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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기사가 본 한국, 대리 대통령 놀랍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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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미 대리사회에 살고있다

- 우리는 누군가의 역할, 욕망을 대리로 실현하고 있다
- 동시에 우리는 끊임없이 타인을 대리인간으로 만들고 있다
- 모두가 타인의 욕망, 사회의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 그 욕망이 납득가능한 것인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인지 구별하는 것이 중요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30~19:50)
■ 방송일 : 2016년 12월 28일 (수) 오후 7시 15분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대리사회> 저자, 대리기사 김민섭

 

◇ 정관용> 우리가 뽑은 대통령이 대리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에 경악한 지 지금 몇 달이 흘렀죠. 그런데요. 꼭두각시 인생, 하수인, 이런 말이 꼭 낯설까요? 나는 대리인생을 살고 있었다. 또 지금도 살고 있다. 아니, 더 크게 말하면 우리 사회가 대리사회다라고 주장하는 책이 나왔습니다. 제목 자체가 대리사회예요. 김민섭 작가를 오늘 스튜디오에 초대해 봤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김민섭> 네, 안녕하세요, 김민섭입니다.

◇ 정관용> 우리 1년 전에 만난 적이 있다고요?

◆ 김민섭> 네, 정확히 1년 전에 같은 스튜디오에서 뵀습니다.

◇ 정관용> 지방대학 시간강사.

◆ 김민섭> 네.

◇ 정관용> 그 애환을 닮은 책을 그때는 익명으로 내셨죠?

◆ 김민섭> 네, 그때는 309동 1201호라는 이름으로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라는 책을 냈습니다.

◇ 정관용> 그 책 내셔서 제가 초대해서 시간강사의 어떤 실태, 대학원의 어떤 문제. 이런 것들을 쭉 얘기했던 기억이 나는데 그런데 지금 대리사회라는 책을 쓰셨고 이거 보니까 대리기사시라고요?

◆ 김민섭> 네, 하고 있습니다. 제가 1년 전에 저의 그동안의 삶을, 그러니까 대학에서 강의하고 연구하고 살았던 그 삶을 유령의 시간으로 규정을 지었거든요. 그러니까 말하자면 강의와 연구로는 어떤 사회적 안전망이 보장되지 않아서 맥도널드에서 물류하차 일을 하면서 재직증명서가 발급되지 않아서 대출을 받기도 힘들었고 이런 이야기들. 그런데 그러한 것들이 어떤 유령의 시간이다라고 규정을 했는데 대학 바깥에서 바라보니까 유령의 시간이라기보다는 어떤 대리의 시간이 아니었겠느냐라고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 정관용> 대리의 시간?

◆ 김민섭> 네, 그러니까 저는 대학에서 저를 어떤 구성원으로, 주체로써 믿으면서 강의실과 연구실에 존재를 했는데 그게 무슨 환상이었고 어떤 누군가의 욕망을 대리하면서 계속…. 하지만 주체라는 환상에 빠져서 살았던 게 아닐까. 그래서 대리의 시간으로 규정을 하게 됐고요.

◇ 정관용> 그냥 아주 직접 대입시켜 보면 대학에 정식 채용된 교수들이 할 일을 대신 한.

◆ 김민섭> 거의 하는 일은 그러니까 강의실에서 하는 일은 똑같죠.

◇ 정관용> 그러니까 말이에요. 그런 의미에서의 대리.

◆ 김민섭> 그러니까 제가 어떤 거기에서의 서류상의 존재도 그렇고 아니면 제가 거기서 받고 있는 여러 가지 복지제도라든지 어떤 처우 같은 것들을 망라하더라도 이것은 어떤 주체로써 설 수 없는 시간이었다라고 생각을 하게 됐고.

◇ 정관용> 지나온 나의 삶이 유령의 시간인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대리의 시간이었더라.

◆ 김민섭> 네.

◇ 정관용> 그러니 아예 대리기사를 하자, 이거에요?

