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김광일 기자)
지난해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뒤 최근 숨진 농민 백남기 씨의 유가족과 시민단체들이 시신을 부검하겠다는 경찰을 비판하고 나섰다.
백남기대책위와 유가족 등은 26일 오후 시신이 안치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폭력 책임자를 처벌하라'고 주장했다.
상복을 입은 백 씨의 장녀 백도라지 씨는 이날 "밤중에 경찰이 부검 영장을 신청했다고 들었다"며 "아버지를 쓰러지게 한 것도 경찰인데 돌아가시고 난 후에도 가족들을 괴롭게 하는 경찰의 행동을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고 성토했다.
그러면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 병원 주변에는 경찰이 진을 치고 있었고 시신을 장례식장으로 옮기는 과정에도 경찰의 방해가 있었다"며 "조용히 추모 시간을 가져야 할 것 같은데 기자회견에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 한탄스럽다"고 덧붙였다.
앞서 병원 측은 전날 백 씨가 급성신부전으로 숨졌다고 공식 판정했고, 경찰은 사인을 명확히 하겠다며 부검 영장을 신청했으나 법원에 의해 기각됐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대책위 측) 소속 의사 전진한 씨는 이에 대해 "엉터리 사망진단서에도 급성 신부전의 원인으로 외상에 의한 뇌출혈(급성 경막하출혈)로 기재돼있다"며 "오랫동안 병원생활 하시면서 질병을 얻게 되셨는데 그걸 사인으로 쓸 수가 있냐"고 일갈했다.
이어 "급성 신부전은 소변이 안 나온다는 건데 사망하기 전에는 원래 다 그렇다"며 "외상에 의해 사망했다는 게 명확한데 부검이 필요하다는 건 의학적으로 전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톨릭농민회 정연찬 의장은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에 맞아 죽은 게 아니라 지병에 의해 죽은 것처럼 뒤집어씌우는 이 행태에 너무 분하다"며 "백 농민을 두 번 죽이는 이들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고 밝혔다.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는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지도부와 일반 시민 등 각계의 조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다만 대책위 측은 책임자 처벌 없이는 장례식은 치르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대책위 측은 이후 전국 각 지역에 시민 분향소를 마련하고 이날부터 매일 오후 7시에 촛불집회를 열고, 다음 달 1일에는 범국민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한편, 백 씨는 지난해 11월 14일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열린 제1차 민중총궐기 투쟁대회에 참석했다가 경찰이 세워놓은 차벽 앞에서 물대포에 맞아 뒤로 넘어졌다.
백 씨는 곧바로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져 뇌수술을 받았지만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사경을 헤매다 317일 만에 끝내 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