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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상륙작전' 왜곡 논란 불 보듯…미화·단순화 덫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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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관계 확인…"맥아더 '평화주의자가 나라 망친다'던 철저한 현실주의자"

 

27일 개봉한 영화 '인천상륙작전'(감독 이재한)이 왜곡 논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 상반된 평가를 받는 논란의 인물을 적극적으로 미화하고,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의 역사성을 무시한 채 사건을 선악 구도로 단순화시킨 까닭이다.

한국전쟁의 전세를 역전시킨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는 과정을 그린 이 영화의 결과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 만큼 역사적 사건에 뛰어든 실존·허구의 인물들을 통해 그 과정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그려내느냐에 성패가 달렸다. 하지만 영화는 미화와 단순화의 덫에 걸린 나머지 복잡다단한 사건의 섬세한 결을 살려내지 못했다. 그 중심에 사실에 대한 왜곡이 있다.

영화 '인천상륙작전'에는 당시 작전을 이끈 실존인물인 연합군 최고사령관 더글라스 맥아더(1880~1964)가 비중 있게 등장한다. 할리우드 유명 배우 리암 니슨이 연기한 극중 맥아더는 '휴머니스트'에 가깝게 그려졌다.

지난 13일 열린 내한 기자회견에서 리암 니슨조차 "전설적인 카리스마를 지녔지만 대립과 충돌을 일으킨 인물"이라고 할 만큼 맥아더에 대한 평가는 다면적이다. 하지만 정작 영화 속 맥아더는 아군이 전멸한 진지에 홀로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싸울 테니 "총과 실탄을 달라"는 소년병에게 감동해, 작전을 두고 미국 대통령과도 척을 지는 인간미로 무장하고 있다.

역사·군사학 등 관계 전문가들에 따르면 "승리 외에는 대안이 없다"(There's no substitute for the victory)는 맥아더의 말에서 전쟁에 임하던 그의 입장을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전쟁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시작했으면 군인으로서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전쟁 당시 맥아더는 압록강·두만강 지역의 중국 쪽 병참선(전쟁 물자를 보급·수송하는 도로, 철도, 수로, 항로 등)을 폭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중국 본토도 폭격을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었다. 하지만 트루먼 대통령 등 미국 워싱턴 당국은 제3차 세계대전으로 확전될 것이라는 위험성을 염두에 두고 이를 막았다. 이에 대해 맥아더는 전선에서 한쪽 팔이 묶인 채 싸운다는 한탄을 자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영화에서 맥아더가 휴머니즘을 지닌 인물로 그려진 것은 과장된 표현이다. 그는 오히려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평화주의자'라고 공공연하게 말할 정도였다.

한국전쟁을 연구하는 한 역사학자는 "1930년대 맥아더가 참모총장 자리에 오르는데, 당시 군대·군비가 축소되는 걸 보면서 '평화주의자들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얘기할 정도였다"며 "결국 1942년 일본의 하와이 진주만 공습 이후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본격적으로 참전하면서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에 대비하라'는 현실주의자 맥아더가 빛을 보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 영화에서 미군 측 인사들이 맥아더에게 '인천상륙작전을 강행하는 것이 대통령 선거 출마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고 지적하는 장면에 대해서는 "맥아더는 이미 한국전쟁 전인 1944년과 48년 대선에 나가려 했는데, 공화당 예비선거에서 큰 표 차로 진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나이도 70대이고 미 대선과는 전혀 상관이 없을 시기"라고 일축했다.

◇ "전쟁은 단순히 이분법으로 볼 수 있는 차원의 것 아냐"

영화 '인천상륙작전' 스틸컷(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인천상륙작전'은 상륙작전에 앞서 이뤄진 대북 첩보작전을 주로 다룬다. 북한군으로 위장 잠입한 해군 첩보부대 대위 장학수(이정재)가 이 첩보작전을 이끄는 수장이며, 이들을 돕는 켈로부대(한국인으로 구성된 연합군 소속의 스파이 부대)가 등장한다.

영화에서는 선명하게 드러나 있는 첩보작전의 면면은, 현실에서는 당시 작전에 참가했던 이들의 증언이 서로 엇갈리면서 여전히 논란을 낳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 관계 전문가는 "인천상륙작전을 위해 영흥도에서 미리 준비했던 한국 해군의 작전이 'X-레이' 작전이고, 팔미도의 등대에 불을 밝힌 것은 미 해군 첩보대 작전이었다"며 "팔미도 작전에 참여한 한국인이 몇 명 있는데, 그들의 증언이 서로 달라서 말하기 조심스럽다"고 전했다.

이어 "실제로 당시 고트부대라는 첩보국의 대장인 최규봉이라는 인물이 있는데, 그는 회고록을 통해 자신이 첩보작전을 주도해 성공했고 맥아더 사령관이 탄 기함에 올라 악수도 했다고 쓰고 있다"며 "하지만 인천상륙작전 당시 팔미도 등대에 불을 켠 미 해군 첩보대원 유진 클라크라는 인물의 사후 유고집이 2002년 즈음 나왔는데, 여기에는 최규봉이라는 이름이 안 나온다"고 덧붙였다.

극중 인천상륙작전 성공 뒤 인천시민들이 연합군을 환영하는 시가행진 장면 역시 고증이 아쉬운 부분이다. 당시 연합군이 261척의 배를 이끌고 7만 5000여 병력을 상륙시키기 위해 월미도부터 융단폭격을 가한 상황에서, 이는 불가능한 장면이라는 것이 관계 전문가의 견해다.

그는 "당시 사진이나 기록에서는 (인천시가지에서 연합군을 환영하는 인파를) 보지 못했다"며 "서울 지역에 미 해병 1사단의 탱크가 들어왔을 때 주민들이 박수를 치고 하는 장면은 있지만, 인천시가지는 제가 볼 때 거의 불가능하다. 상당히 과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 영화는 미국과 소련의 냉전체제 안에서 양 진영의 첨예한 대치가 폭발한 격인 한국전쟁이 지닌 역사성을 철저히 외면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상영시간 내내 강조되는, 연합군과 국군은 '선'으로 북한군은 '악'으로 단순하게 규정한 이분법적인 역사인식 탓이다.

한 역사학자는 "한국전쟁을 평가할 때 남북한의 전쟁에서 국제전으로 전환된 전쟁이라고들 말한다. 미국의 유명한 한국전쟁 전문가 윌리엄 스툭은 '한국전쟁이야말로 제3차 세계대전을 막아낸 전쟁'이라고까지 평가한다"며 "가장 극심한 냉전기에 벌어진 한국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양할 수는 있지만, 전쟁은 단순히 이분법적으로 볼 수 있는 차원의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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