 잠옷차림으로 장 씨를 맞이하는 이들이 태반이었다.

서울시 도시가스는 5개의 회사가 담당하고, 그 중 가장 큰 곳이 서울도시가스다. 서울도시가스는 14개의 고객센터를 운영하며 이곳에 각각 검침원들이 고용된다.

이중 서울 종로·은평·서대문구에 근무하는 도시가스 검침원 33명 중 20명이 지난 1일부터 파업에 돌입했다. 이들은 2일 서울시청 앞에서 1인시위를 하며 "제대로 된 임금"과 "차별 철폐"를 주장하고 있다.

◇ 벨 누르자 "당신을 어찌 믿고 문을 열어주느냐"

(사진=자료사진)

 

장 씨는 검침을 위해 벨을 눌렀을 때 "당신을 무엇을 믿고 문을 열어주느냐. 열어줄 수 없다"는 발언을 들었다. 같은 지역에서 4년째 근무하며 매달 방문하지만 이런 대접을 받는 건 부지기수다.

장 씨는 1일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이 정도 일쯤은 아무 것도 아냐'라는 인식이 힘들다"며 "파업의 가장 큰 이유는 차별 개선이다. 사내에서 사무직과 검침원을 차별하는 정황이 많아 힘들었다"고 말했다.

지난 2016년 추석 설 상여금의 경우 검침원들은 30만 원을 받았지만 사무직 직원들은 50만 원을 받았다는 게 장 씨의 설명이다. 장 씨는 "점심값도 검침원들은 6만 원을 받지만 다른 직원들은 12만 원을 받는다"며 "나가서 일하는 우리는 교통비도 지원받지 못하는데 밥 먹는 걸로 이러는 건 너무 치사하지 않느냐"라고 토로했다.

그는 "서울시에서 책정한 금액은 세전 160만 원 정도라더라. 우리가 지금 받고 있는 월급은 세전 140만 원이다. 세후는 123만 원"이라며 "일을 하는 것에 비해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서울시가 제시한 가스 검침원들의 월평균 급여는 지난 2016년 기준 세전 163만2174원이다.

◇ "데이트하면 검침받을게" 연락까지…

김진랑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조직부장은 장 씨의 경험이 비일비재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남성 검침원을 꺼리는 사회 분위기 탓에 여성 검침원이 직원의 99% 이상을 차지한다.

김 조직부장은 1일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남성 고객이 혼자 사는 집에서 속옷 바람으로 나오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굳이 더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의 일"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집에 사람이 없을 경우 검침원들이 고지서와 연락처를 남겨두는데 전화를 걸어 '데이트 한 번 해주면 검침해주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김 부장은 "검침원은 지인에게 '혹시 제가 못 나오면 신고해달라'고 말하고 들어갔다"며 "너무 늦은 시간이면 남편에게 같이 가자고 한다거나…. 혼자 다니기 위험하니까"라고 부연했다.

◇ 피해 사례 빈번하지만 신고 방법은 '요원'

이같은 일을 방지하고자 센터들은 지난 2015년 검침원의 PDA 단말기에 '위급상황용 버튼'을 부착했다. 위급상황시 버튼을 누르면 회사에 연락이 가고, 회사에서 전화로 '무슨 일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김 부장은 "유명무실한 시스템"이라며 "오작동이 빈발해 결국 있으나마나한 게 됐다"고 말했다.

또 "검침원은 근무시간이 따로 없다"며 "고객이 오라고 하면 가야하는 거다. 저마다의 할당량이 있고 안 채울 경우 성과 관련해 급여 문제가 있다. 그래서 늦은 시간에도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김 부장은 "심지어는 한 피해자가 피해 사례를 신고하러 사무실에 전화했더니 그런 일을 한두 번 겪느냐는 답변을 들었다"며 "고충 상담은 아무래도 노조 쪽이랑 하시더라"라고 전했다.

◇ "회사 측 '사람이 부족하다'는 말만 자동반복처럼 말하더라"

검침원들이 파업 전 회사와 대화를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검침원 장 씨는 1일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회사는 '회사 사정이 힘들고 나올 것도 없고 지역 사정상 사람을 더 써야한다'는 말만 녹음한 것처럼 매 만남마다 반복하더라"라며 "토씨 하나 틀리지 않더라"라고 토로했다.

장 씨는 "예전엔 우리가 믿었다"며 "하지만 우리가 부당함을 참다 못해 대화를 시작하면서 서울시 가이드라인을 보고 우리의 처우가 여지껏 낮았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와의 대화 자리도 있었다. 장 씨 등 검침원들이 급여 책정 기준 등을 문의했던 것이다.

장 씨는 "관계자에게 우리 얘기를 물어봤더니 케이블TV 업체 노동자 처우와 우리 처우를 비교해서 말하더라"라며 "잘못된 비교다. 우리는 서울시 가이드라인에 책정된 기준에 따라 우리 급여를 받고 싶다. 그게 안 된다면 이유를 알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기본적인 걸 바랄 뿐이다"라며 "차별 없이 일하고 싶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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