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자료사진)
지난 14일, 가정폭력 혐의로 두 차례나 구속영장이 신청됐지만 기각된 60대 남성이 결국 아내를 살해하고 자신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해당 사건은 폭행에도 불구하고 가정 유지가 중요하다고 판단했던 법체계와 이 부부가 처한 사회적 고립으로 인해 발생한 비극이었다.
◇ 처벌 원치 않았던 아내, 강제할 수 없는 법서울 관악경찰서에 따르면 송모(62) 씨는 지난 14일, 관악구 소재의 자택에서 아내 A(58) 씨를 약물로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경찰은 이전에도 지난 3월과 5월, 두 차례나 송 씨의 폭행 사건을 접수해 송 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송 씨가 반성의 기미를 보였고, 무엇보다 A 씨가 송 씨가 처벌받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당시 법원은 송 씨 부부가 '회복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가정폭력 사건과 관련, 이같이 가정의 '회복'에 방점을 둔 판단 기준은 비단 구속 여부뿐 아니라 현장 조치에도 해당된다.
사건이 일어났을 때 경찰이 현장에서 취할 수 있는 건 긴급임시조치. 격리·100m 이내 접근금지 등이 이에 해당한다. 48시간의 효력을 가진다.
48시간이 지난 후에도 격리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법원에 임시조치 결정을 받아야 하고, 법원은 범행 재발 가능성·가정의 회복 가능성 등을 고려해 임시조치 결정을 내린다.
이때에도 법원의 판단은 '가정 보호의 원칙'에 따른다는 게 경찰 관계자의 설명이다.
가정폭력에 관한 법감정은 '가해자 처벌'보다는 '가정 유지'에 방점이 찍혀있다는 것.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가정폭력처벌법) 제 1조는 "가정폭력범죄를 범한 사람에 대해 환경의 조정과 교정을 위한 보호처분"을 내려 결과적으로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고 건강한 가정을 가꾸도록" 하는 게 법의 '목적'이자 '취지'임을 밝히고 있다.
그렇다 보니 가해자에 대한 피해자의 처벌 의지가 중요한 판단 요소가 된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면 가정 회복이 가능하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가해자가 긴급임시조치를 위반한다 하더라도 3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될 뿐 그 이상의 제재는 없다.
가정 유지가 중요하다고 보는 현재의 법 테두리 안에서, 아내의 '처벌불원'의사는 중요하게 다뤄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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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저히 고립된 이들의 비극…아내는 왜 남편을 감쌌나A 씨에게는 송 씨밖에 없었다. A 씨가 송 씨에게 심한 폭행을 당하면서도 '처벌불원' 의사를 밝히며 송 씨를 감쌌던 이유다.
A 씨는 전 남편과 이혼하고 송 씨와 재혼했다. 20여년을 송 씨와 살았다. 슬하에 자녀가 있었지만 전혀 왕래가 없었다. A 씨에게는 송 씨가 유일했다.
경찰 관계자는 A 씨와 송 씨 모두 '사회적으로 상당히 고립된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A 씨와 송 씨 모두 이렇다 할 직업도, 벌이도 없었다. 사회적으로는 물론 경제적으로도 고립된 부부였다.
송 씨 부부는 이들을 찾는 사람도, 이들이 찾은 사람도 없었다. 이웃, 지인, 친구, 심지어는 자식들까지 이들과 왕래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기에 폭력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아줄 사람도, 바로잡을 기회도 가지지 못했다.
"우리 남편은 잘못한 게 없어요. 우리 남편은 좋은 사람이에요. 내가 맞을만 해서 맞은 거예요."
A 씨의 변치 않는 태도였다. 이마저도 수차례의 심리 상담 후에 받은 진술이었다. 처음 사건 때는 "맞은 적이 없다"며 송 씨의 폭행 사실 자체를 부인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아내를 때리는 게 뭐 그리 대수인가요." 송 씨의 태도도 일관됐다. 송 씨의 생각이 잘못됐다고 말해줄 사람은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내는 맞으면서도 잘못된 건지 몰랐고, 남편은 때리면서도 잘못된 건지 몰랐다. 수렁에 깊이 빠질 뿐이었다. 송 씨 부부는 둘만의 세상에 갇힌 채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