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정신질환자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강력 범죄를 막겠다던 경찰이 무능함을 다시 한 번 드러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사제총기로 경찰을 살해한 성병대(46)가 전과 7범으로 경찰의 우범자관리대상인데다 사실상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경찰과 보건당국이 정신질환자 정보를 공유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을 조속히 마련해야한다고 지적했다.
◇ 전문가 "총격살해범, 정신장애 있다"
21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전 서울 강북경찰서에 모습을 드러낸 성 씨는 "생활고로 이사하게 돼 부동산 사장이 누나에게 집을 소개해줬는데, 그 집으로 가면 가스폭발사고로 내가 암살될 수 있었다"며 횡설수설했다.
숨진 고 김창호 경감에 대해서도 "사인에 의문이 있다"며 "그분은 링겔 주사제 치료 과정에서 독살됐을 수 있다"고도 했다.
이해할 수 없는 성 씨의 발언들과 범행행적을 볼 때 전문가들은 정신 장애를 가진 이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분석했다.
이윤호 동국대 범죄심리학교수는 "성 씨의 언행이나 SNS를 보면 사실상 피해망상, 과대망상을 가진 정신분열증세가 보인다"며 "특정집단에 대한 분노와 증오도 있어 정신질환범죄와 증오범죄가 결합된 형태"라고 분석했다.
같은 대학 곽대경 경찰행정학과 교수도 "정신분열의 증세가 보인다"며 "누군가 자신을 음해하려한다는 망상이 강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성 씨는 전과 7범으로 경찰의 우범자관리대상이었다.
경찰의 관리를 받던 성 씨는 경찰에 대한 피해의식도 강했다. 그가 작성한 자신의 SNS에는 경찰이 자신을 미행하고 죽이려한다는 식의 글들이 다수 기록돼 있다.
◇ 정신질환 의심 안했나 못했나
하지만 경찰은 성 씨가 정신 이상 증세를 보여왔지만 이를 전혀 인지 못했다.
경찰관계자는 "성 씨의 SNS계정은 평소 관리 대상이 아니었고 언론보도를 통해 처음 알았다"고 밝혔다.
경찰은 지난 5월, 서울 강남역 인근 화장실에서 정신분열을 앓고 있던 김모(34) 씨가 20대 여성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한 직후 정신질환범죄 대책을 내놨다.
당시 강신명 전 경찰청장은 "현장 경찰관들이 정신질환자들의 위험성을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게 하는 체크리스트를 만들 것"이라며 "보건복지부와 협의를 통해 공격 성향이 높은 정신질환자가 퇴원할 경우 정보를 공유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강 청장이 선언적 대책 발표 3개월 후 임기만료로 제복을 벗은 뒤 구체적인 실행안은 나오지 않았고, 정신질환 의심 범죄가 발생했다.
정신질환자에 의한 범죄 치안이 여전히 허술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대해 경찰은 "강 전 청장이 내놓은 대책은 내년에 개정되는 정신보건법을 기초로 한 것이어서 구체적인 실행안은 법이 개정된 후 나올 것"이라며 "현재는 실행안들에 대한 연구용역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 "정신 이상 치료 시기 놓치지 말아야"
전문가들은 복역기간이 길었던 성 씨에게 복역기간 중 제때 치료가 이루어졌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과거 성 씨는 특수강간 등 전과 7범으로 지난 2000년에는 20대 여성을 성폭행하고 환각물질을 흡입한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집행유예기간 동안 10대 소녀를 성폭행 해 결국 징역 5년을 선고 받아 수감됐고, 복역 기간 중에도 교도소 소속 교사를 폭행해 징역 3년이 추가됐다.
곽 교수는 "(성 씨가) 교도소에서 치료가 안됐다면 오히려 증세가 악화됐을 수 있다"며 "처벌에만 급급해서 수감생활만 한다면 악화돼 이후엔 치료가 더욱 힘들어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 사회에서 조기에 정신적 문제를 진단하고 맞춤치료를 하는 프로그램이 부족하다"며 "정부당국도 정신질환에 대해 조기에 치료하는 대책과 사회적 변화가 있어야한다"고 조언했다.
이윤호 교수 역시 "정신질환 범죄는 공중보건당국 차원에서 접근해야한다"며 "정보 공유를 통한 협력치안의 형태로 가야지 형사사법 형태로만 접근해서는 불가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