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각계각층의 폐기 요구에도 일년간 '밀실 편찬'해온 역사 국정교과서를 28일 공개한다.
"열심히 잘 만든 올바른 교과서"란 게 정부 입장이지만,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친일·독재를 미화하는 기술이 대거 포함되면서 가뜩이나 분노한 민심에 기름을 붓게 될 전망이다.
교육부가 이날 오후 1시 20분 별도의 웹사이트에 공개할 국정 교과서는 '중학교 역사 1, 2'와 '고등학교 한국사' 등 3권의 현장검토본이다.
같은 시각 이준식 장관도 정부서울청사에서 대국민담화를 갖는 한편, 철저하게 보안을 유지해온 집필진 46명도 공개한다.
한때 철회 여부를 고심하나 싶던 이 장관은 '200만 촛불'이 타오른 26일 저녁 청와대 김용승 교육문화수석과 만나 오히려 국정화 강행 의지를 굳혔다.
이 장관은 이튿날 기자들과 만나 "국정교과서를 철회하는 것은 고려하지 않는 사항"이라며 "우리가 열심히 잘 만든 역사교과서를 학교 현장에서 어떻게 잘 적용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교육부가 여론의 강력한 반대 속에 최근 들어 모호한 입장을 취했던 것도, 결국 '철회'가 아닌 '관철'에 방점이 찍혀있음을 보여준다.
이날 공개되는 현장검토본은 다음달 23일까지 의견 수렴을 거친다. 하지만 공인인증서나 아이핀 등을 통해 본인 인증 절차를 거쳐야만 의견을 게시할 수 있다.
특히 제기된 의견은 오직 교육부만 볼 수 있어, 수렴 절차조차 '밀실 행정'이란 지적이 나온다.
의견 수렴 기간이 끝나면 16명의 편찬심의위원이 최종 수정 및 심의를 거쳐 내년 1월중 최종본을 확정한다.
그때까지 심의위원 명단은 공개하지 않기로 해, 이들이 그사이 어떤 내용을 또 추가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시대착오적 국정화라는 '태생적 한계'에 밀실을 전전하는 '졸속 절차'도 문제지만, 가장 우려스러운 건 교과서의 내용이다.
지난 25일 공개된 '편찬기준'을 보면 그동안 역사학계와 교육계에서 우려해온 '뉴라이트 관점'이 대거 반영됐다.
가장 큰 관심사였던 '대한민국 수립 시점'을 1948년으로 규정한 걸 두고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부정하면서 친일파에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이 당장 제기된다.
독립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축소하는 지침도 적용됐다. "광복은 연합국의 승리만으로 이루어진 타율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끊임없는 독립 운동의 결과"란 게 지금까지의 기준이었다.
하지만 국정교과서에선 "우리 민족의 지속적인 독립 운동과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이 승리한 결과"로 바뀌었다.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을 미화하려는 시도 역시 여럿 눈에 띈다.
"역대 정부를 서술할 경우에는 집필자의 주관적 평가를 배제하고 그 공과를 균형 있게 다루도록 유의하라"면서도, 사실상 이들의 '공'(功)을 부각시키는 데 주안점을 둔 것.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는 "한마디로 뉴라이트 역사관의 완결판"이라고 지적했다.
'한미 상호방위 조약 체결의 역사적 의미'나 '민주화 운동은 경제·사회 발전 과정에서 국민의 자각으로부터 비롯됐다'는 표현은 두 전 대통령을 찬양하는 사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특히 기존 교과서에서 세력을 지칭해온 '친일파'란 표현 대신, 개인 차원에 국한시킨 '친일 인사'를 쓰도록 했다.
'독재'란 표현 대신 '권위주의 정권의 장기집권에 따른 독재화'처럼 장황한 기준을 제시한 것도 현 정부의 국정화 강행 의도를 여실히 보여준다는 분석이다.
네트워크 관계자는 "국정 농단으로 하야 요구에 직면한 벼랑 끝에서도 '아버지 미화'를 위해 기어이 역사 농단까지 벌이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머지않은 미래의 역사책에 또다른 '과'(過)로 기록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