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측근은) 보통 성씨가 '최'씨죠?""점성가라면 무당?""미국이 신정정치를 했네요.""미국판 국정농단?"7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비정상회담'의 주제는 '대통령의 조건'이었다. 각국의 패널들은 한국이 아니라 그저 자기 나라나 이웃 나라의 이야기를 할 뿐이었지만, 신기하게도 현재 한국 상황을 되새길 수 있는 내용으로 흘러갔다.
◇ "지지율이 떨어지면 사임할 수밖에"
7일 방송된 JTBC 비정상회담 (사진='비정상회담' 캡처)
'최악의 지도자와 탄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브라질 대통령이었던 지우마 호세프의 사례가 나왔다. 첫 여성 대통령으로 사람들의 기대를 받은 그는 재정관리를 너무 못해 국고를 다 써 버렸고, 예산법 위반 혐의로 결국엔 '잘렸다'.
워터게이트 사건도 언급됐다. 미국 대표 마크는 공화당이었던 닉슨 대통령이 민주당 본사로 도둑을 보내고 서류를 훔친 얘기를 하면서, "그런데 우리 미국 사람들이 참을 수 없는 건 거짓말이었다"고 말했다. 닉슨은 '나는 거짓말쟁이가 아닙니다'라고 공개석상에서 말했지만 결국 사실이 드러나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이탈리아 대표 알베르토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대통령이나 총리를) 자를 수는 없지만 지지율이 떨어지면 사임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정부가 따라가지 않으니까"라고 말했다.
◇ "국가 기밀이요? 미국 얘기죠?"
7일 방송된 JTBC 비정상회담 (사진='비정상회담' 캡처)
초미의 관심사인 '미국 대선 전망'을 다룰 때는 한국 상황이 보다 선명하게 드러났다.
미국 대표 마크는 "우리도 다른 선거 때 함부로 그런 농담하지 않느냐. 좋아하는 사람보다 덜 미운 사람 뽑는다고. 저도 처음으로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며 "힐러리가 이길 가능성이 올라가는 게 사실 사람들이 힐러리를 좋아해서 가는 게 아니다. 힐러리도 기밀 있지 않나. 그걸 개인 서버로 많이 보냈다"고 말했다.
'기밀'이란 말에 MC인 전현무는 짐짓 놀라며 "예, 힐러리요? 미국 얘기죠?"라고 해 웃음을 유발했다. 함께 나온 '착각인가'라는 자막은 의미심장했다. "국가 기밀이라는 걸 알고는 계셨던 거예요?"라는 유세윤 질문 이후, 전현무는 "아니 그런 나라가 있어요? 이게 말이 되는 소리야?"라고 반문했다.
◇ "(측근은) 보통 성씨가 최죠?"
7일 방송된 JTBC 비정상회담 (사진='비정상회담' 캡처)
또한 이날 방송에서는 '여러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대통령의 측근 비리'를 다뤘다. 역시나 한국 상황을 떠올리게 하는 발언들이 쏟아졌다. MC 성시경의 첫 마디부터 범상치 않았다. 성시경은 "(측근들은) 보통 성씨가 최죠?"라고 물은 후, 곧바로 "최측근"이라고 말했다.
미국 대표 마크가 소개한 '낸시 레이건(영부인)의 점성가 의존' 사례는 화룡점정이었다. 전현무는 "예에? 아 그런 일이 있어요?"라고, 성시경은 "점성가라면 무당?"이라고 물었다.
마크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당시, 낸시 레이건이 친구였던 조앤 퀴글리라는 점성가를 항상 불러 조언을 많이 받았다고 설명했다. 레이건 대통령 암살 시도가 있었는데 실패로 돌아간 후, 낸시 레이건은 점성가의 말을 더 철썩같이 믿기 시작했다는 것.
듣고 있던 전현무가 "점성가가 레이건의 정책 결정에 영향을 준 건 아니죠? 어디 갈 때 조심하라 이 정도였죠?"라고 묻자, 마크는 "그렇게 시작(단순 조언)했는데 (백악관) 스태프 인터뷰 읽어보면 큰 결정할 때마다 (점성가가) 껴 있다는 얘기가 있었어요"라고 답했다. 전현무는 "미국이 신정정치를 했네요"라고, 성시경은 "부적 써 달라고 그러죠"라고 해 쐐기를 박았다.
마크는 "나중에는 백악관에 (점성가를) 초대해서 거의 직원으로 됐다. 다른 직원들의 불만이 쇄도했다. 우리나라 중요한 결정할 때에도 이 사람(점성가)이 껴 있어서… 그래서 완전히 논란 됐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낸시 레이건이 점성가에 의존했던 것에 대해 "피해자도 없었고 순수한 의도였다"고 뒤늦게 사과했다고 전했다.
◇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센스 있는 '풍자' 돋보여
7일 방송된 JTBC 비정상회담 (사진='비정상회담' 캡처)
'비정상회담'은 세계 각국 패널들에게 그 나라나 이웃 나라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어떤 생각을 하는 내가 비정상인지'를 토론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날도 '대통령의 조건'이라는 주제 아래에서 다른 나라의 이야기가 자주 언급됐으나, 대통령의 비선실세가 국정을 농단하는 국내 상황을 놓치지 않고 포착해 눈길을 끌었다.
'최악의 지도자와 탄핵' 주제에서는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첫 여성 대통령, '거짓말'에 발목 잡힌 대통령, 지지율이 걷잡을 수 없이 떨어진 대통령 이야기가 나왔다. 덕분에 시청자들은 어렵지 않게 익숙한 한 인물을 떠올릴 수 있었다.
자신의 이메일을 통해 국가 기밀을 유출했다는 것이 드러나 곤경에 처한 사람은 미국 대선 후보인 힐러리였다. 그러나 '국가 기밀 유출'이라는 자막을 보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최순실 씨의 태블릿 PC, 빨간 글씨로 고쳐진 각종 연설문 등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최측근'이라는 말로 눙치긴 했으나 대통령 측근 성씨가 굳이 '최'라고 한 점, 점성가의 말을 듣고 중대한 정책 결정을 해 백악관 내부에서도 논란이 있었던 점, 뒤늦게 사과하면서 '순수한 의도'를 강조한 점은 자꾸만 한국사회의 어떤 면을 들춰내 겹쳐 보이게 했다.
이는 최근 '풍자'의 사례로 소개되고 있는 방송의 패러디에서 한 차원 업그레이드된 결과로 볼 수 있다. 대다수 방송사들은 국정농단 사태를 다루면서, 그 정점에 있는 최순실 씨와 그의 딸 정유라 씨를 탐욕스럽고 얄미운 캐릭터로 만들어 소비하기에만 바빴다. 그래서 헌법 정신을 파괴한 초유의 사태를 신랄하게 꼬집기보다는 흰 셔츠, 선글라스, 명품 신발, 태블릿 PC, 승마복, 말 등 상징적인 이미지를 동원해 '우리가 그 문제를 입에 올렸다'는 데에 그치는 코미디를 보여줬다.
하지만 '비정상회담'은 굳이 '대통령의 조건'이 무엇인지 짚어보면서, 대통령의 측근 비리 사례를 훑고, 대통령이 올바른 정치를 하지 않았을 때 어떤 결과를 맞이하는지 등을 다뤘다.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레 한국 사회를 논하는 제작진의 영리함은 이날 방송에서 빛을 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