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이사를 해서 주민센터에 전입신고를 하려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그런데 직원이 전에 살던 집주인이 인근 모 식당에 외상값을 안 갚고 가서, 그 외상값을 대신 내야 전입신고를 받아주겠다고 한다면?
“이런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일이 노후 경유차 배출가스 저감장치 사업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국정감사 준비가 한창인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장석춘 의원실 관계자가 한탄을 했다.
자동차환경협회가 배출가스 저감장치의 자부담금을 엉뚱한 사람들에게 덮어 씌워왔고, 그것을 환경부가 뒤에서 돕고 있다는 것. 이미 벌써 몇 년째 계속되고 있고, CBS노컷뉴스 보도(관련기사:
배출가스 저감장치 자부담금 덤터기, 언제까지...)를 비롯해 여러 차례 문제점에 대한 지적도 있었지만 여전히 고쳐지지 않고 있다.
◇ 4년째 계속되는 자부담금 덮어씌우기
노후경유차에 부착하는 배출가스 저감장치는 정부와 지자체가 비용의 90%를 보조해주고 10%만 차주가 부담하고 있다. 그런데 장치 제작사들이 자부담 10%도 나중에 폐차할 때 낼 수 있도록 유예 해준 것이 지금에 와서 화근이 되고 있다.
중간에 차가 팔려서 손바뀜이 일어난 경우, 장치를 부착한 사람이 아니라 폐차 시점의 차주가 자부담금을 뒤집어 쓰기 때문이다. 게다가 10만원에서 30만원 선인 자부담금을 안 내면 자동차환경협회가 자동차 말소에 필요한 장치반납 확인증을 발급해주지 않는다.
급하게 차량을 말소하고, 보험을 해지한 뒤 다른 차를 사야 하는 차주들로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자부담금을 덮어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억울한 차주들이 환경부에 민원도 제기해봤지만, 소용없었다.
지난 2013년 4월 당시, 민원을 제기했던 김모씨는 환경부로부터 “계약당시의 차주가 변경되었다 하더라도 차량과 함께 장치를 양도받은 최종소유자에게 자부담금 납부 및 장치 반납과 관련된 법적 의무가 승계된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런데 환경부는 무슨 근거로 자동차환경협회에게 사실상 자부담금을 강제로 징수할 수 있는 권한을 줬을까.
◇ 자부담금 덤터기 근거는 계약서?최근 장석춘 의원실의 서면질의에 대해 환경부는 “의무납부의 법률근거는 장치제작사와 차량소유자 간 계약사항”이라고 답변한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정부가 어떤 법적 근거도 없이 사인간 계약서만을 근거로 협회가 하는 채권 추심을 도와준 셈이다. 더욱이 계약서는 장치 부착 시점의 차주와의 계약서임에도 불구하고, 자부담금 납부 의무를 계약 당사자인 당시 차주가 아닌 폐차 시점의 차주에게 부과하고 있다.
장석춘 의원실 관계자는 “국정감사 자료를 요구하는데도 사인간의 계약서를 의무납부의 근거라고 버젓이 답변하는 환경부의 태도에 황당스러움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자료 자체도 부실해 추가 자료를 요구한 상태지만, 환경부가 자료를 주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자동차환경협회는 지난 2013년부터 올해 4월까지만 적어도 78억원이 넘는 자부담금을 징수했다. 그리고 이같은 환경부의 월권적인 엄호를 받고 있는 자동차환경협회의 협회장과 본부장은 현재 모두 전직 환경부 고위공무원 출신으로 밝혀졌다.
◇ 환경부 엄호 속 78억원 징수한 협회 임원은 모두 '환피아'한편, 환경부 관계자는 장치부착 당시 차주가 아닌 사람에게도 자부담금 납부를 사실상 강제해온 이유에 대해, “(자부담금 납부를 사인간 분쟁으로 놔두게 되면) 결국 법적인 소송으로 가야하는데 시간이나 비용 낭비도 크고 해서 그렇게 한 것”이라는 취지의 답변을 했다.
그러면서, “지난 12일부터 자동차환경협회가 자부담금 조정제도를 운영해, 장치반납 후 20일이 지나면 자부담금을 내지 않아도 무조건 장치반납 확인증을 내 주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대해 한 폐차업계 관계자는 “시일에 맞춰 수출을 해야하는 중고차 수출상은 물론이고, 개인 차주라고 하더라도 폐차를 못하고 보험도 해지를 못한 채 20일을 기다릴 수 있는 경우는 드물 것”이라며 "조정제도도 있으나마나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