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과 최순실 씨가 약 2년 간 2천 건 넘게 연락을 주고 받은 사실이 법정에서 드러났다. (사진=자료사진)
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과 최순실 씨가 약 2년 간 2천 건 넘게 연락을 주고 받은 사실이 법정에서 드러났다.
정 전 비서관은 청와대 기밀 문건 유출 혐의에 대해선 인정했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공모 의혹에 대해선 인정하지 않았다.
검찰은 이날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2부(김세윤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재판에서 이들이 "2012년 대통령 선거 때부터 2013년 11월까지 문자 1천 197차례, 전화 895차례 등 총 2092차례에 걸쳐 연락을 주고 받았다"고 밝혔다.
공휴일을 포함해 매일 3번 꼴로 두 사람이 연락을 주고 받은 셈이다.
정 전 비서관이 최 씨에게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 등 국정 관련 자료를 이메일로 보낸 후 문자로 확인한 것은 237회에 달했다.
박 대통령과 최순실씨가 입을 맞춘 듯 일부 도움을 받았거나 개인적인 일을 도왔다고 밝힌 기존 해명과는 배치되는 정황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이런 정도의 접촉 빈도면 정 전 비서관이 최 씨를 상관 모시듯, 의견을 구하거나 지시를 받았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그만큼 최 씨가 국정 전반에 깊숙히 개입한 방증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정 전 비서관은 최 씨에게 청와대 문건 유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박근혜 대통령과의 공모 관계에 대해선 선을 그었다.
정 전 비서관은 이날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2부(김세윤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재판에서 "공소사실을 대체로 인정한다"고 밝혔다.
정 전 비서관은 "변호인이 밝힌대로 최 씨에게 47건의 문건을 전달한 사실을 대체로 인정하고 검찰에서 진술한 내용도 인정한다"면서도 박 대통령과의 공모에 대해선 선뜻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박 대통령이 최 씨 의견을 듣고 반영할 부분이 있으면 하라고 한 말씀이 있었던 것은 맞다"면서 "하지만 건건이 보내라고 지시한 것은 아니"라며 박 대통령에 대한 방어막을 쳤다.
그러면서 "법률적 개념과 별개로 일반인들 시각에서 공모라는 것은 둘이 계획적으로 나쁜 일을 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며 "박 대통령이 국정 운영을 하는데 좀더 잘해보려고, 본인이 한마디라도 더 확인해보고 싶은 차원에서 말씀을 하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대통령의 지시로 청와대 기밀 유출이 이뤄졌지만, 박 대통령의 취지는 국정 운영에 도움을 받기 위한 '선의'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정 전 비서관은 "저 역시 대통령이 일하는데 조금이라도 더 보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것 뿐"이라고 해명했다.
정 전 비서관은 "그런데 공모를 했다고 하니까…"라고 말을 흐리면서 "사실 좀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가슴이 아프고 그런 측면이 있다. 고민을 했는데… 이걸로 말을 마치겠다"고 말했다.
정 전 비서관 측 변호인도 "직무상기밀누설 혐의는 당연히 인정한다"며 "다만 대통령과 공모했거나 지시를 받았다는 부분은 사실상 박 대통령이 최씨의 이야기를 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해 '말씀자료' 등 문건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의견을 들은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큰 틀에서 박 대통령 뜻에 따라 최씨에게 문건을 전달하고 절차를 거쳤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공모가 되는지 여부는 계속 고민이 있었다. 본인이 사실관계를 그 정도로 인정해서 법원이 판단해주셨으면 하는 취지"라고 답했다.
검찰은 이날 정 전 비서관의 검찰 피의자신문 조서를 증거로 제출하며 박 대통령이 최종 책임자임을 강조했다. 박 대통령의 공모 혐의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검찰은 "정 전 비서관은 정부 초기 최 씨 의견을 들어보라는 박 대통령 지시에 따라 행정부 장·차관, 감사원장, 국정원장 등 고위직 인선 자료 등의 문건을 최 씨에게 전달했다"며 "나머지 문건도 박 대통령 뜻에 따라 포괄적으로 보낸 것이라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이어 "박정희 전 대통령 사후에 최 씨로부터 받은 도움 때문에 박 대통령은 최 씨를 무한 신뢰했고 대통령 지시에 따라 의사결정 전에 최 씨 의견을 확인해 반영했다는 취지로 읽힐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영상으로 녹화된 정 전 비서관의 피의자신문 내용도 공개했다. 검찰은 "정 전 비서관은 박 대통령이 매건마다 지시하진 않았지만 큰 틀에서 문건을 보냈고 최 씨가 최종의견을 주면 대통령에게 그대로 보고한다고 했다"며 "최종 결정은 대통령 몫이라는 진술도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이 사안마다 지시하지 않았어도 최 씨에게 자료를 보내 의견을 듣는 것은 대통령의 포괄적 지시사항이 아니냐'고 묻자 정 전 비서관은 '맞다'고 답했다"고 설명했다.
또 압수한 정 전 비서관의 휴대전화에 따르면, 정 전 비서관이 공유 이메일로 청와대 문건을 보낸 뒤 최씨에게 '보냈슴다(습니다)'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최씨는 문건을 수정한 후 다시 이메일을 보내고 '보세요'라고 정 전 비서관에게 답했다.
윤전추 청와대 행정관도 검찰 조사에서 최씨가 박 대통령의 해외 순방 일정표를 갖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앞서 정 전 비서관은 지난 두차례의 공판준비기일에서 "대통령 뜻을 받들어서 했다는 취지"라고 했다가 다시 "대통령 지시를 받고 공모한 혐의를 부인한다"며 오락가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