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0일, 한겨레 보도로 최순실 씨의 이름이 세간에 알려졌다.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로서 대통령 연설문 개입에서부터 사회 각 분야에 영향력을 미친 최 씨의 '국정농단' 사태는 여전히 우리 사회의 가장 '뜨거운 감자'다.
그러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두 달여 간 계속되는 동안 '공영방송 KBS와 MBC는 새로운 사실을 발굴하며 보도를 주도하기는커녕, 박 대통령과 거리를 두며 사안을 축소하거나 번번이 타사 보도를 받아쓰는 모습을 노출했다. 현장에 강한 언론이자 우리나라 대표 뉴스 채널로 자리매김했던 YTN 역시 소극적인 보도로 내부 구성원들의 원성을 들었다.
최순실 씨와의 관계를 인정한 박 대통령의 첫 사과(10월 25일) 이후에야 뒤늦게 특별취재팀을 꾸리는 등 '첫발'부터 늦었던 이들 방송사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보도를 내부에서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
◇ MBC "노려본 우병우 노려봤다고도 못 써"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본부장 조능희, 이하 MBC본부)는 9일 노보를 발행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보도 시 여전히 '성역'이 존재한다는 점을 짚었다.
지난 6일 검찰에 출석한 우병우 전 민정수석 보도가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이날 우 전 수석은 자금 유용과 관련해 질문하는 기자를 쏘아보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됐고, 이는 수사받는 입장 답지 않은 '고압적 자세'여서 화제가 됐다. 그런데 MBC '뉴스데스크'에서는 이같은 내용이 제대로 담기지 않았다.
6일 방송된 MBC 뉴스데스크 (사진='뉴스데스크' 캡처)
MBC본부에 따르면 취재기자가 처음 송고한 원고에는 "무표정한 얼굴로 '성실하게 조사를 받겠다'며 입을 열었지만, 가족과 관련한 질문에 바로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는 표현이 들어가 있었다. 중간 데스킹본에서도 "자금 유용과 관련한 질문에는 날카롭게 반응했다"라는 상황 묘사가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사회1부장이 승인한 최종 출고본에는 '불편한 기색'도 '날카로운 반응'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단지 "담담한 표정으로 포토라인에 선 우 전 수석은 쏟아지는 질문에 '성실하게 조사를 받겠다'는 답변만 반복했다"고만 돼 있었다.
MBC본부는 "노려본 것을 노려봤다 말도 못하게 틀어막은 것이다. 꼭지수를 늘리고, 특취(특별취재)팀을 늘리고, '단독을 가져오라' 채근해도 여전히 넘어선 안 되는 보호해야 하는 '성역'이 존재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이밖에도 MBC본부는 박 대통령이 엄정 수사를 언급한 뒤(10월 20일)에야 검찰 수사 쟁점을 보도하기 시작한 점, 박 대통령의 첫 사과(10월 25일) 후에야 최순실 씨 관련 의혹 보도에 나선 점, 갤럽 조사 결과 5%로 곤두박질친 대통령의 지지율 분석 보도가 없는 점, 현장 연결 없는 집회 보도 등을 문제로 지적했다.
또한 대통령 본인이 깊이 개입된 게이트임에도 정작 MBC뉴스에서 대통령은 "인적 쇄신을 심사숙고"(10월 26일)하고 "의혹 해소를 촉구"(10월 27일)하고 "사태 수습의 첫 단추는 '청와대 인적쇄신'이라는 인식에 따라 인선 작업을 지시"(10월 30일)하는 '주체'로 언급되는 것을 두고도 "언론으로서 가져야 할 합리적 의문과 비판이 아직도 되살아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MBC본부는 "뉴스데스크의 변화를 위해서는 성역을 파괴해야 한다. 궁금한 것은 물어야 하고, 지적할 것은 지적해야 한다. 여론과 민심은 있는 그대로 전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KBS "대통령 감싸는 듯한 보도"
3일 방송된 KBS 뉴스9 (사진='뉴스9' 캡처)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본부장 성재호, 이하 새노조)도 같은 날 발행한 노보를 통해 "여전히 대통령의 범죄 의혹과 잘못을 지적하기보다는 오히려 감싸는 듯한 모습마저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지난 3일 박 대통령의 김병준 총리 지명에 대해 '뉴스9'는 "대통령이 지금 이 상황에서 이런 방법 외에 다른 선택지가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본다"고 보도했다. 이런 멘트는 '대통령을 감싸고 돈다'는 지적을 받기에 충분히 부적절했다는 설명이다.
