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가 침체의 늪에 빠지면서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 남의 일이 아니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일본은 아베노믹스를 통해 침체 국면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우리 경제는 뚜렷한 대책없이 헤매고 있는 모습이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과 아베노믹스를 통해 우리 경제를 돌아본다.정부의 2017년도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2.6%이다.
정부가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 이하로 제시한 것은 외환위기의 늪에 빠져있던 1999년 이후 처음이다.
최근 계속된 2%대의 성장(2012년 이후 2014년을 제외하고는 모두 2%대)에 이어 정부의 전망치도 2%대가 되면서 이제 2%대의 저성장은 당연한 것이 되고 있다.
비단 성장률 뿐만 아니라 수출증가율(2015년, -8%/ 2016년, -5.9%), 청년실업률(2016년 11월, 8.2%)과 제조업 평균가동률(2016년 11월, 73.5%), 가계소득증가율(2016년 3분기, 0.7%) 등 각종 지표도 현 상황이 침체를 넘어 위기 국면으로 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저출산 고령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어 우리 경제도 ‘일본의 잃어버린 20년’과 같은 장기 침체의 늪에 빠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우리 경제가 일본의 모습을 답습해 비슷한 산업구조와 발전과정을 거쳐온 만큼 실패의 모습도 같지 않을까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럴 경우 우리 경제상황은 일본보다 더 나빠질 수도 있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도 일본처럼 이미 저성장국면에 들어갔다고 본다. 물론 우리는 90년대 초 일본처럼 거품이 꺼져서 충격이 온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더 나빠지는 상황으로 갈 수도 있다. 정부 전망처럼 성장률이 2%만 유지해도 성공적이다. 왜냐면 더 나빠질 요인들이 많기 때문이다. 경제가 더 나빠지면 일본보다 경제여건 기초가 약한 우리나라는 더 위험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일본이 아니라 남미나 그리스와 같은 상황으로 안간다는 보장을 못한다”고 말했다.
현 국면이 IMF 외환위기와 같은 위기 국면으로 가는 분기점이라는 지적도 있다.
김현철 서울대 일본연구소장은 “현재 일본은 장기 침체에서 빠져나오려는 출구에 있고 우리는 침체국면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서 있다. 이 국면은 여기서 잘못하면 IMF 외환위기와 같은 위기에 빠지게 되고 잘하면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분기점과 같다”고 진단했다.
문제는 그런데도 우리는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도 못하고 입구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일본이 아베총리가 내건 경제정책인 ‘아베노믹스’를 통해 잃어버린 20년에서 벗어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모습과 대조된다.
‘아베노믹스’하면 우리에게는 무제한 양적 완화, 마이너스 금리, 헬리콥터 머니 등이 떠오르고 아베라는 극우파 정치인의 무리한 포퓰리즘적인 경제정책 정도로 과소평가되고 폄하되기 일쑤다.
하지만 ‘아베노믹스’의 내용을 뜯어보면 ‘잃어버린 20년’에 대한 깊은 고민과 성찰에서 나온 근본 처방을 담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된다.
아베노믹스는 대규모 금융완화와 과감한 재정투입, 성장전략 등 3개 부문으로 이뤄져 있고, 아베 정부는 이를 3개의 화살로 표현하고 있다.
3개의 화살은 일본 경제를 살리기 위한 단기에서 중장기에 이르는 처방을 다 포함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무제한 양적 완화와 재정지출에 의해 돈을 많이 풀어 일본 경제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히고 있는 디플레이션 (경제 전반적으로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현상)에서 벗어나게 하고 중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성장을 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현 시점에서 아베노믹스의 성공을 말하기는 힘들다.
일본 경제도 아베노믹스 이후 여전히 부침을 거듭하고 있고, 일본 내부에서도 아베노믹스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베노믹스를 통해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어느 정도 보여준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적어도 아베 정부가 주된 목표로 삼았던 디플레이션에서는 벗어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평가다.
유상윤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디플레이션이 심해지면서 디플레이션 자체가 불황의 결과일 뿐만 아니라 불황에서 못 벗어나게 한다는 주장이 확산됐다. 그래서 디플레이션을 깨지 않으면 일본 경제에 희망이 없다고 할 정도로 지난 2012년말 아베 정부 출범 때는 디플레이션이 가장 큰 문제였다. 아베 정부는 두개의 화살을 집중적으로 쏘면서 총력 대응을 한 결과 지금은 디플레이션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기업 실적도 좋아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아베가 일본을 구했다는 호평도 받고 있다.
