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속사정이 궁금하다. 뉴스의 행간을 속 시원히 짚어 줍니다. [Why뉴스]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통해 들을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김현정의>■ 방송 : 권영철의 Why뉴스
■ 채널 : 표준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권영철 CBS 선임기자
'국정농단'은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여 이익이나 권력을 독점하는 것'이 사전적인 의미다. 실제로는 권력의 언저리에서 권력을 좌지우지하면서 인사나 이권 같은데 개입하는 걸 말하는 것이다.
역대 정권마다 비선실세의 '국정농단' 의혹이 제기됐고 사실로 드러났다. 그래서 오늘 [Why뉴스]에서는 "왜 최순실에게서 '장영자-김현철' 냄새가 날까?" 라는 주제로 그 속사정을 알아보고자 한다.
▶ 장영자씨는 전두환 정권 때 '건국이래 최대 금융사기사건'으로 불렸던 사건의 주범이고 김현철씨는 김영삼 정부에서 '황태자' 또는 '소통령'으로 불리던 사람 아니냐?
= 그렇다. 조금 보충 설명을 하자면 '장영자-이철희' 사건으로 불린다. 1982년 5월 터진 사건인데 어음 사기규모가 7111억원에 달했다. 지금의 화폐가치로는 10조원이 넘을 것이라고 한다. 장영자씨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처삼촌(이순자 여사의 삼촌)인 이규광(당시 광업진흥공사 사장)의 처제였다. 이철희는 전직 국회의원이자 중앙정보부 차장이었다.
이 사건으로 철강업계 2위인 일신제강과 도급순위 8위인 공영토건이 부도를 맞았다. 이 사건으로 이규광씨를 비롯한 30여명이 쇠고랑을 찼다. 또 법무부 장관이 두 번 교체되고 집권당 사무총장도 물러났다. 장영자씨가 말한 "경제는 유통"이라는 말과 "나는 권력투쟁의 희생양"이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고 김영상 전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 씨
문민정부의 황태자로 불리던 김현철씨는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신분 덕분이기도 하지만 국정에 깊숙히 개입했다는 의혹이 확산되면서 '소통령'으로도 불렸다. 김영삼 대통령의 호가 '거산(巨山)'이었으니 아들은 '소산(小山)'이고 대통령 다음의 '소통령'으로 불린 것이다.
실제로 장관 등 정부주요 인사에 개입했고 군 인사에도 개입했으며, YTN 사장 인사와 공영방송 사장 선임에도 개입했다는 의혹을 샀다. 또 측근을 통해 지역민방과 종합유선방송, 고속도로 휴게소, PCS사업에도 관여했다는 의혹을 샀다.
심지어 여권의 재집권 전략에도 개입했고 국회의원 선거 공천개입 논란도 일었다. 고교동문들로부터 수십억원을 받았는데 당시 수사에서 드러난 것만 65억여원이었고 처음으로 대선자금 잔여금(대선잔금으로 불림)이 밝혀지기도 했다.
(사진=자료사진)
▶ '장영자-김현철' 사건이 최순실씨와 어떻게 연결된다는 거냐?= 역대정권마다 비선실세 의혹은 있어왔다. 전두환 정권에서 전기환, 전경환 형제가 온갖 이권에 개입한 사실이 드러나 감옥에 갔다. 노태우 정권 시절에는 황태자로 불리던 박철언씨가 김영삼 정부에서는 '대통령이 유일하게 신뢰하는 사람이 아들 현철'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세 아들이 '홍삼트리오'로 불렸고 노무현 정부에서는 형 노건평씨가 '봉하대군'으로 불리며 권력형 비리로 구속됐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에서는 '만사형통' 또는 '영일대군'으로 불리던 대통령의 형 이상득씨가 온갖 이권과 인사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샀고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은 '방통대군'으로 불리며 실세 중의 실세로 권력을 누렸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동생 지만씨와 올케 서향희 변호사에 대해 우려가 컸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권력형 비리의혹은 보이지 않고 있다. 다만 동생 박근령씨가 사기 혐의로 이석수 특별감찰관에 의해 고발돼 검찰수사가 진행 중이다.
