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안 협상을 앞둔 지난 5월 말.
대전 서구의 한 아파트 입주민들은 외출 도중 경비실 창문 아래에 놓인 작은 상자 앞에서 투표를 했다.
경비실 안에 있는 경비원이 빤히 보이는 곳에서 진행된 이 투표는 바로 그들의 감원 찬반을 묻기 위한 것이었다.
며칠 뒤 이 아파트 경비원의 손에는 '경비비 절감에 따른 경비원 감원 찬·반 동의결과'라는 제목의 A4 한 장짜리 공고문이 전달됐다.
경비원들에게 직접 게시하게 한 이 공고문에는 '전체세대 788세대, 참여세대 646세대, 찬성세대 335세대(51.85%)'라고 적혀 있었다.
'감원에 찬성한다'는 사실상의 해고 통지를 경비원에게 직접 건네며 아파트 각 라인 입구 게시판에 직접 붙이도록 한 것이다.
8일 이 아파트 단지에서 만난 한 주민은 "경비 아저씨가 게시물을 붙이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며 "나중에 다시 보니 감원 동의결과 공고문이어서, 인간적으로 너무 한것이 아닌가 싶었다"고 말했다.
경비실 바로 앞에서 투표한 것도 모자라 찬성 결정 공고문을 직접 붙이게까지 한 상황에 대해 경비원들은 '모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한 경비원은 "다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것 같다"며 "나이는 좀 들었어도 아직 힘이 있는데, 미래가 불투명해졌다고 생각하니 막막한 느낌"이라고 했다.
주민투표 결과에 따라 이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경비원 26명 전원으로부터 사표를 받고 있다.
관리사무소 측은 올해 10월까지 경비원 26명을 해고하고, 12∼13명을 다시 채용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비원이 절반으로 줄면 경비원 1명이 2개 동을 관리해야 한다.
한 사람이 여름 휴가라도 가면 1명이 4개 동을 살펴야 하는 상황도 벌어질 수 있다.
이 아파트 경비원은 현재 2교대로 근무하며 매달 165만원의 급여를 받고 있다.
내년도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월급은 조금 더 오른다. 입주자 대표회의에서는 경비비 절감을 위해 사전에 인력감축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사실상의 해고 통지와 다름없는 공고문을 직접 게시까지 하게 한 건 문제"라며 "입주자 안전을 위해 고용한 경비원들인데, 너무 인격적으로 대우하지 않은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