김현철 일본연구소장은 “아베는 일본 국민에게는 구세주라고 할 수 있다. 잃어버린 20년에서 벗어날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아베노믹스 이후 일본 경제는 제로나 마이너스 성장에서 플러스로 돌아섰다. 작년에도 1%대였다. 물론 이것이 일본 경제가 앞으로 잘 나갈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일본이 2%대 성장을 회복하기는 힘들 것으로 본다. 그동안 시간을 너무 허비해서 저성장의 병이 너무 깊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아베노믹스에서 더 눈여겨 볼 부분은 지난 2016년 6월 2단계로 나온 ‘1억 총활약 플랜’이다.
이 플랜은 세번째 화살에 해당되는 장기적인 성장 전략이다.
저출산 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시대를 맞아 향후 50년간 인구 1억명을 유지하고 경제를 확장하겠다는 목표 아래 남녀노소 등 모든 인구를 포용해 각자의 능력을 발휘하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구체적으로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으로 비정규직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장시간 근무를 근절해 노동의 질적 개선과 생산성 향상을 이루고 고령자의 고용을 촉진하는 등 노동방식을 개혁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를 통해 여성과 청년, 고령자의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경제성장과 관련해 구조적인 변화를 꾀하려는 복안에서 나온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용택 IBK 리서치센터 투자전략팀장은 “일억총활약플랜에 따라 돈을 찍어서 임금을 올려주고 있다. 기업을 통해서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고 최저임금을 매년 4%씩 올리고 있다. 또 저출산, 고령화 정책을 통해 노인과 여성근로자를 고용증가로 유도하고 있다. 이것이 내수 기반으로 쌓여가고 있다. 지금까지 일본이나 우리나라의 특징이 경제를 기업이 끌고 가는 구조였고 상대적으로 소비나 가계의 비중은 작았는데 이 구조를 바꿔 가계부분의 소득을 늘리고 이 부분의 파이를 키워 경제를 지속가능한 성장구조로 만들겠다는 소득주도성장론이 밑바탕에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아베노믹스는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고심 끝에 만들어낸 처방으로 일본과는 상황이나 여건이 다른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될 수는 없다.
하지만 일본을 뒤따라가며 성장해오면서 비슷한 산업구조를 갖고 있고 생산인구 감소와 낮은 가계소득, 높은 부채 등으로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는 우리로서는 많은 시사점과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아베노믹스는 특히 위기의 분기점에서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자성의 계기가 된다.
조경엽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는 아베노믹스에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은 따라가고 모범으로 삼고 따라가야 할 부분은 안 따라가고 있다. 양적완화나 금리인하하고 돈 푸는 것은 쉬운 거니까 따라 하면서 개혁을 해가는 부분은 안 따라갔다. 아베정부의 개혁드라이브는 아직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보고 배워야 할 부분이다. 우리는 4대 개혁이라고 말 만했지 규제개혁이나 노동개혁 등 어느 하나도 제대로 한 것이 없다. 특히 박근혜 정부 들어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부동산을 띄우려는 초이노믹스(Choinomics,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경제 정책)는 눈 앞에 보이는 성과를 내는데 초점을 둔 최악의 정책이었다”고 말했다.
김현철 일본연구소장은 “우리나라는 저출산 고령화가 눈 앞에 닥쳤는데도 중장기적인 정책도 없고 단기적인 처방 중심이다. 그것도 찔끔찔끔해서 골든타임도 다 놓쳐버리고 있다. 위기가 닥쳤는데도 정신을 안 차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은 단기간에 과감한 재정과 금융정책을 썼고 중장기적인 성장전략도 시행하고 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과감한 정책을 시행하고 중장기적인 전략도 함께 내놔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 콘트롤 타워가 있어야 하고 아베와 같은 리더십을 가진 똑똑한 지도자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라고 강조했다.
일본이 추진할 과제와 정책에 대해 의견과 힘을 모아가는 과정도 배울 점이다.
유상윤 책임연구원은 “일본이 의견을 모아가는 과정은 배울 점이 많다. 정부가 기업인이나 교수를 모아서 포럼과 같은 회의를 해서 우선적인 과제를 설정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해법에 대한 의견을 모은 뒤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그 결과를 공유하는 활동이 활발히 이뤄진다. 우리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정부와 민간의 지식을 한꺼번에 공유하고 공감대가 형성된 바탕 위에서 중장기적인 시각에서 실행해 나가는 것을 배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아베노믹스는 아직 진행 중이다.
그 성패는 알 수 없지만, 어떤 결과가 나오든 우리에게는 의미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로서는 돈 한푼 안들이고 잃어버린 20년을 앞서 경험한 일본의 거대한 실험과정에서 귀중한 교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