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 로비 의혹에 연루된 홍만표 변호사가 지난 5월 27일 오전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박종민기자
대한변호사협회(하창우 회장)가 검사장 출신 홍만표(57·구속기소) 변호사의 '몰래 변론' 혐의에 대한 징계 신청을 기각한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이 사건 의뢰인들의 동의를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대한변협 측에 관련 자료를 넘기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면서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이 일 전망이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한변협은 조사위원회 조사를 거쳐 지난달 11일 홍 변호사가 선임계를 내지 않고 62건을 몰래 변론한 혐의에 대해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기각 결정을 내렸다.
앞서 지난 6월 20일 정운호(51·구속기소)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전방위 로비 의혹에 연루돼 검찰 수사를 받은 홍 변호사는 변호사법 위반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포탈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홍 변호사는 정식 선임계를 내지 않고 현재현 전 동양그룹 회장과 강덕수 전 STX 회장의 사건 등 62건을 몰래 변론한 것으로 드러났다.
몰래 변론은 변호사가 사건을 수임할 때 소속 지방변호사회에 신고하지 않고 말 그대로 몰래 변론하는 것을 뜻한다.
기록에 남지 않기 때문에 전관 출신 변호사들이 자신들의 전관 시절 인맥을 동원해 사건 담당 판사·검사에게 부적절하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통로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아왔다.
선임계를 내지 않으면 변호사법상 과태료 2000만원 이하 징계 처분을 받을 뿐더러 전화 등을 통해 부정한 청탁을 하면 처벌을 받지만, 음지에서 은밀하게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 좀체 드러나는 법이 없다.
검찰은 홍 변호사가 지난해 8월 정 전 대표의 상습도박 사건을 맡으면서 당시 최윤수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와 만나거나 전화 통화한 사실을 확인했지만, 62건의 몰래 변론과 관련해서는 홍 변호사가 접촉했던 수사 라인을 공개하지 않았다.
검찰은 또 대한변협에 홍 변호사에 대한 징계개시를 신청하면서도 정작 홍 변호사가 몰래 변론했던 사건들의 구체적인 세부 목록은 넘기지 않았다.
검찰은 홍 변호사가 몰래 변론 등을 통해 벌어들인 수임료 34억여원을 신고하지 않아 15억여원을 탈세했다는 내용 등이 담긴 공소장만 대한변협에 제출했다. 공소장에는 62건의 몰래 변론 내용은 빠져있다.
이에 대한변협은 같은 달 30일 서울중앙지검에 공문을 보내 홍 변호사가 5년 간 선임계를 내지 않고 맡았던 사건 목록을 지난달 초까지 보내달라고 요구했지만,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대한변협 관계자는 "변호사법 위반 사항인 몰래 변론을 징계하기 위해 검찰에 자료를 요청했지만, 회신을 받지 못해 증거 불충분으로 기각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홍 변호사에게 사건을 맡긴) 의뢰인 본인들이 원치 않는다는 입장을 전해와 대한변협 측에 (구체적인 사건 목록을 넘길 수 없다는) 입장을 회신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수사기관인 검찰이 불법이 명백한 몰래 변론 사건 당사자들의 동의를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관련 자료를 넘기지 않은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법조계에서는 몰래 변론 62건은 사상 초유의 '역대급 몰래 변론' 사례인 만큼 단순히 과태료를 부과할 것이 아니라 변호사 제명까지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또 대한변협이 세부 목록을 넘겨받지 못했더라도 재량권을 발휘해 홍 변호사의 몰래 변론 행위를 징계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편, 대한변협은 서울중앙지검이 징계개시를 신청한 연고관계 선전금지(변호사법 위반) 등의 혐의에 대해서는 징계위원회에 징계개시를 청구했다.
아울러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징계개시를 신청한 2013년분 수임건수·수임액 보고의무 위반(변호사법 및 회칙 위반)에 대해서도 징계 절차에 착수했다.
대한변협은 홍 변호사로부터 제출 받은 경위서 내용을 검토한 뒤 지난달 11일 징계개시를 청구하면서 이 두 사건을 병합했다. 징계위는 이르면 이달 중으로 홍 변호사에 대한 징계 수위를 결정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