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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진 해돋이]나을 미치게 하는 7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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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01-02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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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번쯤 꿈꾸며 겪고 싶어하는 새해 정동진 해맞이...뜨거웠던 1박 2일의 경험, 그 현장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正東津
정동진을 가려면 조선시대 한양의 광화문으로부터 정확히 동쪽으로 내달으면 닿게 되는 바닷가라 해서 ''정동진''이라 이름지어졌다는 마을...

정동진역은 세계에서 가장 바다 가까이에 있는 기차역으로 기네스북에도 올라 있지만 우리에게는 드라마 모래시계의 촬영지로 더 유명해졌다죠...

(1) 청룡열차 그리고 영화 ''해안선''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대관령을 넘으면 강릉...강릉에서 7번국도를 올라타 동해방면으로 가다보면 ''안인''이라는 곳이 나온다.

7번국도에서 안인으로 좌회전해 들어서야 꿈의 정동진에 닿을 수 있으나 어라? 좌회전 신호가 없다. 비보호도 아니다. 그냥 눈치껏 비집고 들어가야 한다. 잘못 들어가다 사고나면 정동진은 꿈에서나 볼 수 있게 된다. 처음부터 험난한 여정이다.

하지만 일단 좌회전에 성공해 안인으로 들어가면 정동진까지는 볼거리가 가득하다.

나를 미치게 했던 첫 번째 이유...볼거리가 너무 많다. ''등명락가사''라는 절과 군함을 개조해 만든 ''함선 공원'' 여기다 조각공원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최상의 드라이브 코스, 헌화로...

헌화로는 정동진역을 지나면 나오는 심곡에서 금진항까지 이어지는 길....기원은 수로부인에게 꽃을 따 받쳤다는 전설을 근거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해안과 바로 맞닿아 바다를 끼고 운전하며 차창 너머로 맘껏 바다를 만끽 할 수 있다. 혹자는 다소 구불구불한 길에 환상적인 바다가 어우러져 청룡열차를 탄 기분이라고 표현하곤 한다.

왼쪽으론 동해의 푸른물결이 넘실거리고 군데군데엔 군사보호지역임을 알리는 철조망...그리고 해안 초소에 늠름하게 서있는 초병의 모습도 시야에 들어온다.

영화 ''해안선''의 장동건을 금방이라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2) 4백원? 5백원?

정동진 역은 기차를 타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그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5백원이 있어야 한다. 다른 역과는 달리 입장료로 5백원을 받고 있는 것이다. 정동진 역은 짭짤한 수입을 챙기고 있는 것으로 사료된다.

여기서 두 번째 이유... 기차표보다는 이 입장권 소지 여부를 철저히 검표하는 역무원...다소 딱딱함이 느껴지는 표정과 검은 피부를 가진 역무원의 자기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진지한 자세가 날 미치게 한다.

단 한명이라도 5백원 없인 역안에 진입시키지 않으려는,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을 듯한 철저한 검표...묵묵히 자기 맡은 일을 조그만 미소도 없이 해내는 그의 무뚝뚝함이 나를 미치게 한다.

질세라 나또한 집요함을 과시한다. 입장표를 자세히 봤다. 원래 4백원이라고 프린트돼 있는 것 위에 4자를 5자로 바꾼 흔적이 역력하다.

그래 쏜다. 5백원을 내고 역 안에 들어가 봤다. 과연 특별한 것이 있을까? 시골 바닷가 역의 아름다운 풍경은 있었다.아, 모래시계 기념비가 하나 있긴하다.

''난 누구누구를 사랑한다'' 라는 낙서로 가득한 모래시계 기념碑와 詩碑.

지난 2002년 소금강 계곡 바위 곳곳에서 확인했던 그러한 종류의 낙서들...

한국인은 위대하다. 여기저기 공개된 장소에 자신의 사생활을 드러내 5백원 내고 어렵게 역안으로 들어온 이를 미치게 한다.

(3) 1박에 15만원

2003년 12월 31일,정동진 주변 지역 숙박시설의 하룻밤 이용료는 10-15만원...내가 묵은 곳은 정동진 블루씨 모텔...이름이 근사하다고 속단하지 말라.

허름하기 짝이 없는 곳에 10만원을 주고 하룻밤을 묵기에는 크게 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블루씨 모텔 주인장 역시 1박에 10만원을 받기가 미안했던지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일년에 단 한번인데 손님이 이해하셔야죠..." 그래...1년 한번 대목인데 방 잡은 사실만으로도 감사하다. 내가 참자...

그런데 숙박비 계산을 위해 신용카드를 꺼내 든 나를 보려 내뱉은 주인장의 말씀이 나를 미치게 한다.

"카드는 안됩니다, 현금으로 주세요."
"..."

계산을 마치고 칫솔 하나를 달라고 하자 우리의 주인장, 숙박시설에서 1회용 칫솔 사용이 금지됐으나 손님에겐 특별히 주는 것이라며 공짜로 줬다.

눈물나게 고맙다. 평생 잊지 않겠다.

(4) 정동진? 압구정!

정동진에서 2003년 마지막 점심을 먹으러 간 곳은 압구정 김밥집...
수줍은 미소로 주문을 받는 아가씨의 밝은 표정에 나까지 기분이 좋아졌다..

메뉴에는 짬뽕라면 밖에 없길래 그냥 ''라면''은 안되냐고 묻자 ''된다''라고 말한 뒤 주방에서 들고 온 라면이 나를 미치게 한다.