◆ 김민섭> 네. 그러니까 어떤 일을 해야 하나 주변을 둘러봤는데 그 대리라는 단어가 계속해서 저를 포위하고 있었고 그런데 노동 중에서 대리라는 단어가 노골적으로 붙은 게 대리운전밖에 없더라고요.

◇ 정관용> 그러네요.

◆ 김민섭> 또 그러고 보니까 대학원, 연구자, 이렇게 있을 때 선후배들이나 친구들하고 술자리에서 파할 때쯤에 종종 나눴던 얘기가 그럼 우리 대리운전이라도 해야 되는 것 아니냐. 이렇게 간편하게 나눴던 얘기들인데 다시 생각해 보면 대리라는 단어는 어떤 나의 주체성을 타인에게 완전히 귀속시키겠다. 그만큼 내가 절박한 상황이다라는 그런 이야기였던 것 같더라고요. 대리운전이라는 노동과 그리고 타인의 운전석이라는 노동공간을 통해서 뭔가를 제가 배우고 지금의 나와 또 과거의 나를 규정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 정관용> 그래서 한 6개월 이미 대리운전을 하고 계시다.

◆ 김민섭> 네.

(사진=김민섭 씨 제공)

 

◇ 정관용> 그랬더니 또 새롭게 깨닫게 되는 게 많아요?

◆ 김민섭> 타인의 운전석은 참 특별한 공간이었어요. 그러니까 차의 주인은 손님의 운전석, 그러니까 조수석에 앉아 있고 오히려 제가 잠깐 그 차를 점유하는 거잖아요.

◇ 정관용> 주인 자리에 앉아 있는 거죠.

◆ 김민섭> 주인자리에 말하자면 침입한 거죠, 손님으로써. 그런데 거기에서 제가 어떤 주체로써 설 수 없는 건 당연하고 어떤 저의 몸과 언어와 사유까지도 그 차의 주인에게 귀속이 되는구나, 그리고 자연스럽게 통제가 되는구나 하는 걸 느꼈습니다.

◇ 정관용> 몸이 통제되는 건 당연하고 말도 조심하게 될 것이고.

◆ 김민섭> 네, 맞습니다.

◇ 정관용> 사유까지 통제가 돼요?

◆ 김민섭> 그러니까 몸이 통제된다는 것은 예를 들면 제가 여기 운전석에 앉으면 저보다 키가 당연히 크거나 작으시거나 하면 의자를 당기거나 밀거나 해야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걸 할 수가 없더라고요.

◇ 정관용> 그래요? 그걸 해야 더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는데.

◆ 김민섭> 그건 당연한데 손님에게 물어보기도 그렇고 그리고 지금 이 운전석도 그리고 백미러나 룸미러, 사이드미러 같은 것도 다 이 차의 주인이 자기 몸과 눈높이에 맞춰 세팅을 해 둔 것들이잖아요.

◇ 정관용> 그래서 그냥 하세요?

◆ 김민섭> 그러니까 정말 힘들겠다 싶으면 양해를 구하지만 웬만하면 제가 좀 몸을 당겨서 앉는다라든지.

◇ 정관용> 아니, 그건 안전운전을 위해서도 꼭 그건 하셔야 돼요.

◆ 김민섭> 저도 그렇게 이성적으로 지금 선생님과 대면해서는 당연히 그리고 상식적으로 이야기를 하는데 딱 그 운전석에 앉는 순간은 제가 철저한 을이 되는 것이고.

◇ 정관용> 내가 그렇게 막 오그라들어요?

◆ 김민섭> 네.

◇ 정관용> 그 말도 함부로 못할 정도로.

