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유튜브와 SNS 등에 시청자를 향한 반성문을 올린 MBC 막내기자들 (사진=유튜브 캡처)
"안타깝게도 우리 뉴스에 지킬만한 명예는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오로지 후배들이 했던 처절한 반성만이 우리의 명예를 다시 세울 수 있는 길입니다. 현재 땅에 떨어진 시청자들의 신뢰는 이런 반성 없이는 회복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곽동건, 이덕영, 전예지 기자에 대한 경위서 제출 요구는 부당합니다. 당장 철회하십시오. 더불어 우리 뉴스를 이끌고 온 분들에게 지금의 보도 참사에 대한 반성을 요구합니다. 저희는 후배들과 함께 반성하겠습니다." _ 보도국 43기 기자들지난 4일, MBC 막내기자들(곽동건·이덕영·전예지)이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고 현재 MBC에서 일어나는 보도참사에 대해 시청자들에게 반성문을 올렸다. 그러나 최기화 보도국장은 이틀 후 편집회의에서 격노하며 막내기자들에게 경위서를 요구했다. MBC 기자들은 '경위서를 내야 할 사람은 보도책임자들'이라며 사측을 정면 비판하고 있다.
막내기자들이 올린 반성문의 방향은 분명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면에서도 여전히 권력의 눈치를 보며 엇나간 방향으로 흐르는 자사 보도를 비판하고, 김장겸 보도본부장과 최기화 보도국장의 사퇴를 촉구하며, 해직 및 징계를 당한 언론인들의 조속한 복귀를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MBC를 향한 시민들의 시선은 차갑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광화문 광장에서는 '엠X신'(MBC를 비하해 이르는 말)이라는 모욕을 듣고, 현장취재가 어려워 MBC 로고를 떼고 리포트를 전하거나 크레인에 올라타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용기를 낸 막내기자들을 징계하려는 사측의 움직임에 MBC 내부에선 반발이 높다.
◇ 선배기자들, 막내기자들 대신해 경위서 제출하다 MBC기자협회 소속 기자 96명은 오늘(10일) 막내기자들의 반성문에 대한 답이 담긴 동영상을 공개했다. 선배기자들도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밝히고 막내기자들이 써 내려간 반성문을 그대로 따라갔다. 그러면서 젊은 기자들, 중견기자들, MBC 내부의 많은 기자들도 현재 망가진 MBC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앞장서겠다고 약속했다.
김희웅 협회장은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하자고 할 때 이건 말이 아니고 사슴이지 않냐고 저항하지 않았다. 폐허가 된 MBC뉴스에 대한 저희 기자들의 경위서 사유다. 진짜 경위서는 MBC뉴스를 짓밟은 보도책임자들이 써야 한다. 그러나 이제 이들에게 경위서를 요구하지는 않겠다"고 밝혔다.
영상은 선배기자들 역시 막내기자들처럼 △김장겸 보도본부장과 최기화 보도국장 사퇴 △해직 및 징계당한 기자들 복귀를 촉구한다는 내용으로 마무리됐다. 이번 영상에는1993년 12월에 입사한 박장호 기자부터 2012년 1월 입사한 손령, 이동경, 김미희 기자까지 폭넓게 참여했다.
◇ "막내기자들은 다른 기자들보다 조금 더 용기있었을 뿐"이에 앞서 MBC 기자들은 성명을 줄줄이 내 항의했다. 경위서 제출 지시가 있었던 지난 6일부터 9일 오후 9시까지 MBC 사내 게시판에는 올라온 성명은 10건이 넘는다.
보도국 42기 기자들은 "법원에서 공정성을 위반했다고 적시한 뉴스, 매일 타사에 물을 먹는 뉴스는 누가 책임지고 있는가? '시청률 2% 뉴스'의 책임자는 무얼 하고 있는가? 반성이 필요한 자가 반성하는 자를 벌하려 하는 것은 무슨 논리인가? 경위서 제출 요구를 철회하라. 경위서 제출이 징계의 사전 단계라면, 그 또한 중단하라. 징계 대상이 누구인지는 명백하다. 막내기자들은 다른 기자들을 대신해 참담한 MBC 현실을 사과했을 뿐이고, 다른 기자들보다 조금 더 용기가 있었을 뿐"이라고 꼬집었다.
38기 기자들은 "저널리즘의 기본을 망각한 건 막내들이 아니고 보도책임자들이다. 저널리즘의 기본은 사실 확인이다. 태블릿 PC와 관련해 MBC 보도는 입수경위, 실소유주 의혹, 증거능력과 DNA 등을 거론했지만 팩트 없이 일방적 주장을 사실처럼 보도했다. 저널리즘의 기본을 다했다면, 최순실과 정호성 측 변호인의 주장을 사실처럼 보도한 당사자들이 그 근거를 대라"며 "내부의 건전한 비판을 징계와 인사로 재갈을 물린 책임자들이 사퇴하고, 권력과 한 몸이 되려는 사람들 대신 권력을 감시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제 자리로 돌아가는 게 사망선고가 내려진 MBC뉴스를 살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말했다.
