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이너로서 체력코치라는 직함까지 단 한대식 SK 체력코치. (사진=SK 제공)
농구 코트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오롯이 코트 위를 누비는 선수들, 그리고 경기를 지휘하는 감독의 몫이다. 하지만 주연으로만 영화를 만들 수는 없다. 조연들도 필요하다. 선수단이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매니저를 비롯해 선수들의 몸을 관리해주는 트레이너, 상대를 면밀하게 파악해주는 전력분석원, 그리고 외국인 선수의 손발 역할을 하는 통역까지. 농구 코트의 숨은 조연들에게도 잠시나마 스포트라이트를 비춰보려 한다.[편집자주]2000-2001시즌. 오리온스(현 오리온)는 9승36패로 꼴찌를 했다. 당시 전희철, 김병철 등 스타급 선수들이 버티고 있었지만, 예상과 반대로 성적은 바닥을 쳤다.
그런 오리온스가 불과 1년 만에 180도 달라졌다. 2001-2002시즌 36승18패로 정규리그 1위를 차지한 뒤 챔피언결정전에서도 정상에 섰다. 슈퍼 루키 김승현과 마르커스 힉스의 가세가 큰 힘이었다. 하지만 오리온스 우승의 숨은 공신은 한대식(47) 현 SK 체력코치를 비롯한 트레이너들이라는 평가도 있다.
한대식 코치는 "처음 트레이너를 시작할 때는 일용직이라는 개념이었다. 물론 지금은 많이 바뀌었다"면서 "오리온스에서 우승했을 때 전 시즌 꼴찌였기에 '대체 비시즌에 무슨 훈련을 했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 당시 김진 감독님과 회의를 하는데 '선수들 체력을 만들어놓고 그 다음 농구 훈련을 하는 게 좋지 않겠냐'라고 제안했다. 5월부터 시즌 전까지 21주 플랜을 짜서 운동을 시켰다. 성적이 나오면서 다른 팀들도 같은 방식으로 바꿔나갔다"고 말했다.
한대식 코치의 말대로 비시즌 체력 훈련은 기본이다. 시즌을 치를 수 있는 힘을 비축하는 시기다. 그걸 완성해주는 것이 바로 트레이너의 역할이다.
사실 한대식 코치는 역도 선수 출신이다.
하지만 대학교 3학년 때 허리와 양쪽 어깨 부상으로 일찍 은퇴했다. 이후 트레이너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이후 잘 나가던 회사도 그만 두고, 태릉선수촌에 들어가 역도 대표팀 트레이너를 맡았다. 트레이너로 세계선수권대회, 올림픽을 나가면서 시야도 넓어졌다. 그리고 오리온스 트레이너로 합류하면서 농구와 인연을 맺었다.
한대식 코치는 "잘 나가던 회사를 그만 두고 태릉선수촌에 들어갔다. 연봉도 반토막이 났다. 그래도 3년 동안 돈 주고도 못 배울 것을 많이 배웠다. 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면서 "이후 최명룡 감독께서 불렀는데 처음에 싫다고 했다. 삼고초려를 하셨고, 결국 오리온스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정식 직함은 체력코치. 10개 구단 트레이너 가운데 코치 직함을 달고 있는 것은 한대식 코치와 오리온 윤유량 코치가 전부다. 한대식 코치가 있기에 SK 코칭스태프도 트레이너팀에 터치를 하지 않는다. 그만큼 어깨도 무겁다.
한대식 코치는 "이제는 좀 무뎌졌는데 처음 코치가 됐을 때는 굉장히 무겁게 느껴졌다"면서 "후배 트레이너에게 조언도 많이 하고, 실수에 대해서는 질타도 많이 한다. 그래서 감독도 거의 터치를 안 한다. 내 선에서 많이 커버를 하기 때문이다. 선수들 역시 믿고 들어오는 느낌이 생긴다"고 강조했다.
트레이너라는 직업의 고충도 있다. 선수가 다칠 때는 당연히 속이 상한다. 무엇보다 감독이 바뀔 경우 처음부터 다시 설명하고, 설득해야 하는 말 못할 어려움도 있다.
한대식 코치는 "감독이 바뀌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았다. 감독 한 분과 9년을 함께 한 뒤 3년 동안 4명인가 바뀌었다. 반복되는 것을 또 설명해야 하니까 스트레스가 심했다"면서 "그래도 문경은 감독, 김진 감독, 이충희 감독 때 좋았던 것은 믿고 맡겨주는 것이었다. 이 기간 동안은 전혀 영역에 들어오지 않고 맡겨줬다"고 말했다.
어느덧 농구단 트레이너 생활만 20년을 향해 간다. 수많은 선수들이 한대식 코치와 함께 운동을 했다. 그렇다면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는 누구일까.
바로 천재 포인트가드 김승현이었다. 그런데 이유는 예상과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