◆ 김민섭> 그리고 안전보다는 이 주인의 심기를 건드리는 몸이 되면 안 되겠구나. 그러니까 저의 모든 것이 이 차 안에서는 대리로서 귀속된 곳이구나 하는 감각을 느낄 수 있더라고요. 저도 만약에 누가 저에게 의자 당기기가 그래서 그냥 좀 내가 엉덩이 빼고 운전했어 이러면 혼을 낼 거예요. 그런데 그러한 감각마저도 통제가 된다라는 것이죠. 언어가 통제된다라고 하는 것은 제가 평소에는 어떤 대화의 주체로서 나설 때가 많거든요. 그런데 대리운전 기사들은 저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공감하시던데 먼저 말을 꺼내지를 않습니다. 그러니까 화제를 손님께서, 그러니까 차의 주인께서 먼저 정해 주시면 반갑게 화답을 하지만 만약에 손님이 침묵을 하시면 저희도 침묵하고 목적지까지 가거든요. 그러니까 괜히 화제를 꺼내고 싶지도 않은 것이고 언어가 통제된다라는 것, 그런데 몸과 언어가 통제되다 보니까 사유가….

◇ 정관용> 생각마저도.

◆ 김민섭> 생각이 통제되는 게 금방이더라고요. 예를 들어서 제가 손님들이 대화를 먼저 걸어오실 때 가장 불편한 질문이 두 가지가 있는데.

◇ 정관용> 뭐예요?

◆ 김민섭> 정치적인 것하고 종교적인 겁니다.

◇ 정관용> 자기주장을 막 하시는 그런 손님들.

◆ 김민섭> 네. 30분 동안 전도를 행할 때도 있고 그리고 아니면 당신은 박근혜 좋아, 아니면 문재인 좋아하죠? 이런 식으로 특정 정치인을 거론하시면서 말씀을 하실 때도 있는데 평소 같으면 저는 판단을 합니다. 아, 나는 어떤 정치인과 어떤 종교를, 이런 식으로 판단해서 이야기를 하면 되는데 그 안에서 처음 생각이 드는 건 딱 하나입니다. 생각이 드는 건 딱 하나인데 뭐라고 답을 해야 저 손님이, 저 차의 주인이 불편해 하지 않을까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저 손님은 저렇게 말씀하시는 걸 보니 어느 정치인을 지지하겠구나, 뭐라고 말씀드려야 불편하지 않겠구나.

◇ 정관용> 그냥 맞장구쳐주는 식으로.

◆ 김민섭> 네. 그래서 어느 순간 보니까 제가 딱 세 가지의 대답만 하고 있더라고요. 첫번째는 네, 네 하는 것인데 그러한 대답으로써 내가 당신을 경청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키는 것이고 그리고 맞습니다. 동의와 동조더라고요. 그런데 네, 맞습니다로 끝나는 게 가끔은 세 번째를 해 드려야 하는 손님들이 계셨어요.

◇ 정관용> 뭐예요?

◆ 김민섭> 바로 칭찬입니다. '네, 맞습니다. 대단하십니다'까지 해 드려야 기분이 좋아지시는 손님들이 있고 불편해하지 않으시더라고요. 그런 기계적인.

◇ 정관용> 손님들이 100% 술 드신 분들일 테니까.

◆ 김민섭> 한 99% 정도입니다.

◇ 정관용> 그러니까. 감정도 잘 통제가 안 되고. 더 그렇게 될 수밖에 없겠죠.

◆ 김민섭> 이제 어떤 내밀한 이야기가 정말 주체로써 서로 오가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경우는 많지는 않고.

◇ 정관용> 그리고 또 이렇게 몸과 언어와 생각마저도 통제가 되는 건 몇 번 경험하다 보니까 진상고객들 만나면 점점 더 이렇게 되는 거 아닙니까?

◆ 김민섭> 그렇죠. 그러니까 운행을 몇 번 하지 않았을 때는 타인의 운전석에서 내리는 순간 되게 후련했어요. 나의 호칭, 저는 대학에서는 선생님이란 호칭만 가지고 있었는데.

◇ 정관용> 교수님.