그런데 아들이나 형제, 친인척이 아닌 최순실씨가 국정농단의 핵으로 떠오른 것이다. 역대 정권 비선실세들의 '국정농단'이나 '권력형비리'와는 비슷해보이면서도 또 다른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이라는 이름을 언급도 하지 않고 '인신공격'이 심하다며 정치권과 언론 탓을 했지만 '최순실 게이트'는 파면 팔수록 의혹은 커져만 가고 있다. '권력서열 1위는 최순실'이라거나 '문고리 3인방은 생살이고 최순실은 오장육부'라는 말이 있는데 이제는 '국정의 최고책임자'라고 불러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 최순실씨가 대통령의 연설문을 고쳤다는 게 사실일까?= 사실일까? 사실이 아닐 것이다. 정상적인 나라라면 그런 일이 일어 날 수는 없지 않겠나? 아무리 우주의 기운을 빌려오고 혼을 어쩌고 한다지만 이런일이 일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원종 비서실장 (사진=윤창원 기자)
이원종 청와대 비서실장은 국회 국정감사에서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그런 말을 믿을 사람 있겠느냐. 시스템으로 성립 자체가 안된다"면서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얘기"라고 일축하지 않았나?
그렇지만 JTBC가 확보한 연설문을 보면 이런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사실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JTBC가 최순실 씨의 컴퓨터 파일을 입수해서 분석한 결과 최 씨가 대통령 연설문을 그것도 대통령이 연설하기 전에 받아봤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드러난 것만 44건의 연설문이다. JTBC는 일부 연설문은 최순실씨가 고친 흔적이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리고 중요하게 봐야하는 대목이 있는데 지난 7월 10년 넘게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을 만들어왔던 조인근 청와대 연설기록비서관이 사표를 냈다. 조 전 비서관은 "2012년 대선 때부터 연설문과 메시지 작성 업무를 4년 이상 쉬지 않고 했더니 좀 힘들어 쉬려는 것"이라며 "건강도 좋지 않아 의사도 휴식을 권고했다"고 말했다.
조인근 전 비서관 (사진=자료사진)
그러나 조 전 비서관이 그만둔 이유는 건강 때문이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조 전 비서관은 퇴직 직후 곧바로 한국증권금융의 신임 감사로 자리를 옮겼다.
청와대 사정을 잘아는 전직 청와대관계자는 "조 전 비서관이 심혈을 기울여 작성한 연설문이 계속 이상하게 고쳐지는 일이 일어나면서 2년전부터 그만두겠다는 마음을 먹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공식라인이 아닌 누군가가 연설문에 손을 댔다는 얘기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국회 본회의장에서 정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 이게 있을 수 있는 얘기냐?= 가능하지 않은 얘기다. 아니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얘기다. 그동안 역대 정권마다 비선실세의 국정농단 의혹이 불거졌고 일부는 사실로 확인되기도 했지만 대통령의 연설문에 관여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대통령의 연설문은 권력이나 이권이 아니라 국정을 수행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침이다. 그런데 아무런 공직이 없는 최순실씨가 대통령 연설문을 연설하기 전에 받아 봤다는 건 국정에 직접 관여했다는 걸 의미한다.
최순실씨는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에도 아무런 직함이 없었지만 후보 연설문을 받아봤다.
특히 청와대 비서진 교체 내용이 국무회의 자료를 최순실씨에게 전달한 청와대관계자가 문고리 3인방 중 1명이 정호성 제1부속실장으로 확인됐다고 신문들이 보도하고 있어서 최순실씨의 '연설문 검열' 사태는 그냥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실세 중의 실세라는 문고리 3인방이 연설문을 최순실씨에게 보냈다는 건 정말 국기문란사태라는 게 정치권의 반응이다.
