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행' 본 '좀비통' 소설가 "무너지다, 사람과 좀비의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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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인터뷰] 작가 정명섭 "한국 좀비영화 교과서 될 작품"

영화 '부산행' 스틸컷(사진=NEW 제공)

 

소설가 정명섭(44)은 영화 '부산행'을 두 번 봤다고 했다. 앞으로 몇 차례 더 볼 예정이라고 한다.

좀비를 다룬 소설 '폐쇄구역 서울'(2012), '좀비 제너레이션'(2013) 등을 통해 일찍이 '좀비통'으로 이름난 그는 25일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영화 '부산행'은 한국 좀비영화의 교과서가 될 작품"이라고 평했다.

"이 영화를 만드는 데 든 제작비 100억 정도는 사실 (좀비가 등장하는) 미국 드라마 '워킹데드'의 한 회분 제작비에 불과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 퀄리티를 뽑아냈다는 점에서 '앞으로 한국에서 좀비 영화를 만들 때 '이렇게 해야 한다'는 가장 모범적인 교과서가 나왔다고 봅니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아는 좀비는 1970년대 조지 로메로 감독의 '좀비 3부작'을 통해 처음 등장했다. 이에 앞서 알려진, 아이티 섬의 전설에 등장하는 좀비는 '괴물'이라기보다는 '노예'에 가깝다는 것이다.

"아이티 섬의 좀비는 (죽은 것 같이 된) 가사 상태에 빠진, 먹지도 자지도 않는 사람을 깨워 노예로 부리는 식이었어요. 이게 미국으로 유입된 뒤 조지 로메로 감독을 통해 사람을 공격하고 먹는 괴물로 변한 겁니다. 이러한 좀비가 영화 등 매스미디어를 통해 폭넓게 전파되면서 좀비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집어넣기 시작했죠."

"반 세기도 안 된 짧은 역사 덕에 좀비는, 늑대인간이나 뱀파이어와 달리 여전히 수많은 변형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정명섭의 설명이다.

"늑대인간은 죽었다 깨어나도 은탄환에 맞으면 죽어야 해요. 뱀파이어도 햇빛에 노출 되면 안 된다는 대전제가 있잖아요. 하지만 좀비는 이러한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운 측면이 있어요. '부산행'에서처럼 좀비들이 뛰어다니기 시작한 것도 최근이에요. 영화 '28일 후'(2003)부터였죠. 좀비의 경우 여러 가지로 변환이 가능한 셈이죠. 이런 점에서 좀비에 대한 유일한 정의는 '정의가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늑대인간, 뱀파이어, 미이라 같은 대표적인 괴물들은 그 역사가 깊은 만큼 어떻게 시작됐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명확해요."

"좀비의 경우 짧은 역사 덕에 다른 괴물에서는 할 수 없는 여러 변환이나 창작이 가능했는데, 좀비물이 빠르게 전파될 수 있던 데는 이러한 점이 큰 도움을 줬다"는 것이다.

영화 '부산행' 스틸컷(사진=NEW 제공)

 

그는 좀비 영화의 최대 난제로 '무대'를 꼽았다. "이 점에서 '부산행'을 연출한 연상호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의 좀비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좀비 영화의 배경을 너무 넓게 잡으면 제작비, 인원 동원 등의 문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잖아요. '부산행'은 달리는 열차라는 한정된 공간을 주요 공간으로 잡은 덕에 이러한 문제로부터 빠져나오면서도 밀도 있는 긴장감을 줍니다."

결국 "좀비물의 최대 장점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인데, '부산행'은 한국 사람들이 겪는 여러 문제들을 은유적으로 잘 나타낸 경우"라는 것이 정명섭의 평가다.

"'한국형'이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부산행'에는 붙여도 무방할 것 같아요. 좀비라는 존재도 결국 그 나라의 사회상에 맞춰서 변형될 수밖에 없어요. 미국의 같은 경우 항상 총이 등장하고 인적이 드문 곳을 무대로 쓰는 이유겠죠. 우리나라의 경우 좁은 땅에 도시화가 폭넓게 진행돼 있고 인구 밀도가 높으니 미국식의 내용을 내보내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어요. '부산행'은 도시, 그것도 달리는 열차로 무대를 제한하고 제한된 시간 안에 목적지까지 가야 한다는 장르 영화·소설의 클리셰를 적절하게 잘 결합시킨 결과물로 다가옵니다."

