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은(가명·당시 13세)이'가 실종 당시 신었던 신발과 매일밤 끌어안고 자던 곰인형 (사진='하은이' 어머니 제공)
닷새 동안 6명의 남성에게 차례로 성폭력을 당하고도 잘못된 법원 판결로 성매수녀로 낙인찍혔던 13세 지적장애아가 항소심에서 잇달아 승소하면서 오명을 벗게 됐다.
그러나 상급심의 전향적 판례가 이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련법 개정은 지지부진한 상황이라 피해자는 또 나올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동부지법 민사합의2부(한숙희 부장판사)는 지적장애아 '하은이(가명·당시 13세)' 측이 이모(25) 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1심을 깨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CBS노컷뉴스가 단독입수한 판결문에 따르면 재판부는 이 씨에게 하은 모녀 측에 정신적 피해보상으로 500여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아이도 자기가 마음에 들어서 성행위를 한 것'이라는 이 씨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하은 모녀가 정신적 고통과 충격을 받았으리라는 것은 명백하다"고 판시했다.
지난해 10월 서울서부지법 민사합의2부(이인규 부장판사) 역시 하은이 측이 양모(25) 씨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 "당연한 판결 왜 이제야…기가 막혀"
앞서 하은이는 지난 2014년 스마트폰 채팅앱에서 만난 6명의 남성에게 잇달아 성관계 등을 당했다. (관련 기사 : CBS노컷뉴스 2016. 5. 12 <지적장애 13세="" 하은이,="" '성매매女'="" 낙인찍힌="" 사연="">)
양 씨는 서울 송파구의 한 모텔로 하은이를 유인해 유사성행위를 한 뒤 달아났다. 이후 이번 판결의 피고 이 씨는 경기 의정부의 한 모텔에서 하은이를 겁탈했다.
닷새 뒤 하은이는 인천의 한 공원에서 두 눈이 풀린 상태로 발견됐으며 이후 흉기로 자해를 시도하는 등 고통을 겪다 정신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았다.
십대여성인권센터 등 178개 여성.청소년 단체 회원들이 서울 서부지법 앞에서 만13세 지적장애 아동(가명 하은이)을 성매수한 가해자를 아동에 대한 침해가 없어 배상할 필요가 없다고 판결한 재판부에 대해 규탄 기자회견을 하던 모습. (사진=윤창원 기자)
하지만 1심을 맡은 형사·민사재판부가 각각의 사건을 잇달아 성매매로 규정하면서 하은이는 법정에서 '자발적 성매수녀'로 낙인찍혔다.
아이가 애플리케이션에 '재워주실 분 구한다'는 채팅방을 개설했고 '숙박이라는 대가'를 받았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시 하은이는 어머니가 외출한 사이 갖고 놀던 스마트폰을 떨어뜨려 액정화면을 깨뜨렸고, 혼이 날까 두려워 가출한 상태였다.
억울한 사연은 발생 2년 만에 세간의 주목을 받았으며 당시 고영한(61) 법원행정처장이 국회에 나와 1심 판단의 문제를 인정하기도 했다.
판결을 지켜본 십대여성인권센터 조진경 대표는 "당연한 판결이 이렇게 오랫동안 걸려서 나왔다는 게 기가 막히고 아쉽다"면서 "처음부터 아이를 피해자로 봤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성토했다.
이어 "성매매에 가담한 청소년을 피의자가 아니라 피해자로 봐야 한다는 관련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다수 발의됐는데 현재 모두 계류 중"이라며 "언제든지 피해자는 또 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지적장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