(사진=새누리당 하태경 의원 페이스북 캡처)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페이스북에 "최순실은 청와대 비선실세이며 국정을 농단해 왔다는 것이 사실상 입증된 것"이라면서 "단순 검찰 수사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으니 국회는 특검을 발동해서 비선실세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건을 엄정 수사해야 할 것"이라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수사의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우병우 수석도 즉각 사퇴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 '최순실 게이트'의 몸통은 최순실씨라는 게 확인 된거냐?= 최순실씨가 대통령 연설문에까지 관여 했다면 그동안 제기돼온 온갖 의혹들은 사실 아니겠나? 그러니 몸통은 최순실씨라는 얘기가 나온다. 그렇지만 '최순실 게이트'의 핵심은 최순실이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얘기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일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기업인들과 소통하면서 논의 과정을 거쳤다"거나 "작년 2월 문화체육활성화를 위해 기업인들을 모신 자리에서 문화융성과 창조경제의 실현을 통한 우리 경제의 대도약을 위해 기업인들의 문화 체육에 대한 투자 확대를 부탁드린 바 있고"라고 말했다. 청와대가 사실상 두 재단 설립을 주도했다는 걸 시인한 것이다.
육영재단이나 정수장학회, 영남대의 소유자가 누구일까? 모두 공익재단이지만 사실상의 소유주는 박근혜 대통령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자료사진)
그리고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이 설립되면 공익재단이지만 누구의 소유가 될까? 한 중견 법조인은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이 아무런 논란없이 설립되고 활동을 개시했다면 누구의 소유가 될까?"라고 반문했다.
최순실씨가 소유주가 될까? 아니면 박근혜 대통령이 소유주가 될까? 공익재단이라도 정부 소유가 아니면 소유주가 있다. 사립학교들이 학교법인으로 공익법인이지만 소유주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법조인은 "이 두 재단의 소유주가 공직자라면 포괄적 뇌물수수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자료사진)
▶ 이 두 재단은 전두환 정권에서 세워진 일해재단과 많은 부분이 닮았지 않나?= 정말 많은 부분이 닮았다.
일해재단은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3년 '버마 아웅산 폭탄테러 유족을 위한 재단'이라는 명분으로 599억원을 모금해서 세워졌다.
일해재단 모금과 설립 과정을 주도한 것으로 지목된 장세동씨는 청문회에 나와 "강제모금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필요도 없었다. 경제인들 스스로가 상호협의 조정해 결정했다"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과거에도 많은 재단들이 기업의 후원으로 이런 사회적 역할을 해 왔는데 전경련이 나서고 기업들이 이에 동의해 준 것은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재계 주도로 설립된 재단들은 당초 취지에 맞게 해외순방 과정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고, 소위 코리아 프리미엄을 전세계에 퍼뜨리는 성과도 거두었다"고 밝힌 부분과 맥을 같이한다.
그렇지만 일해재단 청문회에 출석한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내라고 하니까 내는 게 마음 편할 것 같아서 냈다…그다음부터는 내기가 힘들어졌으나 그렇다고 안 낼 수도 없었다."면서 모금 과정의 강제성을 시인하는 증언을 했다.
지금도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돈을 낸 기업들이 공개적으로는 말하지 못하지만 비공시적으로는 '할당됐다'거나 '내라니까 냈다'고 말하고 있다. 자발적으로 기금을 내는데 무슨 군사작전을 하듯이 호텔에 모아서 동의서를 작성하고 돈을 내라고 하는 건 청와대 눈치를 봤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아직 박근혜 정부는 1년 넘게 남았다. 이런 상황에서 대기업들이 '청와대의 전화를 받고 재단 설립자금을 냈다'거나 '기업들마다 할당됐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설립과 여기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산 안종범 경제수석(현 정책조정수석)에 대한 사전조사에 들어갔다가 '숙성이 덜 됐다'는 이유로 감찰 착수를 미룬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