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31일 권한정지 상태로 한 해를 마감하는 박근혜 대통령은 2016년을 '정면 승부'로 일관했다. 야당의 이견은 '불필요한 정쟁', 측근 감찰은 '국기를 흔드는 일', 2선후퇴 요구는 '법률에 없는 용어'로 치환됐고 '격퇴 대상'이었다. 새해에도 박 대통령은 탄핵심판과 특검 수사라는 두 개의 전선에서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승부를 이어간다.
2016년 들어서도 여전히 여당 과반이었던 19대 국회에서는 테러방지법 처리 강행, 개성공단 전면 중단 등 조치가 일사천리로 진행됐고 야당 반대는 묵살됐다. '소수 야당'은 수차례 박 대통령의 심판 대상으로 거론됐다.
"계속 국회로부터 외면당한다면 국민들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을 것"(1월19일 국무회의), "국민에게 희망을 줄 일은 하지 않고 지지해달라면 어쩌자는 것이냐"(2월24일 국민경제자문회의),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정치권 주장은 공허하다"(3월15일 국무회의), "국회에서 번번이 가로막히는 현실에 국민들 가슴은 미어질 것"(4월12일 국무회의) 등은 이른바 경제·민생 입법을 반대하는 야당을 겨냥한 메시지다.
일방통행식 국정은 4·13 총선 '참패'로 귀결됐지만, 이후에도 '상시 청문회법' 공포 거부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강행 등 박 대통령 기조에 큰 차이가 없었다.
"안보 문제에 있어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하나가 돼야 할 것"(4월18일 수석비서관회의) 등 언급이 이어졌다. "20대 국회에서 국민이 바라는 상생의 국회는 요원해 보인다"(9월24일 장·차관 워크숍)면서 협치(協治)에 대한 부정적 심경도 밝혔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야당에 가혹했던 박 대통령은 자기 자신이나 핵심 측근에 대해서는 옹호로 일관했다. 비리 의혹을 제기한 언론과 정치권은 '부패 기득권 세력과 좌파 세력'(청와대 관계자)으로 매도됐다.
박 대통령은 "고난을 벗 삼아 당당히 소신을 지켜가기 바란다"(7월21일 국가안전보장회의)고 각종 비리 의혹이 제기된 당시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을 격려했다. 또 참모의 입을 빌어 "중대한 위법행위이고 묵과할 수 없는 사안이자, 국기를 흔드는 일"(8월19일 홍보수석 브리핑)이라며 이석수 특별감찰관의 우 수석 감찰정보 유출 의혹을 비난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등 자기 자신이 연루된 의혹에도 박 대통령은 완강히 맞섰다. 국정 비밀자료 유출 의혹에는 "좀 더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10월25일 대국민 담화),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11월4일 담화), "단 한 순간도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고 작은 사심도 품지 않았다"(11월29일 담화) 등 부인과 읍소 전략을 폈다.
그러나 국민적 분노를 막는 데는 실패했다.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 참가자가 수백만명에 달하고, 국정 지지율은 4%까지 폭락하는 지경에 내몰렸다.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박 대통령은 그럼에도 "거국중립내각이라는 것은 헌법에 없는 용어"(11월9일 홍보수석 기자간담회)라며 퇴진은커녕 '2선후퇴' 가능성마저 닫았다. 말바꾸기도 이어졌다. 검찰 수사에 성실하게 임하겠다던 대국민 약속은 "상상과 추측을 거듭해서 지은 사상누각"(11월20일 대변인 브리핑)이라는 검찰 수사내용 폄훼와 함께 번복됐다.
결국 국회에서 탄핵소추 의결이 이뤄졌지만, 박 대통령의 전의는 꺾이지 않았다.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에 따라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과 특검의 수사에 차분하고 담담하게 대응할 것"(12월9일 국무위원 간담회)이라고 했고, "억울함을 호소할 기회가 제공되지 않은 점은 위헌적 처사"(헌재 제출 답변서)라고 항변했다.
지난 1월1일 박 대통령은 황교안 총리 등 각료들을 청와대로 불러 조찬을 함께하면서 "역사는 우리와 상당히 멀리 떨어진 이야기로 생각하기 쉽지만 지금 이 시간도 지나고 나면 역사가 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권한을 정지당한 대통령이자 탄핵심판 피소추인, 특검의 형사 피의자로 1년의 '역사'를 마무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