◆ 김민섭> 학생들은 교수님. 그런데 거리에 나오니까 그냥 아저씨인 겁니다. 아저씨라는 호칭이 저를 이제 거리로 내팽개치더라고요. 그런 호칭뿐만 아니라 나의 신체와 언어와 그런 것들을 찾아왔구나 하는 마음이 무척 후련했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두 가지 감정이 들었는데요. 첫번째로는 내가 여기에 익숙해졌구나라는 겁니다. 순응한다는 것이죠. ‘네, 맞습니다. 대단하십니다’라고 말하는 게 얼마나 편안한 순응의 방식인가 하는 것을 알게 되었고 두 번째로는 운전석에서 내린 어느 날 아, 이건 대단히 익숙한 것이다. 내가 타인의 운전석 그리고 대학에서뿐만 아니라 이 사회 어느 공간에서 주체로써 존재해 왔나. 나는 과연 내 몸으로 행동하고 내 언어로써 말하고 그리고 내가 사유의 주체로서 존재해 왔는가 생각해 보니까 '아, 나는 지금까지 이 사회 거대한 타인의 운전석에서 살아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게 7월 어느 날이었는데 그날 대리사회라는 책을 써도 되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 정관용> 나만 대리인생이 아니로구나라는 어떤 깨달음이네요.

◆ 김민섭> 네, 맞습니다.

◇ 정관용> 이 사회 전체가 어찌 보면 대리사회일지 몰라.

◆ 김민섭> 네. 그리고 우리는 끊임없이 타인을 대리인간으로 만들어내고 있구나. 그런 것들도 느꼈습니다.

◇ 정관용> 아주 혹독한 진상고객을 만나서 그런 깨달음을 가졌나 했더니 그건 아니고요?

◆ 김민섭> 아니요. 진상도 많이 많이 만났습니다. (웃음) 이제 어떤 그러한 것들이 조금씩 축적되면서 그러한.

◇ 정관용> 대표적인 진상고객이 어떤 거예요?

◆ 김민섭> 제가 정말 화가 났던 때가 있는데 폭언이나 하대를 하시는 분들이 아니라 제가 한 번은 1.5㎞ 정도 되는 거리가 떴거든요.

◇ 정관용> 아주 짧네요.

◆ 김민섭> 1.5㎞인데. 아, 제가 손님까지 가는 거리가. 그러니까 1500m를 뛰거나 걷거나 해야 되는데 상당히 먼 거리거든요. 그래서 뛰어가더라도 한 15분 정도가 걸리게 되고. 정말 열심히 뛰어가서 손님을 만났습니다. 만났는데 손님을 태우고 운전을 하고 나오다 보니까 어떤 40대 대리기사님께서 주변을 두리번두리번하면서 계속 전화를 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제 손님에게 그 전화가 오고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말하자면.

◇ 정관용> 양쪽으로 불렀군요.

◆ 김민섭> 그렇죠. 대리기사를 한 명이 아니라 두 명, 세 명씩 부르고 먼저 오는 대리기사의 차를 타고 가시는 분들이 있으세요.

◇ 정관용> 다른 사람 전화는 아예 안 받고.

◆ 김민섭> 그렇죠. 그런데 자신에게 자신의 호출을 받고 기계가 뛰어오는 게 아니고 사람, 노동자 세 명이 뛰어오고 있는 거거든요. 그러한 것들을 상상한다면 그게 정말 갑질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 정관용> 그건 진상 수준을 뛰어넘는.

◆ 김민섭> 네. 그래서 저는 그때.

◇ 정관용> 그건 폭력이에요.

◆ 김민섭> 그분의 차를 운전을 하면서 너무너무 화가 났고. 40대 기사님의 얼굴을 잠깐 봤거든요. 정말 뭐라고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손님한테 했던 아주 작은 복수 하나는 내릴 때 인사를 안 하고 나갔죠. (웃음) 대단히 좀 없어 보이는 이야기입니다.

◇ 정관용> 진상고객이 많아요, 좋은 고객이 많아요?

◆ 김민섭> 당연히 좋은 고객이 훨씬 많습니다.

◇ 정관용> 그래요? 다행이네요.

◆ 김민섭> 우리가 진상이라고 규정하는 분들은 그래도 워낙 좋은 손님들이 많기 때문에 그러니까 말하자면.

◇ 정관용> 정말 다행입니다.

◆ 김민섭> 좋은 손님이라고 한다면 갑의 자리에 있는 거잖아요. 그 순간. 하지만 갑의 자리에서 을의 자리에 있는 사람을 주체로써 끌어 올리는 분들이 계세요.

