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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부아르 소설, '모스크바에서의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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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적 소설에 담긴 1960년 소련, 중년의 부부, 그리고 보부아르

 

보부아르의 자전적 소설 '모스크바에서의 오해' 출간되었다. 이 작품은 1962~1966년 사이 사르트르와 함께 여러 차례 소련을 방문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나이 60을 코앞에 둔 그녀가 겪게 되는 노화와 그에 따른 좌절, 젊은이들에 대한 질투, 오랜 세월 함께한 동반자에 대한 집착과 두려움이 솔직하게 녹아 있다.

50년을 함께한 사르트르와의 애정은 앙드레와 니콜의 끈끈한 관계로, 모스크바에서 만난 통역사 레나 조니나에 대한 질투와 우정은 마샤와의 관계로 생명력을 얻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가 만나는 건 보부아르, 그녀 자신의 삶이다. 소설의 배경이 된 60년대 소련의 모습을 그녀의 시선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 또한 하나의 포인트다.

주인공은 은퇴한 교수와 교사 부부인 앙드레와 니콜. 각자 다른 사람 사이에서 낳은 자식을 하나씩 두고 있는 부부는 1966년, 남편 앙드레의 딸 마샤가 살고 있는 소련으로 여행을 간다. 사회주의에 이상을 품고 있던 앙드레는 삼 년 만에 다시 방문한 소련 사회의 변화 앞에 실망감을 느끼고, 니콜은 젊고 활기찬 마샤를 보며 자신의 ‘늙음’을 느낀다. 둘 사이에 끼어든 마샤의 존재로 인해 니콜의 서운함이 조금씩 쌓여 가고, 마침내 부부 간에 오해가 생겨난다. 니콜은 다툼을 계기로 오랜 세월을 함께하면서 조금씩 변해 온 앙드레와의 관계를 되돌아본다.

한편, 소련 작가연맹은 보부아르 커플이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게 돕고, 레나 조니나라는 통역사도 붙여 주었다. 40세의 똑똑한 여성 레나에게는 마샤라는 이름의 딸이 있었다. 보부아르는 1972년에 펴낸 자서전 『사랑과 여행의 긴 초대』에서 자신이 레나의 강하고 명랑한 성격을 좋아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녀는 레나의 특징 몇 가지를 소설 속 앙드레의 딸 마샤에게 부여하였다.

소설 속에서 부부는 사소한 오해 끝에 다투게 된다. 니콜은 모스크바에 머무는 내내 앙드레와 둘만의 시간을 갖지 못하는 데 대해 불만을 갖는다. 반면 앙드레는 사랑하는 두 여인, 니콜과 마샤와 함께 있는 기쁨에 취해 니콜의 기분을 알아채지 못한다. 불만이 쌓여 가던 니콜은 앙드레와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데, 그녀의 회고를 통해 복기되는 두 사람의 모습은 세월의 길이만큼이나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이 역시 자연스럽게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관계를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다.

보부아르는 늙어가는 중년 여성의 절망을 적나라하게 그린다. 니콜은 잘생긴 청년을 기꺼이 수컷으로 바라보는 한편, 청년이 자신을 여성으로 보지 않음에 또한 기꺼이 좌절한다. 지식인 특유의, 노화를 초월한 듯한 위선적 태도는 찾아볼 수 없다. 니콜은 마샤의 젊음을 부러워하고 앙드레와 마샤의 관계를 질투한다. 예전처럼 오래 걷지 못한다는 사실에 짜증을 내거나, 다이어트 때문에 쿠키 하나 마음껏 먹지 못하는 60세 여성의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씁쓸하게 묘사되어 있다.

부부의 오해와 다툼은 사실 상대방의 딸, 아들에 대한 질투에서 촉발된다. 앙드레는 니콜의 아들 필리프를, 니콜은 앙드레의 딸 마샤를 경계한다. 각자의 자녀들이 ‘잃어버린 젊음을 가진 이성’이라는 점에서, 작가의 이러한 상황 설정은 인간의 복잡미묘한 감정을 꿰뚫어 보는 장치가 된다.