짬뽕라면에서 해물만 건져낸 그냥 ''라면'' 어찌하겠는가? 김밥과 그냥 ''라면''으로 허기진 배를 달래는 수밖에...

그 아가씨가 이번엔 전화로 주문을 받는다. 그 내용이 날 또한 미치게 한다.

"네, 압구정입니다. 참치김밥 2개요? 알겠습니다." 정동진의 압구정...난 흥분하고 있다.

(5) ''위대한 사랑''

2003년 12월 31일 밤... 새해 첫 방송을 위해 시민 인터뷰를 하러
정동진 해변에 나갔다.

해변 곳곳은 전국에서 몰려 든 연인들의 사랑담긴 속삭임으로 가득하다. 후회했다. 왜 나갔을까? 내가 미쳤지...

서울에서 왔다는 4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한 부부의 해맑은(?) 미소가 날 미치게 한다.

초등학교 자식은 시부모님께 잠시 맡기고 모처럼 연인 기분 내려고 먼길을 달려 왔다는 그 부부...

시종내내 놀랄만큼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인터뷰에 응했던 그 부부...

인터뷰가 끝나자 약속이나 한 것처럼 해변에서 펼쳐졌던 그 부부의 "심야의 나 잡아봐라 놀이..."

결심했다. 나도 지금은 이렇게 살고 있지만 나중엔 나도 저 부부처럼 나의 사랑하는 아내에게 항상 이같은 열정을 바치리라.

''위대한 사랑''은 드라마 제목이 아니었다. 정동진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우리 주변 사람들의 평범한 얘기었다.

(6) 맷돌 아줌마와 튀김 아줌마

정동진 모래시계 탑 주변에선 ''2004년 카운트 다운'' 행사 등 다채로운 새해맞이 행사가 열렸다.

새해 새벽 0시...야외 무대 앞에 모인 관광객들의 카운트 다운이 시작됐고 동시에 모래시계탑이 움직이고 그리고 밤하늘은 수백발의 불꽃놀이로 뒤덮었다.

바로 내 머리 위에서 펼쳐지는 듯한 착각을 불러오는 환상의 불꽃놀이! 어찌 말로 다 표현하랴?

식전 행사로 뽀빠이 이상용 씨의 사회로 즉석 아줌마 춤 자랑 대회가 열렸다. 상금은 현금 15만원...

뽀빠이는 만원짜리 15장을 연신 흔들며 대회 참가를 망설이는 수많은 아줌마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고 드디어 10여명의 아줌마들이 무대위로 올라가 무언가에 홀린 듯 ''왁스의 오빠''에 맞춰 광란의 춤을 치기 시작했다.

결국 결승엔 ''맷돌 아줌마''와 ''튀김 아줌마''가 올라갔다. 튀김 아줌마는 배를 엄청 튀기면서 춤을 춰서 맷돌 아줌마는 보지 않으면 믿기 힘들만큼 허리를 잘 돌려 뽀빠이가 즉석에서 붙여준 별명...

결국 두 아줌마는 상금으로 5만원씩을 받고 무대를 떠났다. 요즘 노래방에 가면 도우미라고 해서 춤추고 노래부르고 시간당 몇 만원씩을 가져가는 아줌마들이 있다.

나는 단언한다. 맷돌 아줌마와 튀김 아줌마는 노래방 도우미 아줌마하고는 차원이 다르다고...

수천명의 해맞이 관광객들에게 기대 이상의 웃음을 주고 사라진 튀김 아줌마와 맷돌 아줌마의 용기는 진정 날 미치게 하고도 남았다.

(7) 새해 첫 불덩이...

2004년 갑신년 1월 1일 아침 7시 40분... 정동진 하늘에 기다리던 붉은 불덩이가 솟아올랐다. 7시부터 하늘엔 붉은 기운이 감돌았지만
아기다리 고기다리 던 태양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얼핏 보니 옅은 안개가 많이 낀 것도 같고 해를 못 보는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엄습하던 순간, 주홍빛 새해 첫 태양이 조금씩 조금씩 수면위로 솟아올랐다.

나도 직접 새해 첫 일출을 본 적은 처음이라 떨리는 마음으로 작은 소원을 빌었다.

가정의 행복을 그리고 그녀의 행복을...
두 번째 소원은 어떻게 그리도 빨리 이뤄졌을까(?)

순간 옆에 있던 할아버지의 전화소리가 날 미치게 한다.

"여보! 해 떴어 지금, 응 지금 막 떴어...혼자 봐서 미안해...여보 내년에 꼭 같이 오자...응?"

할머니는 지금 몸이 아파 병상에 누워있다던 그 할아버지... 새해 첫 일출의 감동을 사랑하는 늙은 아내와 나누기 위해 해 뜨기가 무섭게 휴대전화를 꺼내 든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해를 보고 소망한 것이 무엇인지 굳이 물어보지 않았다.

...

정동진에서 보냈던 2003년의 마지막 날과 2004년의 첫 날... 앞서 말한 7가지 외에 말 못한 더 많은 것들이 날 미치게 했다.

CBS 사회부 최철 기자
ironchoi@cbs.co.kr

(최철기자는 CBS 사회부 기자로 현재 http://www.nocutnews.co.kr에서 "최철의 폴리스라인"이라는 이름으로 블러그 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다. 감칠맛 나는 글솜씨로 많은 네티즌들의 호응을 받고 있으며 연대 철학과 졸업한 총각기자)


(CBS창사 50주년 뉴스FM 98.1,음악FM 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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