◇ 정관용> 그렇죠. 존중하고 배려해 주고.

◆ 김민섭> 맞습니다. 제가 들었던 가장 감사한 말씀이 뭐였냐면 ‘선생님의 차라고 생각하고 운전해 주세요’라고 하신 분이 있었거든요. 그 말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가장 역설적인 말이면서도 그 안에서 저를 되게 섬세하게 주체로써 대하는 대단히 환대의 방식이었던 것 같아요.

◇ 정관용> 그런데 우리 사회 전체가 대리사회일지 몰라라는 문제의식으로 책을 쓰셨단 말이에요.

◆ 김민섭> 네.

◇ 정관용> 이건 비정상 아닙니까? 그렇죠?

◆ 김민섭> 그렇죠.

◇ 정관용>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모두가 대리가 아닌 주체로서의 삶을 살 수 있는 사회. 어떤 사회라고 보세요?

◆ 김민섭> 저는 대리사회라는 글을 썼지만 대리라는 것을 반드시 나쁜 의미로 쓰지는 않았습니다. 말하자면 저도 그렇고 선생님도 그렇고 모두가 타인의 욕망, 말하자면 그 사회의 욕망과 시대의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라는 것이죠. 그런데 그 욕망이라는 것과 마주할 수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그 욕망과 마주하고 이것이 대단히 천박하고 모욕감을 주는 것이냐. 아니면 상식적이고 납득 가능한 것이냐를 우리가 구분할 수 있어야 하는데 저는 그 방법을 대단히 어렵게 배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학에 있을 때 제가 있는 어떤 그 공간을 단 한 번도 한 발 물러서서 바라본 적이 없었어요. 대학 당연히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곳, 그리고 내가 여기에서 주체로 살아가고 있고.

◇ 정관용> 그런데 그게 다 허구였죠?

◆ 김민섭> 한 발 물러서서 바라봤을 때.

◇ 정관용> 전혀 합리적이지 않고.

◆ 김민섭> 네.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비상식적인 공간으로 저에게 다가왔고. 그런데 어느 곳이나 그럴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이곳을 제가 어떤 주체라는 환상에 빠져서 무조건적으로 합리적인 공간으로 믿을 것이냐. 그러니까 이 공간이 나에게 어떤 대리시키고 있는 욕망을 무조건적으로 선한 것으로 믿을 것이냐. 아니면 스스로 한 발 물러서서 이것과 마주하고 사유하는 주체가 될 것이냐의 문제인 것 같아요. 그래서 모두 지금 서 있는 공간에서 그곳이 어디이든 한 발 스스로 물러서서 바라보고 나는 지금 여기에서 무엇으로 존재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면 대리사회의 주체로써 설 수 있지 않겠느냐라고 생각합니다.

◇ 정관용> 그러니까 그런 삶을 산다라는 것 자체가 꼭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그런 삶을 살더라도 내가 이런 삶을 살고 있다는 건 알고 살아야 될 거 아니냐.

◆ 김민섭> 맞습니다. 그게 시작인 것 같아요.

◇ 정관용> 그거군요.

◆ 김민섭> 그게 살아가는 어떤 품격인 것 같습니다. 제가 대리운전을 하다 보니까 느낀 것이 차의 가격과 운전자의 품격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라는 겁니다. 제가 가장 기억에 남는 손님이.

◇ 정관용> 당연하죠.

◆ 김민섭> 가장 허름한 차를 타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가장 품격 있는 손님으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 정관용> 나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내 삶을 잠깐 한 걸음 뒤떨어져서 내가 서 있는 공간을 들여다봅시다. 그거로부터 이 사회에 대한 나의 인생, 나의 삶에 대한 주체적 인식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라는 문제의식.

◆ 김민섭> 맞습니다.

◇ 정관용> 대리사회의 저자, 대리기사이신 김민섭 씨 함께 만났습니다. 오늘 고맙습니다.

◆ 김민섭> 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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