39기 기자들은 "저널리즘의 기본조차 지키지 않는 MBC뉴스에 대해 반발하는 방법조차 잊어버리고 살아온 지난 시간들과 그 시간동안 켜켜이 쌓여버린 수치심과 염치와 부끄러움에 대해… 막내기자들이 대신해서 시청자에게 사과했다. 곽동건, 이덕영, 전예지 기자에 대한 경위서 철회를 요구한다. 경위서 제출 요구 이전에 우리 뉴스가 이 지경이 된 경위를 먼저 파악하고 대책을 세우는 것이 먼저여야 한다. 경위서는 당신과 당신 옆의 사람들과 우리가 쓰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36기 기자들은 "당신들이 책임지는 MBC뉴스가 스스로 이름조차 숨기게 된 경위를 소상히 밝히십시오. 당신들은 MBC뉴스를 책임지고 있다. MBC 보도 차량과 현장 기자들을 향한 소리는 기자 개인을 향한 게 아니다. 고함과 쓴소리건, 격려와 칭찬이건 MBC뉴스를 향한 것"이라며 △MBC뉴스가 '짖어봐', '부끄럽지 않냐'는 비아냥을 듣게 된 경위 △보도국 조직이 4년차가 4년째 막내 역할을 하도록 기형화된 경위 △MBC뉴스가 2%대 시청률을 기록하게 된 경위를 소상히 밝히라고 요구했다.
33기 기자들은 "뉴스는 거세하고 '청부' 보도에는 충실한 결과, MBC뉴스는 참담하게 몰락했다"며 "현장에서 모욕당하며 눈물을 삼키는 어린 기자에게 경위서를 묻기에 앞서 자신들이 주도한 청부’보도 의혹의 경위부터 밝히는 것이 정상적인 순서"라고 일침했다. 이어, "보도본부장과 보도국장은 그 동안의 행위에 대해서 하루라도 빨리 엄중한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한다. 처참하게 몰락한 MBC뉴스를 우리는 하루빨리 재건해야 한다"고 밝혔다.
◇ "뉴스를 망가뜨린 경위를 설명하고 사과할 사람들은 보도책임자들"
(사진=유튜브 캡처)
35기 기자들은 "45기 기자들(막내기자들)이 동영상을 제작하게 된 경위라면 지난 4년을 살아 온 MBC 기자라면 다 알고 있다. 설마 몰라서 새삼 묻나? 이제 그만 내려오십시오. 그것부터가 시작이다. 막내들이 그 영상을 제작하며 삼켰을 분루에서, 현 보도책임자들은 너무 멀리 있다. 사내방송 만드는 것도 아니고 염치가 있다면 숫자로 철저히 증명된 무능력에 책임을 져야할 것 아닌가. 이십 년 후배들에게 경위서 타령하고 앉아 있을 때인가, 지금 MBC가?"라고 반문했다.
41기 기자들은 "왜 애정어린 시선을 보내던 시청자들이 채널을 돌리는지, 왜 우리의 목소리가 힘을 잃고 비난의 대상이 됐는지, 왜 이제는 그 따가운 비난마저 고마울 정도의 차가운 '무관심'에 직면했는지, 이 모든 것을 고민하고, 답하고, 책임져야 할 사람들은 막내기자들이 아닌 보도책임자들"이라며 "MBC뉴스를 처참하게 망가뜨린 경위에 대해 설명하고 반성하고 사과해야 할 사람들은 막내기자들이 아닌 보도본부장, 보도국장, 그리고 부장단"이라고 전했다.
37기 기자들은 "피해망상에 빠져 권력의 눈치를 보고, 자리보전에 급급해 하며 무비판적인 친위대 구축에만 열 올렸던 보도국 간부들이 지난 5년간 남긴 성적은 2%대 뉴스 시청률과, '소신 있는 왕따'를 자처한다는 정신승리 뿐이다. 대한민국의 도도한 역사적 흐름의 한복판에 있어야할 공영방송 뉴스가 스스로 고립무원의 성 안에 갇혀버렸다"며 "후배들의 행동에 무턱대고 징계 카드를 꺼내는게 '해사 행위'라는 생각에 미치지 못한다면 보도 책임자들에겐 역시 그 옷이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임을 자인하는 꼴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제부 이기주 기자는 "우리가 다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하지 않았던 말을 막내들은 직접 세상 밖으로 꺼냈다. 자랑스럽다. 대견하다. 그러지 못한 제 자신이 부끄럽다. 그런데 이들에게 칭찬은 못해줄망정 대체 어떤 경위를 물으려는 것인가"라며 "거짓말을 당장 거두고, 보도책임자들은 시청자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 그리고 그동안의 족함을 알고 당장 물러나야 한다. 그것이 공영방송 MBC가 바로 서고, MBC뉴스가 살아나는 시발점이 될 것이다. 대체 어떤 경위를 더 알고 싶으신 건가"라고 물었다.
(MBC 기자들의 성명 전문 보기)한편, 곽동건·이덕영·전예지 기자는 오는 11일까지 경위서를 내야 한다. 보통 경위서 제출은 징계를 위한 인사위원회 개최의 전 단계로 여겨지기에, 향후 사측의 결정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