1960년대에 들어서며 소련은 자본주의 진영과의 평화 공존을 추구하는 이른바 ‘수정주의’ 노선을 확실히 한다. 군비 부담을 줄이고 경제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였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입장과 의견이 있었는데, 보부아르는 앙드레와 사위 유리, 딸 마샤의 대화를 통해 당시의 분위기를 기록하고 있다.

책 속으로

니콜이 웃으며 말했다. “난 결심하지 않고도 당신을 사랑했어.”
“그땐 내가 젊었잖아.”
“지금도 늙진 않았어.”
앙드레는 반박하지 않았다. 니콜은 그의 나이를 의식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도 자기 나이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치욕스러운 일을 겪을 때면 자주 나이 생각을 했다. 오랫동안 그는 스스로를 어른으로 여기기를 거부했다 ?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잘못된 신념과 경솔한 태도를 갖고 있었다. 그 교수는, 그 가장(家長)은, 그 오십 대 남자는 진짜 그가 아니었다. 그리고 인생이 그의 눈앞에서 다시 닫혔다. 과거도, 미래도 더 이상 그에게 변명거리를 제공하지 않았다. 그는 육십 대 남자였다. 이룬 일이 아무것도 없는 은퇴한 노인이었다. 다른 일들 만큼이나 명백한 사실이었다. 그를 스쳐갔던 후회들도 이미 흩어져버렸다. 소르본 대학 교수, 저명한 역사학자, 그는 이런 운명의 무게를 지니게 되리라. 그리고 그 운명은 가벼워지지 않으리라. 추문은 정의된 채로, 만들어진 채로, 멈춘 채로 남는 법이다. 덧없는 순간들이 덧붙고, 은폐물이 생겨 덫을 놓기 때문이다. (본문 35쪽)

모스크바는 조금 변했다. 오히려 흉해졌다(그곳의 변화가 사람에게나 장소에나 거의 좋지 않은 방향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유감이었다). 넓은 도로를 개통하고 옛 구역들을 철거했다. 차량 통행을 금한 붉은 광장은 더 광대하고 장중해 보였다. 신성한 장소. 안타까운 점은, 예전에는 붉은 광장이 막힌 데 없이 뻗어 하늘과 맞닿았던 반면, 지금은 성 바실리 교회 뒤에 들어선 거대한 건축물이 지평선을 막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니콜은 크렘린의 교회들과 그곳의 성상(聖像)들, 박물관의 성상들을 기쁜 마음으로 다시 보았다. (본문 38쪽)

거울 속에서, 사진에서, 그녀의 모습이 시들어 보였다. 그러나 그녀는 아직도 앙드레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남자인 친구들과 수다를 떨 때, 자신이 여자임을 느꼈다. 그런데 앙드레가 너무나 잘생긴 낯모르는 청년을 데리고 왔다. 청년은 별생각 없이 예의 바른 태도로 그녀와 악수했고, 그 순간 뭔가가 뒤집혔다. 그녀에게 청년은 젊고 매력적인 수컷이었지만, 청년에게 그녀는 여든 살 늙은이만큼이나 무성의 존재였다. 그녀는 자신을 보던 청년의 눈길을 잊지 못했다. 그 일 이후 그녀는 자기 육체와의 일치를 단념했다. 그것은 낯선 허물, 딱한 변장이었다. (본문 70쪽)

앙드레가 콧노래로 왈츠음악을 흥얼거리며 마샤의 허리를 잡고 빙글빙글 돌렸다. 앙드레가 다른 여자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니 이상했다. 눈과 턱의 생김새가 닮았음에도, 니콜은 이따금 마샤가 앙드레의 딸이라는 사실을 잊었다. 앙드레는 젊은 시절 니콜에게 건넸던 달콤한 말과 미소로 마샤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그들 부부는 서로에게 우정 어린 거친 말투를 조금씩 사용했고, 서로를 향한 몸짓도 많이 무뚝뚝해졌다. 누구의 잘못일까? (본문 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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