◇ 너무 많은 정보에 반응조차 못하고 너무 쉽게 분노하는 우리…인간의 좀비화"

정명섭은 부산행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영화에 등장하는 두 할머니가 아비규환 속에서 헤어졌다가 중반 이후 재회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담은 신을 꼽았다. "그 순간 사람과 좀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모습을 목격했다"는 것이다.

"극 초반 '좀비들은 열차칸의 문을 열지 못한다'는 전제가 달려요. 이를 통해 좀비와 인간의 경계선을 설정해 두는 거죠. 열차칸이라는 한정된 공간이기는 하지만, 이쪽은 인간, 저쪽은 좀비라는 식으로요. 그런데 영화가 진행되면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이기적으로 변해가요. 생존자들 사이에서도 분열이 일어나죠. 많은 관객들이 여기서 '금수저 흙수저' '갑질'을 떠올리는데, 저는 '인간의 좀비화'를 봤습니다. 그 절정에 달한 순간, 헤어졌던 할머니를 만난 또 다른 할머니의 선택은 인간과 좀비의 경계가 사라졌다는 걸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다가왔어요."

소설가 정명섭. 그는 "매일 너무 많은 정보를 접하다보니 이에 반응조차 할 수 없고, 너무 쉽게 분노하고, 너무 쉽게 기울어져 버리는 우리네 일상 안에서 인간의 좀비화를 보게 된다"고 강조했다. (사진=소설가 정명섭 제공)

 

좀비의 상징성 때문일까. '부산행'과 같은 좀비물이 현실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강렬하다. 이는 좀비라는 존재의 특성에서 기인한다는 것이 정명섭의 견해다.

"따져보면 좀비의 능력은 늑대인간, 뱀파이어 등보다 훨씬 약해요. 이성이 없는 좀비를 상대로 인간이 일 대 일로 싸우면 경험치와 적절한 무기만으로 이길 확룔이 높겠죠. 그런데 좀비는 무시무시한 전염성을 바탕으로 빠르게 전파됩니다. 이러한 전염성이 공격성과 만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 거죠. 이 점에서 좀비는 주로 비판 없이 무분별하게 매스미디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 특정 이데올로기에 경도된 군중, 현대 소비사회에 익숙해진 대중을 상징하는 식으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합니다."

그 역시 이러한 좀비의 다양한 상징에 끌려 좀비물에 끌렸고 소설까지 냈다.

"부산행은 분명히 현대 대한민국 사회를 풍자하고 싶었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담아냈어요. 저 역시 지난날 행정수도 이전 사태를 보면서 '서울특별시민'이라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자부심을 깨고 싶은 마음에서 소설 '폐쇄구역 서울'을 썼죠. 저는 사람들이 점점 좀비를 닮아간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사회 문제를 좀비와 엮는 데 굉장한 흥미를 느낍니다."

정명섭은 스스로를 '자발적 이탈자'라고 불렀다. "작가로 전업하면서 경쟁 사회에서 빠져 나온 뒤 관찰자가 돼 버렸다"는 말이다.

"경쟁이라는 게 당사자들에게는 피말리는 일이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제게는 '왜 대다수 사람들은 이 경쟁에 휘말려 피해자가 돼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지점이 있어요. 이러한 모습을 접하면서 좀비를 떠올리게 될 때가 많죠. '우리가 이렇게 살기 위해 태어난 것은 아닐 텐데'라는 안타까움과 함께요. 우리가 그렇게 되도록 몰아가는 시스템, 매일 너무 많은 정보를 접하다보니 이에 반응조차 할 수 없고, 너무 쉽게 분노하고, 너무 쉽게 기울어져 버리는 게 우리네 일상이잖아요. 좀비들 역시 자신이 원해서 좀비가 되지는 않아요. 자기도 모르게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순간, 좀비라는 존재와 맞닥뜨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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