새노조는 대통령의 사과 담화가 있었던 4일 뉴스특보에 단독 외부 패널로 출연한 인사가 대표적인 뉴라이트 계열 학자라는 점, 현 시국을 둘러싼 거국내각, 책임총리, 특검, 하야와 같은 이슈들에 대해 여야의 정략적 싸움의 틀 안에 가둬 보도하는 '물타기식' 보도행태를 고집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한 새노조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특보는 10월 30일부터 11월 6일까지 8일 동안 215분을 편성한 반면, 미국 대선 결과가 나오는 오늘(9일) 관련 뉴스특보를 365시간 편성한 것을 비판하기도 했다. 2012년 미 대선 당시 KBS의 뉴스특보 분량은 130분이었다.
새노조는 "'대통령 하야' 요구가 빗발치는 이른바 '내 코가 석자'인 작금의 우리나라 상황인지라, 이 같은 편성은 혹여 '미 대선 뉴스로 국민의 관심을 조금이라도 다른 곳으로 돌려보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 충분하다"고 꼬집었다.
새노조는 KBS 내에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보도가 더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늘(9일)까지 KBS는 '추적60분'(2일), '특집토론'(4일), '시사기획 창'(8일) 총 3차례 이 사안을 다룬 바 있다. 새 노조는 "이 정도 수준의 편성으로는 최순실 보도 참사에서 조금도 헤어날 수 없다. 오히려 면피 수준의 뒷북 방송, 변죽만 울리는 방송이라는 비난만이 더해질 뿐"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KBS가 보도와 편성에서 좀처럼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 사태는 근본적으로 은폐와 늑장으로 최순실 보도 참사를 불러온 김인영 보도본부장과 정지통합뉴스룸 국장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데 기인한다"며 보도본부장과 보도국장의 즉각 사퇴를 촉구했다.
◇ YTN "집회 보도, '불꽃축제 중계만큼도 준비 안 했다'는 한탄 나와"전국언론노동조합 YTN지부(지부장 박진수, 이하 YTN지부)는 8일 공추위 보고서를 내어 사측에 "도대체 누구의 눈치를 보는 건가"라고 반문했다.
YTN지부가 가장 문제 삼은 부분은 지난 5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집회 취재·보도였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분노한 시민들이 서울에서만 20만명 넘게 모인 대규모 집회였음에도 준비가 너무 부족했다는 것이다.
6일 방송된 YTN뉴스 (사진='YTN뉴스' 캡처)
YTN지부는 "보수 종편까지도 방송 내내 시민들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YTN은 현장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 집회가 이어지는 몇 시간 동안 방송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 아무런 계획이 없었다"며 "대규모 촛불집회를 앞둔 YTN의 방송계획은 '2시간에 1번씩 중계차 연결'이 끝이었다"고 밝혔다.
YTN지부는 "당일 근무자들이 적극적으로 발제한 덕분에 중계차 연결 시간을 늘리고 현장 상황을 분할 화면으로 보여주는 등의 노력은 했지만 준비 없이 급박하게 만든 방송의 한계는 분명했다"며 "오죽하면 일선 기자들 사이에서 '불꽃축제 중계만큼도 준비를 안 했다'는 한탄이 나오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또, YTN지부에 따르면 대규모 집회가 예정됐던 5일 오전 6시부터 오후 3시 뉴스까지 '대통령 퇴진'을 내건 집회가 헤드라인 탑 보도로 나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YTN지부는 박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를 비롯해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집회가 열렸지만 종합적인 취재계획이 없었다는 것을 꼬집기도 했다.
YTN지부는 "보도 책임자들의 여전한 눈치보기는 현장 기자들의 취재 의지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며 "우리 보도는 정권이나 특정 정치세력이 아니라 시청자를 위한 것이다. 보도 책임자들이 소극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시청자의 관점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슈를 적극적으로 다룰 것을 촉구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