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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려고 공무원 했나"…자괴감 빠진 세종 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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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 공무원 줄줄이 최순실 게이트에…"정권 명령 공무원도 못 믿어"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는 시민들이 정부세종청사 앞을 행진하고 있다. 세종청사 내부도 부글부글 끓고 있다. (사진=장규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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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망받던 엘리트 관료들이 줄줄이 최순실 일가의 사익추구에 이용된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공무원 사회는 박근혜 대통령 말마따나 "이러려고 공무원 했나"라며, 깊은 자괴감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정권이 내리는 명령의 정당성마저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공직 사회는 일 할 의욕을 잃었고, 이대로 가면 정책 추진동력이 급격히 상실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참담합니다…. 나라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경제수석을 지냈다는 사람이 이런 자리에 와 있다는 것 자체가 부끄럽습니다."

경제 관료로 승승장구 엘리트 코스만을 밟아온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지난 17일 검찰 수사 직전 내뱉은 이 한마디는 지금 공직사회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다.

한 간부 공무원은 "그는 자존심이 강하고 강단있는 상사였다"며 "그런 일(CJ 부회장 퇴진 압박)에 연루됐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사실 많은 공무원들이 사석에서 "참담하다"는 조 전 수석의 말에 깊은 공감을 나타냈다.

지난 20일 검찰의 공소장이 공개되면서 파장은 더 커졌다. 최상목 현 기획재정부 1차관이 지난해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으로 재직하면서 나흘 연속 전경련 관계자들을 불러 미르재단 설립 자금 300억원 모금에 나선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최 차관은 "중국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문화교류를 위해 재단이 필요하다고 해서 실무적으로 지원한 것일 뿐, 최순실이 연루됐다는 것은 전혀 알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그가 결과적으로 최순실 일가의 사적 이익을 위한 직권남용 행위에 가담했거나, 적어도 이를 지원하는 일에 활용됐다는 사실은 피할 수 없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아무리 시키는 일만 했다고 하더라도, 직권남용의 공범에 해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재부 직원들이 '닮고 싶은 상사'로 선정하는 등 선후배들의 두터운 신망 속에 기재부의 중요 보직을 차근차근 밟아 올랐던 최상목 차관이었다.

최순실, 차은택의 직격탄을 맞은 문체부는 물론, 조원동 전 수석에 이어 최상목 차관까지. 촉망받던 관료들이 줄줄이 최순실 게이트에 이름을 올리면서 세종 관가는 충격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 경제부처의 공무원은 이를 '공무원의 숙명'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야말로 '옷 벗을 각오'가 없으면,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에서 비롯되는 상부의 지시를 거부할 수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는 "지시를 받으면 선택의 순간(사직 혹은 지시수행)이 온다"며 "결국 탈이 나지 않기를 바라며 지시를 수행할 수밖에 없다. 지금 상황에서는 그저 내가 책임질 일에 연루되지 않았다는 사실 만으로 안도하는 것이 전부"라고 말했다.

또 다른 모 부처의 한 과장급 공무원은 "대다수 공무원은 자신이 하는 일이 국민을 위한 것이라는 자부심으로 살아간다"며 "정권이 내리는 명령의 정당성을 공무원조차 믿지 못하는 상황을 어떻게 해야하느냐"고 물었다.

이 물음 앞에 국가정책을 떠받치는 공직 사회가 무너지고 있다. 공직 가치를 그렇게 강조했던 박근혜 대통령이 스스로 공직 가치를 무너뜨리는 모순. 국정 공백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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