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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혜옹주'는 조선 민중에게 아이돌 같았던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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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덕혜옹주' 스틸컷(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조선 민중들의 아이돌 같은 존재였던 덕혜옹주가 비록 힘든 삶을 살았지만, 끝까지 그녀를 지키고 소중히 여겼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가 위안이 됐으면 한다."

3일 개봉하는 영화 '덕혜옹주'로 4년 만에 복귀전을 치르는 허진호 감독이 지난 1일 열린 관객과의 대화 현장에서 전한 말이다.

전작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 등으로 섬세한 감수성을 선보였던 허진호 감독이 연출한 '덕혜옹주'는 동명 베스트셀러 소설로 널리 알려진데다, 배우 손예진과 박해일이 주연을 맡았다는 점에서 기대작으로 꼽혀 왔다.

고종황제가 환갑을 맞은 1912년 5월, 일제에 주권을 잃어버린 조선의 덕수궁에서 여자 아이 울음 소리가 들렸다. 이 아이가 바로 고종이 뒤늦게 양귀인으로부터 얻은 고명 딸 덕혜옹주다.

고종은 그녀를 위해 덕수궁 준명당에 다른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도록 유치원을 만들었고, 심지어는 덕수궁 내 처소인 함녕전으로 덕혜옹주를 데려가기도 했다. 이렇듯 덕혜옹주는 쓸쓸한 말년을 보내던 고종황제에게 한 줄기 삶의 낙이 됐고, 그녀는 잠시나마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1919년 고종황제 승하 뒤 그녀의 운명은 완전히 뒤바뀐다. 조선 황실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노력했던 일제는 그녀를 강제로 일본에 유학 보냈고, 1931년에는 일본의 백작인 소 다케유키와의 정략 결혼까지 시켰다.

◇ 손예진 "깊은 울림 오래 간직해주셨으면 하는 바람"

영화 '덕혜옹주' 스틸컷(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이후 덕혜옹주는 조현병에 걸려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남편과는 합의 이혼했으며, 딸 정혜를 잃었다. 그녀는 1945년 해방 이후에는 고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했으나 왕조가 부활하는 것을 두려워했던 이승만 정부에 막혀 입국하지 못했다. 결국 그녀가 다시 대한민국의 땅을 밟은 것은 1962년으로, 이후 낙선재로 거처를 옮겨 살다가 1989년 생을 마감한다.

동명 원작 소설은 덕혜옹주의 일대기를 다루며 결혼 생활의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반면 영화에서는 일본에서 있었던 독립군들의 왕족 상해 망명 시도 등 소설에 등장하지 않는 영화적 사건들을 가미해 재미를 더했다.

영화에서 주인공 덕혜옹주는 손예진이 연기했다. 허 감독은 이날 관객과의 대화에서 "손예진 씨에게 시나리오를 보내고 많이 긴장했다."며 "보통 감독이 배우를 선택한다고 생각하시지만, 사실은 배우가 감독을 선택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에 손예진은 "시나리오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며 "허진호 감독이 연출하는 '덕혜옹주'라는 것 자체에 대한 기대가 컸다"고 화답했다. 이어 "영화 관람 후 전해지는 깊은 울림을 굉장히 오래 간직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박해일은 극중 덕혜옹주를 지키는 독립운동가 김장한 역을 맡았다. 그는 "장한 캐릭터는 실존인물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했다"며 "서사를 이끌고 가는 캐릭터여서 더더욱 노력을 많이 기울였다"고 말했다.

허진호 감독은 "비운의 인물이 살아간 삶이고, 덕혜옹주와 그녀가 살아간 시대에 대한 고증이 굉장히 중요한 작품이었다"며 "원작 자체가 워낙 섬세한 작품이기 때문에 그 감정선을 해치고 싶지 않았다. 영화적인 스토리 라인과의 조화를 위해 많이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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