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 전 산하기관장이 자신이 사퇴한 배경으로 차은택 감독에 휘둘리던 문체부를 지목했다. 지난 대선 당시 새누리당 캠프에서 핵심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급부상한 최순실 측근인 차 감독의 막강한 위세에 밀려 중도하차했다는 것이다.
◇ "공문도 보내지 않고 임명 요구…비전문가에 맡길 수 없었다"변추석 전 한국관광공사 사장(현 국민대 교수)은 지난 19일 CBS노컷뉴스와 만나 재직 당시 밀라노 엑스포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나가줬으면 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차은택 전시감독을 총감독으로 하자는 문체부 측의 요구를 거절하는 등 강경 행보를 보인 것이 주효했을 것으로 추측했다.
광고계 거물이었던 변 전 사장은 지난 2012년 18대 대선 때 새누리당 홍보본부장을 지내며 박 대통령의 초성인 'ㅂㄱㅎ'로 웃는 얼굴 그림을 도안한 박근혜 정부 출범 1등 공신이다. 그는 임기를 2년 앞두고 사퇴해 문체부와의 불화설이 불거졌었다.
변 전 사장은 "당시 전체적으로 나가라는 분위기가 있었다"며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촉이 그랬다. (차 감독이나 김 장관 등) 자기네들이 마음대로 하고 싶어도 잘 안 되니까 그랬던 것 같다고 미뤄 짐작한다"고 말했다.
특히 변 전 사장은 2014년 말~2015년 초 밀라노 엑스포 추진 태스크포스팀(TF) 실무팀장이 차 감독을 총감독으로 하는 데 대한 의견을 물었던 일을 떠올렸다.
변 전 사장은 지난 2012년 18대 대선 때 새누리당 홍보본부장을 지내며 박 대통령의 초성인 'ㅂㄱㅎ'로 웃는 얼굴 그림을 도안했다. (사진=자료사진)
변 전 사장은 "그 팀장이 문체부 쪽을 만나고 와서는 차 감독에게 총감독을 맡기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슬쩍 물어 공식절차를 밟으라고 하며 돌려보냈다"며 "한 차례 그렇게 말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한 번 물어와 똑같이 답했다"고 밝혔다.
당시 TF는 문체부 직원과 공사 직원 실무진급으로 구성돼 실무팀장은 문체부 측과 자주 만나 회의했다고 한다. 변 전 사장은 "차 감독은 전시감독이었고, 영상전문가이지 행사 총감독감은 아니라고 내가 말했다. 대형행사였고 대통령까지 관심 갖고 있다고 하는데 총감독을 전문가가 아닌 사람에게 시킬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문체부 장관이나 차관 명의로 (차 감독을 총감독시키라는 취지의) 공문이 온 것도 아니어서, 총감독을 시키고자 하면 (공사) 전문위원제도를 활용해 정식 안건으로 올려 논의를 하라고 했었던 것이다. 문체부 쪽에서 얘기가 있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당시 김종덕 장관이 이끌던 문체부가 앞장서서 차 감독을 밀라노 엑스포의 총감독으로 인선시키려 한 것으로 풀이된다. 사실상의 외압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물론 '문화계 황태자'로 불리는 차 감독 관련 의혹이 점점 구체화되는 지금에 와서 볼 때, 당시 문체부 고위관계자들은 전세계 100여개 국이 참가하는 밀라노 엑스포에서 차 감독에게 전시감독보다는 총감독 자리가 어울린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더욱이 차 감독은 현 정부 비선실세로 불리는 최순실씨와 가까운 사이로 알려진 인물이다. 차 감독은 2014년 8월 대통령 소속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됐고, 같은 달 그의 대학 스승 김종덕 장관도 자리에 올랐다. 차 감독의 외삼촌 김상률 숙명여대 교수는 석달 뒤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이 됐다.
◇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으로 포장해 사욕 챙겨" 비판
차은택 씨 (사진=백지연의 피플인사이드 화면 캡처)
변 전 사장은 "차 감독은 전시 관련 업무보고를 3~4차례 받으며 본 게 전부"라며 "나라일은 사명감을 갖고 올곧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어서 함부로 총감독을 시킬 수 없었다"고 말했다.
다만 2014년 11월 김 장관 취임 직후 산업자원부와 국토교통부가 추진하기로 했던 밀라노 엑스포가 문체부와 공사가 가져오고 예산까지 증액된 된 배경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고 일축했다. 그는 "그 문제는 김종덕 장관이나 차 감독이 알겠지, 나도 정말 궁금하다"고 말했다.
예상치 않게 변 전 사장이라는 변수를 맞딱뜨리면서 총감독에 오르지 못한 차 감독은 2015년 4월 변 전 사장 퇴임 이후 '총감독' 직함을 달고 언론 등에 오르내렸다. 그러나 정창수 현 공사 사장은 국정감사에서 "차 감독이 공식임명된 적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차은택 감독을 왜 그렇게까지 총감독을 시키려고 한 것 같냐, 총감독 직함을 달면 얻을 수 있는 무언가가 있었던 거냐'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변 전 사장은 "목적이 다른 이들이 있다"며 눈에 힘을 주었다.
그러면서 "경험상 다른 목적이나 사욕을 위해서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프로젝트는 거의 실패하더라.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을 내걸고 한 사업의 처음 의도를 알고 싶다"며 "크리에이티브 코리아가 그런 데 이용됐다는 게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차 감독은 2015년 1월 '더플레이그라운드', 다음달 '모스코스' 등 두 회사를 김홍탁 대표를 내세워 설립했다. 더플레이그라운드는 설립 3개월 뒤 문체부로부터 입찰 없이 사업권을 따냈다. 차 감독은 4월 3일 창조경제추진단장 겸 문화창조융합본부장이 돼서 미르재단 설립을 위한 준비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진다.
◇ "문화가 융성해야 사회가 발전하는데 지금은 엉망진창"변 전 사장은 문체부의 격변기에 산하기관장을 보낸 시기가 고단했다고 했다. 그는 "뭔가 문제가 있었으니 자주 (장차관이) 바뀐 것 아니겠나"라며 "부처는 정책과 예산을 다루고 예하 기관은 실행을 해야하는데 장관이나 차관이 너무 자주 바뀌어서 이게 말이 되나 싶었다"고 말했다.
대선후보 시절의 박근혜 대통령.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실제 그가 재임한 2014~2015년 문체부는 유진룡 전 장관이 후임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경질됐고, 김희범 1차관도 취임 6개월 만에 사표를 냈다. 당시 문체부의 '인사파행'이 도마에 오르면서 청와대의 내리꽂기, 낙하산 인사 논란이 빚어진 바 있다.
변 전 사장은 인터뷰 말미에 2012년 대선 당시 새누리당 홍보본부장으로 활동하며 현 정권 탄생을 위해 밤을 새워 일하던 기억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대선 과정에서 유명을 달리한 이들, 신체가 불편해진 이들 등 땀과 피를 바치며 승리를 기원했던 정권이기에 최근 불거진 '최순실-차은택' 논란에 휘둘리는 문화계 현실에 안타까워했다.
변 전 사장은 "하필 다른 분야도 아니고 평생을 바친 문화계가 시끄럽다는 게 마음이 아프고 지금 나오고 있는 내용들이 너무나 우습다"며 "문화가 융성하는 사회가 발전된 사회인데 지금 상황은 너무나 엉망진창인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